폭염과 가뭄 그리고 폭우가 이어지는 사이에도 어느새 입추가 지났습니다.
그런데 기다리고 견디다보면 '다 지나가는' 것도 아닌 것 같아요. '더 큰 것'이 튀어나올까봐 늘 조마조마한 기분을 떨치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규모 7수준의 지진이 베네수엘라에 이어, 일본 구마모토, 콜롬비아, 인도네시아까지 연이어 발생하고 있는 소식도 그렇고요.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 소식만큼이나 이토록 커다란 규모의 재난 속에서 어떻게 무엇을 기다리고 견디면 되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하나하나 재난이 지날 때마다 회복해내는 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으로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했을 때 일본의 지인들이 전해준 '회복'의 의미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쓰나미가 덮치고 원전폭발과 방사능 오염, 피폭, 피난, 임시주거, 따돌림을 유발하는 나쁜 소문 등이 이어지고 있었지요. 그래도 그때 기타노 다케시가 전한 말 “2만 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이 아니다. 사람 한 명이 죽은 사건이 2만 건 발생한 것이다”도 기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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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폭발이 있던 2011년 3월 11일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을 해보지 않는 사람들이 없겠지만, 제가 아는 일본의 지인들은, 돌아가더라도 3월 11일의 재해를 피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하면서, 다나카 쇼조(1841~1913)의 말을 들려주었습니다. '참된 문명은 산을 황폐하게 하지 않고, 강을 더럽히지 않고, 마을을 부수지 않고, 사람을 죽이지 아니한다'라는 말입니다. 지금의 인류문명이 올라탄 길을 걷다보면 결국 똑같은 3월 11일을 다시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요. 또 다시 3월 11일을 겪지 않으려면 문명의 전환은 불가피하고, 그것이 '회복'의 방향이라는 얘기였습니다. 탈원전은 꼭 해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던 것도 그때부터였습니다.
견디고 기다리는 일 외에도 할 수 있는 일은 찾아보면 있겠지하면서 (이미 하고 계신 분들께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전하며) 9월 19일에 있을 기후정의행진 소식도 함께 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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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또문소식은 아래 순서로 쓰여졌습니다.
- 또문독서회 재개소식,
- 지금 여기에 : 김주희, "유족 없는 폐허에서 ‘유족 되기’ 실천으로"
백경흔, "여성주의 관점의 지역사회통합돌봄, 우리에게 지역은 어디인가"
- 함께 나눠요 : 다은, "영화 ⟪어떻게 해야 했을까⟫를 보고"
권은선, "⟪그들만의 리그⟫를 다시, 보다" 권용주 메이시, "또문에서의 6개월"
- [초대] 28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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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문화 소모임, 또문독서회 재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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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가까이 방학을 보내고 또문독서회가 8월 31일 ⟪국가선택⟫으로 재개합니다. 기다리셨던 분들, 독서회에서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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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에
- 오늘의 '지금 여기에'는 늘 좋은 필자로 역할해 주시는 김주희 동인의 동두천 성병관리소 답사기를 싣습니다. '기억하기'에서 더 나아가 '유족 되기'를 말하는 김주희 동인의 답사기 덕분에, 또문월례포럼 등에서 나눴던, 동인들과 함께 '답사'를 가보자던 의견들 - ⟪쇳돌⟫과 탄광의 여성들, '제주 4.3 문학, 홀어멍들의 유산', '518 민주화운동과 주먹밥' 이야기 등은 여전히 '기억'과 '연대'를 수행하는 페미니즘 연구와 실천의 주요한 방법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 독서모임의 시작부터 꾸준히 함께 해온 백경흔동인께서는 지난 6월 30일에 지역사회통합돌봄 토론회에서 발표를 맡으셨었는데요, 그 발표 내용과 관련된 글을 또문과 또문독서회의 맥락에 맞게 다시 정리해주셨어요. 15분도시, 어메니티, 리질리언스, 어반 커먼즈와 같은 대안적 개념들이 제안되고 있고, 특히 '탈시설'에 대한 요구와 합의가 세계적인 대세로 자리잡아가는 동안에도 그 실체가 잘 드러나지 않는 돌봄도시, 돌봄사회란 무엇인지, 그래서 '우리에게 지역은 어디인가'라는 본격적인 질문을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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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 없는 폐허에서 ‘유족 되기’ 실천으로
김주희 (또 하나의 문화 동인, 덕성여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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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의 SNS에 게재되었던 기지촌 답사 후기로, 이룸의 동의를 얻어 ‘또 하나의 문화’ 소식지에 다시 싣는다.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은 2005년부터 청량리 지역에 거점을 두고 성판매 여성과 트랜스젠더 성노동자를 만나며 반성매매 활동을 이어온 페미니스트 단체다. ‘반성매매가 곧 탈성매매를 뜻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견지하면서, 여성의 삶을 일정한 정책적 경로에 맞추기보다 현장의 복잡성과 당사자의 구체적인 조건으로부터 시작되는 운동의 언어를 만들어 왔다. 특히 이들은 반자본주의 운동과 반성매매 운동이 결합해야 한다는 관점을 확고히 하고 있다. 나는 오랫동안 이룸의 친구로 지내왔고, 현재는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2026년 5월, 이룸은 역사문제연구소, 두레방과 함께 동두천 옛 성병 관리소와 빼뻘 마을 등 경기 북부 기지촌 일대를 걷는 답사를 공동 기획했고, 나는 이 답사에 참여했다.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 철거 저지를 위한 움직임에 대해서는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동두천시가 소요산 관광 개발을 이유로 옛 성병관리소 건물 철거를 강행하는 가운데 2024년부터 시민단체들이 국가폭력의 역사를 보존할 것을 요구하며 맞서고 있다. 철거 저지의 현장을 직접 걷고 흔적을 확인하는 이번 답사는, 텍스트만으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시공간의 생생한 감각을 깨웠다. 아울러 공동 기획단이 꼼꼼하게 준비한 답사 자료집도 현장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
‘고정희 추모제’ 등 기억과 연대의 자리를 이어온 또 하나의 문화 동인들에게도, 지역의 역사를 여성주의적으로 다시 읽는 이번 답사의 문제의식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도 이러한 답사가 계속된다고 하니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의 활동에도 많은 애정과 관심을 부탁드린다. 이 글이 오늘날 페미니즘 연구와 운동에 필요한 질문들을 함께 나누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 당시 자료집은 아래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홈페이지에서 다운로드할 수 있습니다.
https://e-loom.org/기지촌-지워지는-역사를-페미니즘적으로-균열내고-기억하며-개입하기/ )
2026년 5월 23일,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과 역사문제연구소, 두레방이 공동 기획한 <기지촌, 지워지는 역사를 페미니즘적으로 균열내고 기억하며 개입하기> 답사에 함께했다. 공고와 동시에 빠르게 신청이 마감되었다는 소식에, 서둘러 신청서를 제출해 다행이라 생각했다. 다양한 배경의 참가자들이 저마다 이 답사에 오게 된 이유를 설명하는 것을 들으면서 기지촌 역사를 경유하는 여성주의적 관심과 문제의식이 얼마나 다채롭게 확장될 수 있는지 새삼 흥미로웠다. 개인적으로 이번 여정은 서명과 모금으로만 보태던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 철거 저지’의 현장에 뒤늦게 당도한 일이었고, 십수 년 전 활동과 조사차 경기 북부 기지촌을 오가던 기억을 다시 떠올리는 일이기도 했다.
