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하게 잘 지내고 계신지요?
"더" 뜨겁고 "더" 길어진 폭염이 예고되는 즈음입니다. 최근까지만해도 올해 여름 유럽이 겪고 있는 기록적 폭염에 대한 뉴스가 많았습니다. 영국만 하더라도 35도 이상의 기온이 석 달 이상 지속되었다고 하고, 에어컨이 거의 없다는 프랑스 등 유럽 각지의 폭염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기후위기에 대한 원인과 해법에 대한 "단순한" 설명은 늘 가능하고, 매해 '더'와 '더'의 현상은 더욱 극심하고 극단적으로 전개될 예상입니다. 이런 전망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한국정부가 선택한 AI관련 3대 메가프로젝트 추진의 방향은 위기의 전망을 더 가속화할 것이라는 예측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파리협약을 성사시켰던 2015년, 충남 예산의 민자고속도로 추진관련 분쟁 지역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국내 최대의 저수지인 예당호가 있고, 밤사이 볏단을 서로 몰래 주고 받았다는 사이 좋은 형제가 살았던 '의좋은 형제 마을'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렇게 대대로 농사를 지어온 농부가족들이 많이 사는 곳이었고요. 그 당시만해도 예당호 가까이, 마을을 관통하는 것으로 설계된 고속도로 노선을 변경해달라는 주민들과 지자체의 요구가 시행사와 갈등을 빚고 있었습니다. 그때 마을 어르신들 중 한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스마트휴게소인가 뭔가가 들어온다면서 지역일자리, 지역경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선전해대는데, 우리도 고속도로휴게소가 들어선 다른 마을 이야기 이미 듣고 안다. 옛날같으면 방학 때 손주들보고 놀러오라고 해서 밭에서 난 것들 푸짐하게 나눠먹고, 느긋하게 놀고, 돌아갈 때 바리바리 싸서 보내고 하면서 할머니, 할아버지 역할을 했던 거다. 그런데 휴게소 생기고 난 다음에는 휴게소 화장실에서 일하는 할머니, 할아버지 모습이 되어버려서 손주들 볼 면목이 사라졌다더라. 크게 부자는 아니었어도 손주들에게 의지가 되는 시골집 할머니, 할아버지로 남을 수 있는 것도 복이었다'라고 하면서 그런 땅을 내주라고 하니 속상하기 짝이없다는 말씀이었어요.
3대 메가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추진된다면 땅, 물, 전기, 노동양식, 삶의 조건 등이 급격하게 변화하게 되겠지요. 기후위기와 사회위기를 뛰어넘는 경제도약을 주장하는 정책입안자들이 있지만, 그때 정말 개인들의 삶도 잘 돌봐질 거라는 낙관적인 기대가 들지 않는 것은 예산 할아버지의 말씀이 귀에서 떠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상황과는 대조적으로 며칠 전 뉴욕주가 미국 50개주 중에서는 최초로 데이터센터 건설에 대해 1년간 전면 중단 조치를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트럼프의 격노에도 불구하고, 경쟁적인 AI관련 산업의 추진을 유예해야 한다는 Stop AI Race 등 시민단체들의 요구는 "달리는 말을 멈추고 자신의 영혼이 따라오기를 기다린다"는 속담을 떠올리게 합니다. '더'와 '더'를 견디며, 동인들과 함께 영혼이 잘 따라와주기를 기다려 봅니다. (올해 기후정의행진은 9월 19일로 정해졌다는 소식도 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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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또문소식은 아래 순서로 쓰여졌습니다.