동두천 성병관리소를 시작으로 보산동, 상패동, 캠프 호비, 빼뻘 마을을 거쳐 의정부 역사(驛舍)까지 이어지는 숨 가쁜 여정이었다. 으레 1박 2일은 걸릴 법한 밀도의 장소들을 주최측의 준비와 연구자, 활동가들의 탄탄한 해설 덕분에 한나절에 돌파할 수 있었다. 지면의 한계상, 이 글에서는 그날의 단편적 인상과 감각을 소식지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동두천 성병관리소를 마주했을 때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국군광주병원의 기억이 머릿속에서 엉켜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국군광주병원은 계엄군에 의해 부상당한 시민들이 치료받던 장소로, 내가 수년 전 방문할 당시 의료기기와 폐자재가 뒤섞인 채 방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두 폐허는 2026년 현재 전혀 다른 운명을 살고 있다. 2024년 국군광주병원은 역사공원으로 조성되어 공적 기억의 영토로 편입되었지만, 동두천 성병관리소는 500일이 넘는 지금도 철거 반대 운동이 계속 진행 중이다. 무엇이 이 격차를 만들어 내는지, 답사는 이 질문과 함께 시작되었다.
정희진은 한국 기지촌 여성운동사에 관한 글에서, 기지촌이 성매매 현장 내부에서도 가장 천시되었기 때문에 과거 그곳에서 여성운동이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기록한다. (정희진 “죽어야 사는 여성들의 인권: 한국 기지촌여성운동사, 1986-98”, <한국여성인권운동사>, 한국여성의전화연합 엮음, 한울, 1999, 301쪽.) 이러한 척박한 환경에서도 2022년 기지촌 여성운동은 미군 ‘위안부’ 피해에 대해 정부 책임이라는 역사적 심판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국가 권력은 법이 정한 최소한의 배상 책임만 이행할 뿐, 기지촌의 역사를 현재와 무관한 ‘과거의 사건’으로 남겨두면 그만이라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기지촌은 결국 이 도시의 안보와 자본이 어떤 동원과 배제를 통해 유지되는지 질문하는 현재 진행형의 현장이기도 하다.
천과 가림막으로 둘러싸인 채 내부 출입이 통제된 성병관리소 건물은 미군 ‘위안부’ 여성들의 ‘유용성’이 다한 시간을 상징하는 듯 보였다. 현장에서 철거 저지 공대위 집행위원장의 설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건물 내부에 쌓인 쓰레기 더미를 “내가 직접 청소했다”는 것이었다. 정부와 지자체가 철저히 방치한 공간은 활동가들의 돌봄으로 가까스로 버티고 있었다. 이들에 의한 기억 인양의 실천이 계속되고 있지만, 여전히 동두천 성병관리소 건물은 공적 기억의 장 안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이어진 답사의 현장들은 ‘지워져야 마땅한 역사’를 증명하듯 기억의 장소로 구획조차 되지 못한 상태였다. 문 앞에 집기가 잔뜩 쌓인 낡은 집 앞을 지나면서, 이곳이 故윤금이 씨의 살해 사건 현장이었다는 설명을 듣는 식이었다. 많이 알려졌듯이, 당시 사건 현장을 신고하고 가해자 마클을 붙잡아 경찰에 넘긴 기지촌 동료 여성은 이후 행방불명되었다. 이처럼 기지촌의 역사는 우리가 무엇을 알지 못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거대한 공백들이 산재해 있다. 답사에서 만난 무연고 기지촌 여성의 무덤은 이러한 알 수 없는 공백을 집약적으로 상징한다.
상패동 공동묘지에 방문했는데 이 공동묘지는 분묘 1007기가 모두 이전을 완료한 상태로 공원화가 진행 중이었다. 이 중 무연분묘는 780기였다고 하니, 이곳은 유족 없는 이들의 공동묘지의 성격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이 공동묘지에는 많은 기지촌 여성들이 안장되었으며, 故윤금이 씨 역시 화장 후 이 묘지에 뿌려졌다고 한다. 답사 주최측에서 나누어준 자료집에는 미군에 살해된 여성의 장례식 대오 모습, 기지촌 여성들이 동료 여성의 상여를 멘 채 데모를 벌인 일화 등이 기록된 소설, 신문 기사가 인용되어 있다. 그럼에도 동두천시는 상패동 공동묘지 분묘 중 기지촌 여성 관련 자료는 ‘부존재한다’는 답변을 내놓았다고 한다.
이러한 전략적 기만, 제도적 망각은 동료의 죽음에 항의하던 기지촌 여성들, 즉 서로의 유족을 자처하던 ‘동료 목격자들’의 존재 또한 지우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가부장적 혈연관계가 단순히 혈통에 대한 기록을 넘어 여성에게 규범과 자격을 요구하는 성적 장치라는 점을 떠올리면, 이들은 생전의 가족이 있었음에도 사후에 유족 없는 이들이 될 수밖에 없었다. ‘유족 없음’의 필연성이야말로 기지촌이 유지되어 온 본질적인 성적 통제 기제였다. 내가 만났던 이태원 기지촌 여성들 역시 엄연히 원가족이 존재했지만, 이들에게 피해가 갈까 두려워 차마 자신이 이곳에 있다는 사실조차 집안에 알리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생전에 가족을 부양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삶을 숨겨야 하는 여성들의 고립은 결국 사후 무연분묘의 수치로만 기록되고 있다.
답사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소로 기억되었던 ‘박순자의 묘’ 역시 마찬가지다. 미군기지를 내려다보는, 캠프 호비 답장 옆에 있는 박순자의 묘는 사실상 상상으로만 채워진, 무엇의 흔적인지도 알 수 없는 장소다. 자료집에 따르면 1971년 사망한 박순자(SOON JA RAYNOLDS)의 봉분은 2010년 무렵 미국식 평장으로 바뀌었고, 묘비에는 영어로 “내 사랑 평화롭게 쉬기를”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누가 이렇게 묘지를 관리했는지 관리자를 찾는 플래카드에도 끝내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 장소에 관한 서사의 전부다. 주변 산자락에도 미군기지를 바라보는 이름 없는 무덤들이 가득하다고 한다. 기지촌의 역사는 현재 남은 무연고 묘지로 기억되고 있었다.
남은 것은 아마도 기지촌 여성이었을 박순자라는 이름, 그리고 그를 그리워했을 미군의 흔적뿐이다. 사적인 애도의 기억으로만 지탱되는 박순자의 묘비는 그 자체로 한미동맹의 명료한 서사에 맞서는 하나의 ‘대항기념비(counter-monument)’라 할 수 있다. 비어 있음과 파편성으로 가득한 이 기지촌의 폐허는 잔해의 물질성을 통해 그곳에서 삭제된 역사를 증명한다. 다만, 이러한 잔해의 미학에만 몰두할 때 현실의 철저한 방치와 그로 인한 역사의 소멸을 지나치게 낭만화하는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점 또한 경계해야 할 것이다.
이어 답사자들은 빼뻘 마을로 향했다. 캠프 스탠리 경계를 따라 자리 잡은 빼뻘 마을은 경기 북부의 대표적 기지촌 지역이자, 기지촌 여성운동의 거점이었던 두레방의 역사가 새겨진 장소다. 2000년대 초반의 분주하던 빼뻘 마을을 기억하는 나로서는, 마주한 마을의 쇠락한 풍경, 생각보다 훨씬 좁은 골목의 적막함에 잠시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과거 이태원 기지촌 활동 당시, 여성들은 미군 훈련병들이 탄 배가 들어올 때를 두고 “배가 터졌다”며 부산으로 향하곤 했다. 부산 해군기지에 미 군함이 정박하면 미군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온다는 의미였는데, 이 “배가 터졌다”는 말은 아직까지도 기억에 강렬하게 남아 있다. 해설을 맡은 활동가가 빼뻘의 쓸쓸한 골목을 가리키며 “이곳으로 퇴근길 미군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고 설명하는 순간, 과거 이태원 여성이 한 말이 겹쳐졌다. 또 활동가는 물길이 보이지 않는 좁은 골목을 가리키며 이곳이 과거 빨래터였다고 말하기도 했다. 미군 부대의 수영장에서 물이 쏟아져 나오면 여성들은 그곳에서 빨래를 했다는 것이다. 지금은 적막만 남은 이 쇠락한 골목들은, 한때 미국발 안보 자본이 뿜어내는 ‘풍요’가 우르르 쏟아져 나오던 파이프라인이었다. 또한 골목을 가득 메운 기지촌 여성들의 몸 역시 안보 경제를 작동시키는 핵심 인프라 그 자체였다.
함께 걷고, 멈춰 서서 듣고, 지워져 가는 현장을 눈으로 목격하는 이러한 기지촌 답사의 과정을 통해 안보와 현실의 ‘번영’이 누구의 몸을 물적 토대 삼아 지탱되어 왔는지 그려볼 수 있었다. 국가가 마땅히 책임져야 할 복지나 재분배, 일자리 같은 사회적 인프라가 부재한 자리에, 가난한 여성들의 몸을 대신 배치하여 지역 생존을 지탱하게 만든 역사는 우리가 기억을 통해 구획하고자 한 기지촌의 경계를 통해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그러나 여성들을 자원의 여과기와 순환 통로로만 소모한 채 무연고 묘지에 폐기한 이 한 편의 부조리극은 기지촌의 기억이 왜 페미니즘 운동의 핵심 의제여야 하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답사의 마지막 순서로 의정부 역사에서 두레방 대표와 이룸 활동가의 발제로 간담회가 진행되었다. 이 자리에서 나는 무연고 묘지와 상여를 메던 기지촌 여성들의 저항을 목격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가부장적 혈연의 범주를 넘어 페미니스트로서 여성들의 ‘유족이 되는’ 운동이라는 발언을 했다. 또한 이룸의 활동가는 이번 답사를 통해 성매매 집결지 여성들의 국가 배상 소송도 가능할지 새로운 그림을 그려볼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어진 대화에서 우리는 집결지 여성과 미군 ‘위안부’는 ‘다르다’며 선을 긋는 발언을 마주하게 되었다.
시간적 한계로 깊은 토론을 나누지 못한 면이 있고, 우리 모두가 처한 실천의 맥락도 다르다. 실제로 소송에 참여한 122명의 원고가 증명해야 했던 폭력은 국가와 미군 당국의 조직적인 성병 관리와 감금이라는 고유한 특수성을 지니며, 오랜 시간 현장을 지켜온 이들에게는 이 제도적 피해를 선명히 규정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했을 것이다. 그러나 피해의 위계를 떠올리지 않을 도리가 없는 이러한 ‘다르다’는 선긋기는 가부장적 국가가 기지촌 여성들에게 가했던 자격 박탈과 고립의 메커니즘을 운동 내부에서 재현할 위험이 있다는 점에서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말이기도 하다.
기지촌 여성운동은 국가가 방기한 생존의 하부 구조를 스스로 만들며 싸워온 주체들의 활동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목격한 그 하부 구조의 잔해들은 국가와 자본이 여성의 몸을 안보 경제의 도구로 탈취해 온 정치경제학적 구조 그 자체를 폭로하고 있었다. 따라서 특정 피해자 집단을 성역화하는 일에 멈추지 않고, 분리의 언어를 넘어, 여성의 신체를 도구화해 온 거대한 추출의 구조를 직시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여성주의 기억의 정치가 우리에게 남기는 날카로운 질문이자, 혈연 중심의 유족 정치에 매몰되어 있던 당사자 정치의 좁은 틀을 깨고 나아갈 새로운 연대의 출발점일 것이다. (2026. 08, 또문브런치에서 읽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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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관점의 지역사회통합돌봄, 우리에게 지역은 어디인가
백경흔(이화여대 여성학 강사, 또 하나의 문화 동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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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자명해서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들이 있다. 내게는 돌봄 공공성, 공공돌봄이 그랬다. 좋은 돌봄의 척도로 ‘공공성’이 회자되어왔고, 시장이나 민간이 아니라 국가 예산으로 국가가 직접 전달하는 돌봄이 가장 좋은 돌봄이라고 생각해왔다. 보육정책을 연구할 때도 국공립어린이집은 정답처럼 여겨졌다.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국가가 돌봄을 책임져 준다'는 언설에 희망을 걸어오지 않았을까. 치매국가책임제도 마찬가지로.
주어진 틀 안에서 생각하는 데 익숙해지면, 그 틀 자체에 질문하는 일을 잊는다. 돌봄 공공성과 공공돌봄이 바로 그런 예 같다. 지금까지 우리가 주창해 온 공공돌봄의 ‘공공’은 과연 좋은 돌봄을 보장해주는가. 국가 예산으로 국가가 직접 제공하면, 그것으로 좋은 돌봄이 되는가. 가족이 아니면 국가라는 이분법으로 좋은 돌봄을 고민하는 틀이 과연 적절한 걸까?
좋은 돌봄이 무엇인가라는 고민의 속도보다 새로운 정책 도입의 속도가 더 빠른 것 같다. 2026년 3월부터 지역사회통합돌봄이라는 새로운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지역에 살지 않는 사람이 한 명도 없고, 돌봄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 한 명도 없지만, ‘지역사회'와 ‘통합돌봄'이라는 말에, 돌봄에 익숙한 사람들조차 왠지 이건 복지 분야에서 고민할 주제겠거니 하고 넘기는 것 같다. 실제로도 의료와 복지 쪽에서 현재 정책에 무엇이 문제적인지 논의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것은 의료와 복지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여성계가 가장 절박하게 붙들어야 할 문제다.
우리가 가족에서 끄집어내 국가의 책임으로 만들려 했던 그 돌봄이, 이제 탈시설화라는 이름으로 지역으로 돌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에 마땅한 대안이 없다면, 그 돌봄은 다시 가족에게로, 정확히는 가족 안의 여성—딸과 며느리, 그리고 부모와 손주를 한꺼번에 떠맡은 나이든 어머니—의 어깨 위로 떨어질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지역사회'라는 단어를 보며, 지역사회가 돌봄을 해주려나 보다 기대하게 된다. 우리를 돌봐줄 지역사회라는 것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데도.
여성주의 돌봄 연구자로서 지역사회 통합돌봄 정책을 보면서 그동안 해 온 연구의 관성을 깨야 한다는 절박함이 느껴졌다. 국가가 아니면 아무런 대안도 없는 '탈가족화'의 논의를 여성주의 논의의 주요 틀로 생각해 왔는데. 그 생각의 관성에 의해 ‘지역'은 '비공식' 돌봄으로 이름 지어지고, 국가도 가족도 시장도 아닌 회색지대에 비가시화되었다. 공공성의 중요한 축이 될 수 있는 지역사회의 논의는 오랫동안 여성주의 사회정책 연구에서도 사각지대에 놓여온 것 같다.
왜 지역사회는 사라졌을까.
경쟁사회에서 성과로 환산되지 않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욕구를 최소화한다. 남성 중심의 노동시장에 여성이 진입하고,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돌봄은 거추장스러운 것, 누군가에게 전가해야 할 무엇이 되었다. 물론 여성주의는 남성이 돌봄의 당사자로 여성과 동등한 책임을 다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실상은 남성도 여성도 돌봄을 하지 않는 사회로의 변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여성도 남성도 회사형 인간으로 사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 되었다. 시장 노동중심, 경쟁중심, 성장중심 사회에서 성취로 환산되지 않는, 아무 목적 없는 호의와 환대와 연대는 낯선 것이 되었다. 속물이라 해도 어쩔 수 없다. 너나 나나 ‘의미 없는' 시간과 관계를 다이어트하듯 쳐내며 살아오는 데 익숙해졌다.
돌봄의 공공성 논의로 다시 돌아와 보자. 국공립 어린이집, 국공립 요양시설, 치매국가책임제의 확충을 요구하는 동안, 일상의 돌봄 관계망은 지긋지긋해서 벗어던져야 할 ‘부담'으로만 명명된 것은 아닐까. 물론 그 명명에도 이유는 있었다. 돌봄의 부담은 세대와 인종과 계급이 다른 여러 집단으로 순환된다고 생각했지만, 늘 여성의 독박부담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돌봄의 부담을 덜어내는 언어만으로 달려온 끝에 남은 풍경은, 어른은 일터로, 아이는 어린이집으로, 부모님은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으로 각자 흩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바라던 공공돌봄의 미래였을까. 치매국가책임제라고 하면, ‘국가'가 우리의 치매를 어떻게든 책임져 줄 거라고 믿는 사람이 있을까?