- 또문독서회 7-8월 휴가공지와 8월 컴백 안내
- [초대] 김우창 다큐멘터리 ⟪기이한 생각의 바다에서⟫ 시사회
- 지금 여기에 : 김미현, "여성BJ의 음지, 양지의 논란을 반추하며"
- 함께 나눠요 : 권김현영, "내가 달리기에 빠진 이유"
현유라, "돌봄을 둘러싼 물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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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문화 소모임, 또문독서회는 여름방학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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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8월에 시작해 꼬박 1년을 지내온 독서회가 여름방학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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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년간 독서회에서 집중해온 1순위 키워드는 ⟨돌봄⟩이었던 것 잘 아시지요? 지난 겨울 읽었던 책 중에는 조안 C 트론토의 ⟪돌봄민주주의⟫도 있었습니다. 마침 트론토 교수가 방한하여 여러 대학과 단체의 포럼과 강연들이 이어졌는데, 그 중 국회의원회관에서 진행된 돌봄민주주의 토론회는
아래 유튜브 다시보기가 남아 있어 관심있는 분들께 공유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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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김우창 다큐멘터리 ⟪기이한 생각의 바다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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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례 동인께서 8월 18일에 진행되는 김우창 다큐멘터리 ⟪기이한 생각의 바다에서⟫ 시사회에 초대해주셨어요.
지난 해 부산국제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상영을 시작으로 모스크바영화제, 몬트리올영화제에서도 주목받고 심사위원특별언급상, 각본상 등을 수상한 작품으로 김우창 선생님의 동명의 저서와 같은 제목의 다큐멘터리입니다.
오랜만에 동인들과 함께 다큐관람의 기회를 제공해주신 김성례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15인 선착순이므로 아래 신청링크를 얼른 꾹 눌러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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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에
- 최근 논란이 된 여성BJ사건을 다루는 기사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어느 대학저널에 실린 글의 부제에는 '그 페미니즘은 여성BJ를 적으로 삼았나'를 붙였는데, 여성계 내부에서 이 사건을 함께 들여다보게 되는 쟁점을 요약한 것으로도 보였습니다. 김미현 동인께서 논란에 대한 소개와 쟁점을 '비난하지 않고 문제를 제기'하는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좀 더 세밀하게 살피는 글을 보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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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 전, 인터넷 방송의 여성BJ가 화장품 회사의 협업광고를 하게 된 것이 온라인 상에 논란이 되었다. 논란은 이른바 여성의 성상품화와 대상화를 통해 수익을 벌어들이는 여성BJ들이 ‘양지’로 나오게 되는 것이 문제적이라는 것이었다. 해당 화장품 회사는 논란이 일자 바로 협업을 취소하고 사과입장을 표명했다.
논란이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이하 한사성)에 대한 비판(혹은 비난)으로 선회한 것은 한사성이 이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면서이다. 한사성은 “‘앙지’와 ‘음지’라는 구분을 거부한다 - 인터넷 방송BJ 여성의 광고모델 기용 취소 및 사이버몹에 부쳐”라는 성명서를 게재했다.이 성명서는 스스로 성적 대상화되거나 섹슈얼리티로 수익을 창출하는 여성들에 대한 비난이 특정한 여성에 대한 낙인이 될 수 있고, 이러한 낙인이 성폭력 피해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고 말한다. (성명서 전문보기)
우리는 ‘양지’에 나올 자격 판단의 기준을 거부한다. 바꿔 말해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과 그로 인한 차별과 혐오에 반대한다. 기준에 충족된 여성과 자격 미달의 여성을 구분하는 것은 성폭력 피해자에게도 적용된다. 사회는 문란한 여성이기 때문에 성폭력을 겪는다고 비난하고, 이 통념은 피해자의 사회적 지위를 깎아 말하자면 ‘음지’에 머물러야 하는 존재로 취급한다.
한사성의 논평은 엄청난 질타에 놓였다. 해당 여성 BJ가 막대한 수익을 벌어들이고 있다는 점이 거론되며 함께 ‘성적 대상화가 돈이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 문제’, ‘여자가 하는 거라면 비난하면 안 된다는 게 페미니즘은 아니다’. ‘성노동을 옹호한다’, ‘많은 수익을 버는 여성BJ를 피해자와 동일하게 볼 수 없다’ 식의 비판/비난이 뒤따랐다.