이처럼 경쟁에 최적화된 삶을 사는 동안 일상의 관계들은 시장으로 빨려 들어갔고, 이웃도 지역도 사라져 이제 집 아니면 일터만 남았다. 집에서 여성이 하는 돌봄, 시장에서 구매하는 돌봄, 국가가 제공하는 돌봄을 셈하는 동안, 지역사회는 어딘가로 사라지고 말았다. 지역사회가 존재하지 않는데 지역사회통합돌봄이라니, 여기서 지역사회란 무엇일까. 중앙정부가 아니라 시군구 공무원이 돌봄 사업을 담당하게 되었다는 의미라면, 그것으로 충분할까.
나의 삶은 어떤가. 아이를 돌보면서 어떻게 여성이 일하는 사회를 만들까 고민하는 사이, 아이들은 훌쩍 커버렸다. 아이들은 어린이집, 유치원과 늦게 오는 엄마를 기다리며 빈집을 지키면서 성인이 되었고, 이제 아이들과의 소소한 시간은 아련한 기억이 되어, 손을 뻗어도 돌아오지 않는 과거가 되었다. 돌봄의 관계가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이제 이해되기 시작했는데. 그리고 이제는 고령에 접어드신 부모님을 돌봐야 할 시간이 왔는데, 여전히 내가 아니면 부모님이 좋은 돌봄을 받으실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언젠가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나는 누구의 돌봄을 어떻게 받게 될까. 그것도 확실하지 않다. 지역이라는 대안에 대한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덜컥 정책은 ‘지역사회'에서 무려 돌봄을 통합해서 연계를 해준다고 한다. 좋은 돌봄이 가능할지 확신은 없고, 피부에 와닿지 않는 이야기로 들린다.
늦었지만 이제 함께 물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에게 지역은 어디인지, 지역이 있기는 한지. 없다면, 지역을 둘러싼 돌봄의 공공성은 어떻게 다시 구성되어야 하는지. 국가만을 공공의 주축으로 삼아온 생각을 확장해, 국가와 지역사회가 그리고 ‘내'가 주축이 되어 함께 돌봄의 공공을 만들어가는 상상이 필요하다. 돈벌이보다 돌봄이 더 소중하다는 걸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은데, 또 다시 여성이 독박돌봄을 하자는 거냐는 오해로 들릴까봐 겁도 난다. 그래도, 이 거대한 문제의 실마리가 결국 아무 목적 없는 호의와 환대가 오가는 작은 자리들에서 시작될 거라는 예감을 붙들고, 다시 고민을 시작한다. (2026년 8월. 또문브런치에서 보기)
※ 아래 유튜브 영상은 도쿄에 위치한 세대공존형(age-mixed) 복지시설 고토엔을 배경으로 한 나가사키 아이 감독의 2013년작 단편영상입니다. ⟪친구⟫라는 제목으로 보육원과 요양원의 통합돌봄을 그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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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나눠요
- 다은, 권은선, 권용주(메이시) 세 분의 글을 전합니다.
- 다은 동인의 "영화 ⟪어떻게 해야 했을까⟫를 보고"는 돌봄의 문제와 당사자의 관점을 중심으로 영화를 소개하고 논평을 들려주는 글입니다. 조현병의 자리에 '발달장애'를 넣어보아도, '인지저하증' 등을 넣어보아도 20년 전에나 현재에나 여전히 '어떻게 해야 했을까'만 곱씹고 있는 (초)엘리트 사회와 사회적 돌봄부재의 현실을 떠올리면서 마음이 들끓는 경험을 하실 지도 모릅니다. 개인사, 가족사를 다루고 있는 만큼 OTT서비스를 통한 상영은 안 할 예정이라고 하니 얼른 가서 보시라는 말씀만 덧붙입니다.
- 영화이야기를 늘 더 흥미롭게 들려주시는 권은선 동인께서 1992년의 영화 ⟪그들만의 리그⟫에 대한 글을 보내주셨어요. 영화에 등장하는 마돈나가 올해 북중미월드컵 결승전 하프타임 쇼에서 공연한다는 소식에 '대단하다'고 감탄하기도 했는데, 역시 '팝의 여왕'이라는 칭호는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닌 모양입니다. 독서회에서 영화이야기를 하다보면 어느새 또문동인들도 다양한 세대가 함께 하고 있구나 하고 깨달을 때가 많습니다. 92년 영화는 '태어나기도 전'이라고 말할 동인들 얼굴도 생각납니다만, 그 시절의 여성영화, 페미니스트 리뷰를 반가워하는 표정도 함께 떠오릅니다.
- 대학을 졸업한 뒤 서울살이 경비를 위한 빡센 6개월 취업을 마치고, 서울로 옮겨와 6개월간 무급인턴으로서 또문 아카이빙에 참여했던 메이시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제 본격적인 대학원 준비를 할 거라고 해요. 어쩌면 '아카이빙'을 전공하게 될지도 모르는 메이시의 학부전공은 비교문학이었는데, 도서관에서 성장하고 문학과 사랑에 빠졌던 메이시가 또문에서 지내는 동안 경험하고 생각한 내용을 전해주었습니다. 앞으로의 새로운 여정을 축하하고 응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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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떻게 해야 했을까?⟫를 보고
다은 (또 하나의 문화, 또문독서회 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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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9일에 개봉한 영화 ⟪어떻게 해야 했을까?⟫는 후지노 토모아키 감독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로, 의대에 재학 중이던 누나 마사코가 24살 조현병을 앓게 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누나가 밤중에 느닷없이 소리를 지르거나, 혼잣말을 하는 등의 조현병 증세를 보이자 감독은 누나가 자신에게 해를 가하지 않을까 두려웠고, 집으로부터 도망쳐 나온다. 부모는 그런 누나를 병원에 보내지 않은 채 집에서 2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함께 살아간다.
감독은 부모님께 누나의 병을 제대로 진단받고 치료할 것을 요구했지만, 부모는 어떤 이유에서건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딸과 함께 집에서 살아가는 것을 택한다. 이후 마사코가 쉰 살을 바라볼 무렵에서야 마사코는 정신병원에서 진단 및 치료를 받게 되는데, 조현병 증상을 보인지 약 25년이 지난 시점이다. 그가 치료받을 수 있었던 까닭은 80대에 접어든 노쇠한 부모의 신체와 더불어 어머니가 보인 초기 치매 증상 때문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정신병동에서 3개월 만에 마사코에게 알맞은 약을 찾을 수 있었고, 퇴원한 마사코는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영화 제목인 “어떻게 해야 했을까?”는 마사코의 죽음 이후 아버지와의 대화에서 감독이 아버지에게 물은 질문이다. 만약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누나를 어떻게 해야 했을 것이라 생각하냐고. 여전히 누나를 병원에 보내지 않은 채 20년이 넘는 세월을 그냥 집에서 함께 살아갈 것이냐고. 감독의 이 말에는 누나를 제때 병원에 데려가지 않은 부모에 대한 원망이 일견 담겨있다. 질문에 대해 아버지는 “실패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라고 답한다.
영화는 돌봄에 대한 여러 질문을 담고 있다. 내게 인상적으로 다가온 부분은 이들이 오랜 세월 서로의 곁에서 각자의 질병과 함께 살아갔다는 점이었다. 세월이 흘러 각각 중년과 노년에 접어든 딸과 부모는 나이 듦에 따라 폐암을 앓거나 치매에 걸리고, 입원하는 등 정신적/신체적 문제들을 마주한다. 그럼에도 이들은 마사코의 환갑을 축하하고, 크리스마스를 기념하거나 동네에서 불꽃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소소한 하루하루를 함께 보낸다. 영화는 가족이 각기 다른 아픈 몸으로 보내는 일상을 보여줌으로써 돌봄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돌봄에 정답이 있을 수 있을까? 영화를 본 모두가 이 가족과 같은 상황을 맞닥뜨린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에 대한 답이 다를 것이다. 마사코에게 정신적 질환이 있다고 하는 것은 ‘실례’이며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 부모님과 누나에게 의학적 조치를 취해야만 한다고 여기는 동생 사이에서 당사자 마사코의 목소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마사코는 본인이 처한 상황에 대해 어떻게 해야 했다고 생각할지 궁금하다. 더불어 우리 사회는 정신질환 당사자의 결정을 얼마만큼 존중하고 수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2026. 08, 또문브런치에서 읽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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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만의 리그⟫를 다시, 보다.
권은선 (또 하나의 문화 동인, 중부대학교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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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에 지쳐가던 8월 초, 무심코 튼 TV 뉴스에서 단신 뉴스 하나가 시선을 끌어당겼다. 바로 미국에서 여성프로야구리그(WPBL:Women’s Pro Baseball League)가 출범했다는 소식이다. 3명의 한국인 선수가 등록되었고, 그중 뉴욕 하이츠 투수 김라경은 역사적인 개막전의 선발 투수로 마운드에 올라 힘차게 공을 뿌렸다. 오랜 야구팬인 나의 눈과 귀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 순간 자연스럽게 한 영화가 떠올랐다. ⟪그들만의 리그⟫(A League Of Their Own, 1992). 오랜만에 그 영화를 다시 본다.
⟪그들만의 리그⟫는 WPBL의 전신인 전미여성프로야구리그(AAGPBL:All-American Girls Professional Baseball League)의 출범 원년 시즌을 배경으로 한 ‘여성스포츠영화’이자 ‘야구영화’다. 사실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나는 여성프로야구가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었다. 영화팬이자 동시에 야구팬인 이들에게 ‘야구영화’는 ‘꿈의 영화’지만, 실제로 야구라는 스포츠가 가진 잠재적 성찰성이나 극적 긴장감의 가능성을 영화적 상상력과 시각화로 올곧이 살려낸 영화는 극히 드물다. ‘야구영화’는 사실 야구를 빌어 다른 것을 이야기 한다.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큰 흥행수익을 거둔 여성감독이자 또 한 명의 야구팬인 페니 마셜(Penny Marshall)은, AAGPBL 선수들의 ‘동창회’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고 ⟪그들만의 리그⟫를 제작하기로 결심했는데, 지나 데이비스(Geena Davis)와 팝스타 마돈나(Madonna) 등을 등장시켜 여성들의 꿈, 자매애, 우정, 젠더 불평등 등을 다룬다.
영화는 노년의 도티가 명예의 전당에 여성프로야구가 헌액되는 행사에 참여하여, 이전 한 프로야구 스카우터의 낯선 방문을 받던 날을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1943년 AAGPBL이 시작될 수 있었던 것은 그때가 2차 세계대전이 절정에 이르렀던 시기이기 때문이다. 미국 MLB(Major League Baseball)를 대표하는 스타 플레이어를 비롯해 500명이 넘는 선수들이 전쟁에 차출되었고, 그로 인해 리그의 운영 및 흥행이 파행을 거듭하자, 시카고 컵스의 구단주 필립 K. 리글리가 이를 타개할 방편으로 여성프로야구를 생각해냈던 것이다.
전쟁은 여성들에게 전시성폭력과 생존권 위협, 성역할 고착화 등 심각한 젠더 불균형과 인권 문제를 발생시키지만, 또 다른 한편으론 여성의 사회진출과 교육기회 확대, 일시적 가부장제 해체 및 전통 규범의 유예에 따른 해방의 공간을 제공하기도 한다. 코미디 영화인 ⟪그들만의 리그⟫는 바로 이러한 급격한 젠더 변동 시기를 역사적 배경으로 젠더를 둘러싼 문제들을 유쾌한 방식으로 풀어간다. 여성프로야구리그에 참여한 여성들에겐 ‘여자가 무슨 야구냐’라는 사회적 비아냥과 편견의 장벽들이 놓여 있다. 야구실력 만큼이나 외모가 중시되고, 치마로 된 유니폼을 입어야 한다. 프로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훈련에 앞서 전통적 젠더 규범에 근거한 예절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이러한 장벽들과 싸우기도 하고 협상하기도 하면서, 최초의 여성프로야구 선수들은 집에서 나와, 구단 전용 버스를 타고 동료들과 장거리 이동을 하고, 자신의 꿈을 향한 새로운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탐사하고 구축해 나간다. 프로선수로서의 자부심과 동료애가 싹트고 살아난다.
흥미로운 장면 중의 하나는 최초의 여성프로야구 공개선발시험(tryout)이 열리게 된 시카고에서 한 여성단체 소속원들이 하는 방송 인터뷰다. 그녀들은 ‘여성의 남성화’를 개탄하고 ‘전쟁에서 돌아올 남편들이 마주할 아내의 얼굴은 무엇인가’를 질문하면서 당장 트라이아웃을 멈출 것을 성토한다. 영화 속 주인공 도티와 키트 자매는 이러한 급격한 젠더 변동 시기에 대처하는 두 입장을 대변한다. 가히 천재적 야구 역량의 소지자이자 지도력을 겸비한 ‘다이아몬드의 여왕(Queen of Diamond)’ 도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구 플레이는 전쟁에 차출된 남편이 돌아올 때까지의 한시적 활동이라고 규정한다. 반면 도티 덕분에 프로야구리그에 참여할 기회를 얻은 키트는 경쟁과 질투, 노력을 통해 그 기회를 자신의 꿈의 실현으로 전환하고자 한다.
영화의 절정부 장면은 다소 논쟁적이다. 우승팀을 판가름하는 챔피언십 시리즈 최종전의 9회 말 결정적 상황에서 포수 도티가 상대방 팀 타자주자 키트와 홈에서 부딪히고 결국 공을 놓치는 장면이다. 결국 키트의 결승 타점이 인정되면서 키트의 소속팀이 우승하고 키트는 여자야구 스타의 도정에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클로즈업으로 잡힌 도티 손동작의 애매모호한 뉘앙스인데, 앞서 진행된 서사적 코드를 되새김질해 볼 때, 다소 의도적인 놓침을 유추하게끔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영화 오프닝에서 도티가 농구를 하고 있는 외손자 둘 중, 형에게는 동생과 화합하는 플레이를 요구하고 동생에게는 싸울 것을 외치는 것이 그러하고, 투수에게 키트의 약점인 하이볼 투구를 요구하는 것 역시 그러한데, 키트가 자신의 약점을 극복할 때 진정한 야구선수로 우뚝 설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야구팬들의 입장에서 이와 같은 미묘한 의미의 결은 분명하게 논쟁적인데, 명백히 스포츠맨십을 어긋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야구의 여왕’ 도티는 장녀 콤플렉스를 가진 인물이다. 술주정뱅이 감독을 대신해 팀을 이끌고, 상이군인이 되어 돌아온 남편과 ‘천덕꾸러기’ 동생의 꿈을 위해 자신의 야구 커리어를 포기하는 인물인 것이다. 요컨대 그녀는 전후 복구기 전쟁에서 귀환한 남성들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여성들을 가정으로 복귀시키고 가부장적 질서를 복구하고자 한 지배 논리에 순응하는 인물이다. 주인공 도티와의 동일시 측면에서 여성주의적 관점으로 바라보자면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는 영화적 해결이다. 이 영화가 거의 ‘레즈비언 유토피아’적 세계에 터해 있음에도 결국 철저하게 결혼과 이성애주의에 갇혀 있는 것도 한계로 언급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가 1990년대 초반 할리우드 주류 영화로서 지배적 이데올로기와 협상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조금은 의미의 표면의 결을 거슬러 읽을 필요가 있다. 모든 리그 투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직전 도티가 짓는 웃음의 표정의 피부 아래로는, 가까운 과거의 성취감과 더불어 포기한 야구에 대한 다가올 미래의 씁쓸함이 함께 새겨져 있다. 새롭게 주어진 정체성에 모든 것을 쏟아붓고 정규리그가 끝난 뒤에도 집에 돌아가기를 거부하는 ‘키트의 승리’라는 영화적 해결은 결국 이 영화가 여성의 사회진출에 손을 들어준 것이라 할 수 있다.