‘성적 대상화’에 대한 비판이 여성혐오로 미끄러질 때
한사성은 논란이 있고 두달 후 ⟨여성 BJ를 둘러싼 현상에 페미니즘으로 질문하기⟩라는 이름의 집담회를 기획했다. 성명서에 대한 논란 이후, 해당 사태에 이야기하고 풀어나가자는 취지였다. 이 집담회에서 한사성 활동가 신성연이는 온라인 페미니즘에서 성차별을 설명하기 위해 ‘성적 대상화’라는 개념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며, 탈코르셋과 4B운동 등 ‘성적 대상화되지 않을 권리’를 실현하는 방식의 운동이 전개되었다고 설명했다. 여성의 성적 대상화를 차별의 중심에 두고, 이에 저항하는 실천으로 직조된 온라인 운동 속에서 스스로를 대상화하며 막대한 수익을 벌어들인다고 알려진 여성BJ는 운동에 대한 위협, 나아가 ‘여성인권’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된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대상화 혹은 상품화 하여 돈을 버는 여성의 실천을 비판해야 한다는 당위가 해당 BJ가 ‘양지’로 나오는 것을 반대하는 주요 논리가 된다.
나는 성을 대상화하는 여성들이 더 많이 대중들 사이에 노출된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이 만연해질 것이라는 문제의식을 완전히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스스로를 대상화하는 것이 이미 만연한 사회 속에서 특정 국면의 특정한 실천만이 ‘상품화’ 혹은 ‘대상화’의 이름으로 문제시 된다면, 과연 그 논리가 적합하고 타당한 것인가는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성의 위치를 음지와 양지로 구분하는 것은 이른바 성녀와 창녀의 프레임을 떠올리게 한다. 이는 ‘보호할 만한’ 여성을 종속시켜 남성성을 수행을 가능케 하는 한편, 그렇지 못한 여성은 성적으로 착취하고 비난하며 여성들의 ‘몸가짐’을 단속하는 가부장제의 규범 장치였다. 이 장치는 여전히 유효하지만 섹슈얼리티 그 자체가 상품이 될 수 있으며, 여성의 성적 표현과 실천이 ‘주체성’의 일환으로 여겨지는 이 시대에는 규범은 일상의 감시의 장치이기보다는 특정한 국면이나 장에서 여성을 평가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예컨대, 여성이 교환학생을 가거나 워킹홀리데이를 가는 것이 그 자체로 규범에 반하는 실천으로 간주되진 않지만 ‘퐁퐁남’과 같은 논란을 만났을 때는 여성의 ‘문란함’을 반증하는 경험으로 간주된다.) 오히려 모든 것이 상품화되고, 스스로를 잘 상품화하여 적당한 시장에 올리는 것이 최선의 과제가 된 시대에 섹슈얼리티는 하나의 요소일 뿐이다. 성 상품화와 대상화를 그 자체로 비판하는건 이제 성 보호주의자들과 일부 페미니스트들, 그리고 보수 기독교인들밖에 없어 보이기도 한다.