영화사적으로 보면 ‘전쟁에서 돌아오는 남편에게 어떤 얼굴을 보여줄 것인가’라는 사회적 질문에 대한 응답으로 구성된 영화 장르가 1940년대 초에 등장한 필름 누아르이다. 필름 누아르를 규정하는 아이콘인 팜므 파탈(Femme Fatale)은 문자 그대로 남성 주체성을 근간에서부터 흔드는, 매혹적이면서 동시에 비밀을 간직한, 정체불명의 위험한 여성이다. 바로 이 팜므 파탈이 표상하는 것이 전후 남편들이 새롭게 마주해야 했던, 전쟁 전과는 달라진, 힘세고 위험한 아내와 연인의 얼굴인 것이다. 그리하여 필름 누아르 장르 서사에서 팜므 파탈은 결국 반드시 처벌이라는 대가를 치른다. 젠더를 둘러싼 사회적 변동이 가파르게 진행될 때, 남성들의 흔들린 주체성을 달래주고 재구성하기 위해 필름 누아르가 재등장한다.
루스벨트는 전시 상황에서도 야구를 계속하라는 ‘청신호 편지(Green Light Letter)’를 커미셔너들에게 보낸 바 있다. 종전 후 남성야구선수들이 MLB에 복귀하면서 AAGPBL은 존폐위기를 맞이했지만 1954년까지 유지되었다. 영화는 실제 AAGPBL에서 뛰었던 백발의 선수들이 야구장에 다시 모여 경기를 하는 푸티지를 배경으로 크레딛을 올리며 끝난다. 영화 제작참여자들의 이름은 야구에서 출전선수명단을 뜻하는 로스터(roster)로 표기되는데, 그 배경으로 마돈나의 주제가 ‘This used to be my playground’가 흐른다. 영화를 보던 당시에는 마돈나의 빅 팬이어서 그녀가 상대적으로 적은 분량으로 등장하는 것이 불만이었던 것 같다. 돌이켜보니 그녀가 이 영화에 출연하고 노래도 불러줌에 감사하다. 대중적인 여성주의 영화의 고전이라 할 만한 ⟪델마와 루이즈⟫에도 출연했던 지나 데이비스는, ‘지나 데이비스 미디어 젠더 연구소(Geena Davis Institute on Gender in Media)’를 운영하며 미디어 내에서의 성별 불균형과 고정관념을 개선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주말 내내 이 노래 ‘This used to be my playground’를 반복해서 들었다. 추억이 방울방울 한다. 우리가 뛰어놀았던, 서로를 찾던, 자부심과 즐거움으로 충만했던, 누구도 감히 무너트릴 수 없는, 우리 여자들 만의 비밀의 장소. 댄스 뮤직의 위대한 퍼포머인 마돈나는 그 특유의 중저음을 사용하여 발라드도 꽤나 잘 부르는 가수다. 나의 예전 (놀이)터들이 떠올라 잠시 울컥해지기도 했다. (2026. 08, 또문브런치에서 읽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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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의 한글번역은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한 것이므로 필자가 전하려는 내용을 완전하게 번역하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편집자 주)
내가 한국 페미니즘 운동에 관심을 갖게 된 건, 한국 페미니스트 시인들의 언어를 사랑하면서부터였다. “영 페미니스트” 세대에 속하는 최승자, 이연주, 그리고 또 하나의 문화(이하 또문)의 동인이기도 한 김혜순은 남성 중심적인 사회 속에서 스스로의 자아와 몸이 어떻게 비체화(abjectification)되는지를 써 내려갔다. 내가 또문 활동을 시작하며 품었던 핵심 질문은 하나였다. 내가 읽은 글 속에서 드러난 현대 사회의 잔혹하고 생존을 위협하는 구조에 맞서, 과연 “페미니스트들”은 어디서 어떻게 저항을 실천하고 있을까? 그리고 당사자의 관점에서 쌓아 올린 비판적 이론과 페미니즘 아카이브에는 과연 무엇이 담겨 있을까?
My outlook on the Korean feminist movement began with my love for the words of Korean feminist poets. Belonging to the “young feminists” generation, poets like Choi Seung-ja 최승자, Lee Yeonjoo 이연주, and Ttomoon 또문's own member Kim Hyesoon 김혜순 had written about an abjectification of their selves and bodies under androcentric systems. A central question I had brought with me when I began at Ttomoon 또문 was how and where “feminists” realized resistance against modern necropolitical systems that had been illuminated and underscored within the writings I had read and what were included within the “feminist” archives of critical epistemology and theory from a native perspective.
그동안 공부해오면서 느낀 건, 급진적인 시인들과 검열 체제, 그리고 남성 중심 문화 사이의 관계가 목격자이자 애도하는 사람으로서의 경험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가부장적 시스템이 여성에 대한 폭력과 구조적 압박을 어떻게 지워버리는지 눈으로 똑똑히 목격하는 동시에, 그 현실을 피부로 느끼며 쓴 슬픈 애가(elegy)를 통해 여성 시인들이 스스로 주체가 되어가는 급진적인 과정을 보여준 것이다.
Through my own education, the relation between radical poets and regimes of censorship and cultures of androcentrism, in one thread, appeared to be the experience of bearing witness and the role of mourner—to witness how patriarchal systems can erase violence against women and the structural subjection, as well as the radical act of subjectification by female poets through grief-filled elegies oriented around these realities witnessed and subjectively experienced.
이화여대 여성학 수업의 강의계획서들을 정리하고, 젠더·성·돌봄 노동을 다룬 또문의 초기 동인지들을 아카이빙하면서 깨달은 게 있다. 한국 페미니스트들이 보여준 죽음의 시학(necropoetics)은 페미니즘 운동이 남긴 하나의 증상이자 강렬한 표현이었다는 사실이다.
What I've come to understand—through archiving Ewha Women's University's Gender Studies course syllabi and the initial publications of Ttomoon 또문’s journals on gender, sex, and care work—is that the necropoetics of feminists in South Korea were one symptom and, thus, expression of the movement.
그건 시의 언어를 통해 한국 사회 안팎의 사람들에게 쭉쭉 뻗어 나가는 뿌리와도 같았다. “페미니스트”라는 말과 페미니즘 운동은, 서울이라는 공간 안에서 다양한 세대의 활동가와 동지들, 그리고 소외된 이들이 만들어내는 거대하고 교차적인 네트워크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었다.
It is one extending root, breaking out and reaching people within and outside South Korean society through poetic verse. The term “feminist” and the feminist movement exists and feeds into a larger, intersectional network of intergenerational activists, comrades, and marginalized populations within Seoul.
서울 곳곳의 전시 공간, 시위 현장, 집회를 다니며 또문 동인들의 뒤를 밟았던 짧은 시간 동안, 내가 본 활동가들의 일상은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공적이었다. 한쪽 뿌리는 시청역에서 매일 투쟁하는 장애 활동가들과 그 가족들에게로 뻗어 있고, 다른 뿌리는 일터에서의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또 다른 뿌리는 동성 커플의 혼인평등법으로, 그리고 또 다른 뿌리는 한국군 ‘위안부 피해자와 전쟁 범죄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활동으로 뻗어나가고 있었다.
In my brief time tailing Ttomoon 또문 members across art spaces, protests, and demonstrations in Seoul, the day-to-day subjects in the infrastructure of activism are personal and public: one branch of activity extends toward 시청 station and the daily efforts of (dis)abled activist rights groups and family members; another root extends toward changing anti-discrimination laws within the workplace; another toward marriage for same-sex couples; another towards the active remembering of Korean comfort women and wartime crimes; and so on.
내가 보기에 페미니즘이라는 이슈는 단 하나의 시작점이나 끝이 정해져 있지 않은, 아주 유연하고 흐르는 물 같다. 한국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운동 속에서 특정 틀에 갇히지 않고, 디아스포라에만 머물지도 않는다. 말 그대로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리좀(rhizomatic) 형태의 네트워크다. 어떤 뿌리와 줄기는 세계 무대로 뻗어나갔고(4B 운동이나 한강 작가의 문학처럼), 또 어떤 부분은 지하 더 깊은 곳에서 목소리를 내고 노래하며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The feminist cause, in my opinion, is fluid, possessing no single linear source, entrance, or exit within the various movements unfolding in South Korea, nor is it confined to the diaspora. For that reason, it embodies a rhizomatic network. Some roots and nodules have found the global stage (i.e., the 4B movement and the literature of writers like Han Kang), while other parts protest, sing, and express their platform further underground.
이 네트워크는 오프라인과 온라인 공간 모두에서 아주 생생하게 움직인다. 디지털 공간에서 “영영 페미니스트”와 “영 페미니스트”들은 응원봉 시위, #MeToo(#WithYou) 운동, 탈코르셋 운동, 4B 운동 같은 다양한 풀뿌리 모임과 공적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여성권을 정치적으로 목소리 내어 옹호한다.
These networks show up vibrantly in physical and digital spaces. Within the digital space, “young-young feminists” and “young feminists” are publicly engaged in various grassroots communities and public activities politically advocating for women's rights via the light stick protests, the #metoo movement (a.k.a #withyou movement), 탈코르셋 movement (Escape the Corset movement), and the 4B movement.
이 운동들은 모두 남성 중심 문화와 구조화된 사회가 가진 문제들을 풀어나가는 거대한 그림의 일부다. 엄격한 외모 잣대와 그 주변의 유해한 뷰티 산업, 성폭력, 불평등한 집안일 분담, 교제살인 및 여성살해(femicide), 구조적 성차별과 일터에서의 평등, 남초 커뮤니티(manosphere)의 백래시 등 수많은 문제를 다루고 있다.
Each of these movements is one part of a larger picture which addresses the systemic issues of an androcentric culture and structured society: rigorous beauty standards and the harmful beauty industry which surrounds them, sexual assault, inequitable division of labor in the household, femicide, structural sexism and workplace equality, the manosphere, etc.
디지털 공간은 사람들을 모으고 더 깊이 연결해 주는 장이 되어준다. 소셜 미디어는 실시간 중계창이자, 행동을 촉구하는 마이크이자, 저항의 기록이 되었다(예: 다큐멘터리 ⟪남태령⟫). 온라인 속 여러 무리들은 다양한 공간을 넘나들며, 서로 다른 의제를 위해 세대를 넘어 하나의 목소리를 겹겹이 쌓아 올린다.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이나 X(트위터) 같은 공간은 시위대나 활동가, 일반 시민들이 시위가 끝난 뒤에도 다시 만나 관계를 이어가는 계기가 되어주기도 한다.
The digital space offers a network for mobilization and further connection. Social media has served as a live broadcast space, a call to action, and a record of activism and resistance (see The Longest Night: Namtaeryeong). Within these digital realms, pockets of people spanmultiple spaces, layering their voices in unity across generations for different causes. Sometimes digital spaces like KakaoTalk chat rooms, X, etc. provide an opportunity for a second encounter, where protesters, activists, or citizens meet each other once more in the follow-up.
특히 서울의 이러한 공동체에는 늘 자리를 지키는 주도적인 활동가들과 단골 참여자들이 있다. 정치적인 활동을 넘어, 이들은 카카오톡으로 연결되어 페미니즘 독서모임, 러닝 크루, 대학 내 언론 활동 등을 통해 일상의 삶에서도 깊게 연대한다.
These communities, specifically in Seoul, have their own regulars–participants and lead organizers. Even beyond the political exterior, connected through KakaoTalk, they join together in their interior lives through feminist book clubs, running groups, and university publications.
내가 문학으로 먼저 접했던 목소리들은 주로 1960~1990년대의 “영 페미니스트”들이었지만, 이 여성들은 지금도 여전히 현장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들의 정치적 활동은 일제강점기의 나혜석부터 시작해, 강남역 인근 여성살해사건(2016) 등을 계기로 여성살해와 폭력 현실을 직시하며 활동에 나선 최근의 '영영 페미니스트'에 이르기까지 여러 세대의 활동가들 사이에 촘촘히 이어져 있다.
While the voices I came to know through literature often belonged to the “young feminists” of the 1960s–1990s, these women, alongside others, still speak in the present. Their political activism is couched between multiple generations of activists, stretching from colonial era figures like Na Hye-seok 나혜석 to the most recent generation of young-young feminists radicalized by femicide and assault, for instance those involved in the 2016 Gangnam Station murder case (강남역 인근 여성살해사건).
세대마다 운동에 나서게 된 계기나 주된 이슈는 다를지 몰라도, 가장 중요한 건 이들이 항상 현장에서 함께 한다는 점이다. 집회 현장이든, 예술 공간이든, 서로 도우며 만드는 비공식 돌봄 네트워크든 가리지 않고 말이다. 지난 10년 동안 이들은 서로에게 친구이자 멘토, 그리고 든든한 동료가 되어주었다. Each generation has different touchstones and causes for radicalization, but critically, they show up together—whether in demonstrations, art spaces, or through the creation of informal childcare support networks. Over the past decade, they have come to know one another as friends, mentors, and fellow participants.
이러한 공동체 네트워크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공간 모두에서 거세게 일어나는 반(反)페미니즘이나 남성권리 주장 단체들과의 대립을 생각할 때 정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요즘 온라인에서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밝히는 건 엄청난 정치적 공격과 표적 좌표 찍기를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한국의 남초 커뮤니티 생태계에서 반페미니즘은 더 이상 일부의 비주류 문화가 아니다. 공인을 공격하고 보수·우파 표밭을 결집하기 위해 고도로 기획된 무기로 쓰이고 있다. 여성가족부 폐지 요구와 구조적 성차별 담론을 입막음하려는 시도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제도권 정치 캠페인 안으로 들어왔다. 온라인상의 여성혐오가 국가 차원의 정치 구조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버린 것이다. This community network is a vital element in consideration of the opposing anti-feminist, men's rights groups which are largely present within both the politically active digital and physical spaces of these movements. Today, identifying as a “feminist” online invites severe political backlash and targeted harassment. Within the South Korean manosphere, anti-feminism is no longer a fringe subculture; it is a highly coordinated weapon used to target public figures and mobilize a conservative, right-wing voting bloc. Demands to abolish the Ministry of Gender Equality, paired with rhetorical efforts to silence discourse on systemic sexism, have seamlessly entered mainstream campaigns. This shift intimately bridges online misogyny and state-level political architecture.
강남역 사건 이후 10년이 지난 지금, 한국 페미니즘 운동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돌아보려면 지금의 저항을 가능하게 한 그 뿌리와 기반을 먼저 살펴봐야 한다. 돌봄 노동의 가치와 평등, 여성의 역할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글을 써 온 또문 공동체 페미니스트들의 영향력 역시, 한국 여성학의 역사적 흐름과 함께 볼 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A decade after the Gangnam Station incident, evaluating the development of South Korea's feminist movement requires looking back at the foundational structures that made modern resistance possible. Indeed, the ripples of impact from feminists within the Ttomoon 또문 collective, who continue to publish articles challenging the status of care work, equity, and women's roles, is best understood alongside the historical evolution of Korean gender studies.
1980~90년대 학자들과 또문 필진들의 수많은 기록과 “여성학”이라는 학문, 그리고 젠더의 언어들은 국제적인 정치란 결국 한국 여성들의 몸과 가정, 그리고 우리가 쓰는 언어 그 자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증명해 주었다. 사회적 구성물로서의 젠더 언어를 찾고 권력과의 관계를 밝혀내기 위해 사회학, 신학 등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을 모았던 이화여대 초기 강의 목록만 봐도 잘 나타난다. 초기 강의계획서에는 앨리스 암스덴, 베로니카 비치, 앨리스 워커 같은 해외 학자들의 이름이 문화인류학자 조한혜정 교수 같은 국내 학자들과 함께 올려져 있었다. The Korean literature and language of gender and “Feminist Studieds 여성학” as a discipline as well as the testimonies of scholars and Ttomoon 또문 writers in the 1980s-1990s has shown again that international politics is personal, to the bodies, the households, and the very language of women in South Korea. This is evidenced by the reading lists of early courses in Ewha which assemble scholars from sociology, theology, among other disciplines to find the language for gender as a construct in society and its influence on power. In early syllabi and class schedules, the names of Alice Amsden, Veronica Beechey, and Alice Walker joined scholars and professors such as the cultural anthropologist Cho Haejoang 조혜정.