오늘날에는 스스로를 대상화함으로서 얻는 자원과, 대상화되고자 하는 욕망, 성 규범의 사이에서 다양한 여성들의 실천이 이루어지는데, 이들의 실천은 특정한 개별 쟁점과 사건으로 도출될 때 그것의 의미가 각자의 장에서 다르게 부착된다. 남성 시청자들을 주 타겟으로 하는 플랫폼에서 여성BJ들의 실천은 어떤 순간에는(비난이 대상이 될 때는) 유사 성산업처럼 간주되기도 인기를 얻은 인터넷 방송 BJ들은 인플루언서, 디지털 크리에이터로 호명되기도 한다. 이번 논란의 BJ 또한 일례로 ‘청년의 날 크리에이터 어워즈’에서 소통부문 대상을 받았는가 하면, 넷플릭스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출연진으로도 이름을 올려온 인플루언서였다. 또한 그녀의 인스타그램 게시물의 댓글에서 이미 ‘언니 예뻐요ㅠㅠㅠ’와 같이 그녀의 이미지를 상찬하는 여성(으로 추정되는) 계정을 부지기수로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논란은 경계에 있는, 혹은 이미 ‘양지’로 진출한지 오래인 누군가를 규범 장치를 활용하여 라벨링 한 것은 아닌가? 정말 분노의 지점은 스스로를 성적으로 대상화하여 ‘남성들에게 수익을 얻어’ 돈을 벌던 BJ가 화장품 회사와의 협업으로 여성 소비자층의 시장에서 수익을 얻고자 하는 것을 용인할 수 없다는 점일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분노의 포인트가 되는 까닭은 더 풍부한 분석이 있어야 하겠지만, ‘성적 대상화’를 경계하고 비판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여성을 성녀와 창녀로 이분화하여 통제해왔던 젠더규범에 기대게 된 결말은 자못 씁쓸하다.
성폭력 피해 인정을 둘러싼 경합의 현장에서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현장의 경험 속에서 나는 한사성의 성명문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했다. 앞서 말했듯, 규범 장치는 늘상 억압적이진 않지만 특정 국면에서 매우 공고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성폭력의 규명은 바로 그러한 의미를 둘러싼 경합이 치열하게 펼쳐지는 장이다. 여성의 성적 실천과 재현은 늘상 문제가 되지 않을지라도, (성)폭력 피해를 입었을 때에는 그녀가 겪은 그 과정이 문제적인 것으로 등장하곤 한다. 여성의 실천과 행위성이 특정한 사건과 행위를 폭력으로 보지 못하게 만들기도 하거니와, 설사 그것을 인지한다 할지라도 성폭력으로 (법적/사회적) 인정을 받는 것은 더욱 어렵다.
‘음지’에 있는 여성들의 성폭력 피해가 비가시화되거나, 스스로를 성적 대상화한 흔적들이 성폭력 피해를 규명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상황은 드물지 않다. 노래주점과 같은 유흥주점에서 일을 했다는 피해자의 이력은 피해를 의심하는 강력한 기제가 되고, SNS나 틴더와 같은 앱을 통해 온라인에서 상대방을 만났다는 사실만으로도 피해자가 내심 성적 행위를 원하지 않았느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다. 여성BJ들은 자신의 촬영물이 유포되지 않을거라 기대하고 전제된 채 방송을 하지만 원치 않는 유포피해를 겪어도 경찰에서는 신고를 반려하기 일쑤이다. 피해자다움에 대한 오랜 문제제기와 사회문화의 변화 속에서 밤 늦게 길거리를 돌아다녔다거나, 당시 노출이 있는 옷을 입고 있었다는 것 등의 ‘고전적인’ 피해자 비난의 논리들은 많이 약해졌지만(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 증대된 행위성의 영역에서 새로운 실천들이 다시금 피해자를 재단하는 잣대가 되었다. 스스로를 성적 대상화한, 성적으로 ‘주체적인’ 여성의 피해는 늘 의심받는다.
그렇다면 여성을 비난하지 않고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은 무엇일까? 기존의 페미니즘 운동에 설명하는 주된 방식은 사회경제적 구조속에서 혹은 젠더화된 조건으로 인해 여성들이 그 실천의 틀에 포획되거나, 빨려들어간다고 설명하는 것이었다. 이번 집담회 <집담회: 여성BJ를 둘러싼 현상에 페미니즘으로 질문하기>에서도 ‘여성의 몸을 상품화하게 만드는 사회’, ‘여성의 몸을 관통하는 산업’에 대한 이야기들이 등장하곤 했다.