또문의 문학 출판물과 동인지는 1980~90년대 당시에 보기 드문 귀한 자료였다. ⟪새로 쓰는 사랑이야기⟫, ⟪여성 해방의 문학⟫, ⟪열린 사회 자율적 여성⟫ 같은 책들을 통해, 가부장적 국가가 강요하던 가정과 관계, 젠더라는 단일한 틀에 계속해서 균열을 냈다. 공동육아 네트워크를 제안하고, 유교적 가치관이 깊게 박힌 사회 구조를 비판하며, 가족과 여성의 자율성, 노동을 다시 정의하고 써 내려간 작업들은 오늘날 페미니스트들에게도 여전히 깊은 영감을 주고 있다. Ttomoon 또문's literary publications and collective journal 동인지 operated as a rare literary resource in the 1980s and 1990s which challenged monolithic state narratives of household, relationships, and gender through publications like A Newly Written Love Story 새로 쓰는 사랑이야기, Literature of Women’s Liberation 여성 해방의 문학, Open society, autonomous women 열린 사회 자율적 여성, etc. The promotion of communal childcare networks, the critique of social structures embedded with traditional Confucian standards, and the (re)writing of family, female autonomy, and labor are to this day a central influence for feminists.
결국 1980년대 제도밖 페미니즘 인쇄물부터 오늘날의 “탈코르셋”, 4B 운동 같은 디지털 지형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짚어보면, 한국 페미니즘에 대한 아주 깊은 진실 하나를 만나게 된다. 페미니즘은 멈춰있는 게 아니라 다차원적으로 계속 확장하며 살아 숨 쉬는 '아카이브'라는 점이다. 처음에 문학적 호기심으로 시작해 초기 여성학 강의계획서를 뒤적이고, 페미니스트 고정희, 정희진의 글을 읽던 나의 공부는, 어느새 서울 거리거리마다 손에 잡힐 듯 촘촘히 구축된 연대의 생태계를 온몸으로 느끼는 경험으로 바뀌어 있었다. Ultimately, mapping the trajectories from the underground feminist prints of the 1980s to the digital landscapes of today’s "Escape the Corset" and 4B movements reveals a profound truth about South Korean feminism: it is a multi-dimensional, expanding, living archive. What began for me as a literary interest, unearthing early gender studies course syllabi and reading the texts of feminists Goh Jung Hee 고정희 and Jeong Hee-jin 정희진, transformed into a recognition of a tangible, breathing ecosystem of solidarity built into the streets of Seoul.
수십 년 동안 이어진 정치적 격동과 역사적 상처, 눈부신 발전의 흐름 속에서, 이 페미니즘 운동이 보여준 가장 급진적인 행위는 바로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온 관계의 힘이었다. 참여하는 사람은 바뀌고 운동의 방식은 변할지라도, 진정한 연속성은 서로를 위해 더 평등하고 정의로운 미래를 꿈꾸며 수십 년 동안 현장에 나오고, 서로의 삶을 목격하고, 다정하게 돌봐온 깊은 우정과 연대의 마음에 있다는 것이다. Across decades of political shifts, historical trauma, and rapid development, the most radical act of this activism has been its relational endurance. Through changing participants and evolving performances, the true continuity lies in the deep camaraderie of showing up, bearing witness, and caring over several decades in pursuit of a more equitable and just future for one another. (2026. 08, 또문브런치에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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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28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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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 기간: 2026년 8월 20일(목)~8월 26일(수) 7일간.
- 장소: 메가박스 신촌, 한국영상자료원
- 슬로건: ‘F를 상상하다’ (Reimagining F)
지난 6월 17일부터 7월 29일까지 7주에 걸쳐 진행되었던 사전(교육)프로그램 '씨네페미니즘학교'는 AI시대의 성평등과 전환적 사유를 주제로 진행된 강좌들이었는데, 지나고 보니 영화제의 슬로건 'F를 상상하다'의 대표 F들, Feminism, Film 그리고 AI시대와 함께 새로 (혹은 다시) 등장하는 'Flicker'를 연결시켜 생각할 수 있었던 너무 좋은 강좌들이었습니다. 게다가 무료라니, 내년의 씨네페미니즘 학교가 열리면 꼭 참여해보시라는 추천을 드립니다. AI기술의 급격한 대중화속에서 경제적 대도약과 산업전환을 꿈꾸는 억만장자 엔지니어들과 자본가, 권력자 들이 앞다퉈 종점을 알 수 없는 경주를 진행중입니다만, 노동과 계급, 생명과 자연, 그리고 페미니즘의 입장들을 헤아리며 진행중인 경주와는 다른 트랙을 상상하고 준비하고 실행하는 힘도 꼭 필요한 일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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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영화제는 33개국 121편이 상영될 예정이라고 하고, 20, 22, 25일에 상영될 개막작 ⟪정거장⟫은 예맨의 여성전용주유소를 배경으로 전쟁이 망가뜨린 장소에 안전한 피난처를 만들어나가는 여성서사라는 소개만으로도 많이 기대가 됩니다. 공식 홈페이지(www.siwff.or.kr)를 통해서 121편의 상영시간표를 확인하시고 티켓 예매를 서둘러보세요.
영화제는 늘 또문동인들이 많이 참석하는 만남의 자리였기도 합니다. 영화들 사이사이, 만나서 인사와 담소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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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광복절을 떠올리면, 또문학교를 열어 마치 광복절을 기다리듯 ⟪'위안부' 더 많은 논쟁을 할 책임⟫을 함께 읽으며 저자들의 강의들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연속강좌는 광복절 전날에 마무리가 되었었고요. 광복절은 지났지만, KBS에서 ⟪ 추적60분: 돌아오지 못한 이름들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 시사기획 창: 기억 전쟁 : '위안부' 증언이 멈춘 뒤⟫를 방영했습니다. 기록삼아 링크를 걸어둡니다. 폭염, 폭우, 가뭄, 큰 지진들 속에 평화를 지키지 못한 채로 계신 분들을 생각하며, 최근 노래는 아니지만, '위안부' 여성들을 위한 컴필레이션 앨범 ⟪이야기해주세요 3⟫에 실린 " 평화로운 사람들"(아래 뮤직비디오)로 오늘 뉴스레터를 마칩니다. 뮤직비디오 배경이 ⟪ 콘크리트 녹색섬⟫의, 철거된 개포주공아파트 단지의 정원과 나무들인 것도 사족이지만 덧붙여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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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문화를 후원하고 계신 동인들
후원회원(가나다순): 곽영선, 권김현영, 김경희, 김미현, 김보화, 김상애, 김성례, 김소영, 김신현경, 김영경, 김영옥, 김영일, 김유익, 김은실, 김정명신, 김정은, 김정희원, 김주희, 김진아, 김찬호, 김태형, 김현미, 김혜련, 김효정, 김희옥, 남정호, 두애린, 문수복, 문정주, 박나미, 박은, 박진숙, 박총, 배채은, 백경흔, 변재란, 소영, 손은정, 안혜경, 안희경, 안희옥, 양선미, 양현경, 양현아, 여은영, 연주희, 우은희, 유승희, 이경자, 이선향, 이소희, 이수정, 이숙경, 이은아, 이은주, 이정주, 이지예, 이진아, 이헌미, 이현주, 이혜령, 장필화, 전유나, 정진경, 정혜란, 정혜진, 정희진, 조민아, 조옥라, 조은, 조형, 조한혜정, 지현, 진영옥, 채혜원, 최소연, 최수연, 최은숙, 최은주, 최한솔, 한혜정, 허순희, 현유라, 황은진(84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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