그 또한 공감가는 문제의식이었지만, 그것만으로 지금의 현실에 충분히 변화의 계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는 고민이 된다. 산업의 문제, 구조의 문제로만 이야기 하기에는 만연한 성적 대상화와 상품화 속에서 이에 개입된 여성들의 실천과 행위성이 현실의 일부이다. 시장은 얻을 수 있는 물질적/비물질적 기대치 만으로도 누군가의 욕망을 추동하고 그 욕망들 속에서 또 다른 시장을 만든다. 어떤 여성들은 구조와 산업 속에서 순환하지만 그저 수동적인 매개체이기보단 능동적인 행위자로서 자신의 욕망을 실현해내고 다른 욕망들을 자극한다. 그러나 그녀들이 판을 바꾸는 위치에 도달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렇다면 ‘심판하는 페미니즘’이 되는 것을 경계하고,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규범을 공고히 하는 것에도 반대하면서 다른 틈을 만들 수 있는 방식은 무엇일까. (2026. 07, 또문브런치에서 읽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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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나눠요
- 이번엔 권김현영, 현유라 두 분의 글을 전합니다.
- ⟨다뛰여⟩라고 들어보셨나요? 24년 10월부터 "다시 뛰는 여성정치"를 모토로 달리기를 시작해온 페미니스트 러닝크루의 이름입니다. 크루의 한 사람이기도 한 권김현영 동인이 '왜 달리기인지'를 그 매력과 철학을 소개해주셨습니다. ⟨다뛰여⟩는 매주 일요일에 달리고 있다고 하니, 권김 동인과 함께 달리기에 빠져보셔도 좋겠습니다.
- 도쿄에 계신 현유라 동인께서 "젠더, 자본, 권력의 치열한 장"으로서 ⟨돌봄⟩ 문제를 질문하고, 한국과 일본 사회에서 전개되고 있는 주요한 양상들을 짚어주셨습니다. 외주화, 젠더화되면서도 더욱 착취적으로 전개되는 돌봄의 형식을 지적하고 '젠더혁명'이라는 대안도 언급되면서 흥미롭게 읽었던 글입니다. 무엇보다 이 글이 쓰여진 계기가 된 할아버지의 장례식 장면부터 현유라 동인의 마음과 문제의식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기도 하고요.
현유라 동인, 동인의 어머니, 이모, 할머님께 애도와 위로를 전하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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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시작되고 남산 북측순환로를 찾았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어 가을 마라톤 대회를 준비하는 러너들의 훈련 성지로 유명한 길이다. 본격적으로 달리기를 시작한 지 3년차 러너로서 꼭 한번은 가보고 싶었다. 도착하니 자동차와 자전거의 출입이 통제된 채 울창한 나무들이 길게 그늘진 긴 숲길이 펼쳐졌다. 기록 경기를 준비하는 이들 사이에서 혹시나 민폐가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기우였다. 그 길에서 가장 많이 만난 사람은 시각장애인이었다. 지팡이를 짚고 길의 한가운데에서 천천히 걷는 사람부터, 대회를 준비하는 시각장애인 러너와 그와 끈으로 팔을 연결해 발을 맞춰 뛰는 가이드 러너들이 함께 합을 맞추고 있었다. 이름과 얼굴이 알려진 러너들과 아마추어 동호인들도 함께 그 길에서 각자의 목적대로 훈련을 한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사람, 앞, 기둥, 바닥 이런 짧은 말이나 간단한 손짓으로 서로 부딪히지 않고 달릴 수 있는 룰이 있기 때문이다. 속도와 거리가 늘어나는 것만큼이나 이런 몸말을 배우면서 내가 러너가 되어간다는 기쁨이 있다.
달리기를 시작하게 된 이유는 갱년기가 시작되면서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붙는 살들과 체온의 격변 등을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사실 원래 좋아하는 운동은 택견이나 복싱처럼 타격 계열의 운동이었고, 달리기는 그 운동을 하기 위한 체력을 키우기 위한 보강운동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달리기, 그것도 오래 달리기의 매력은 대단했다. 한 대형 러닝 커뮤니티에 이런 글이 올라온 적이 있다. 어떤 남자 회원이 올린 글이었다. 자신은 어떤 운동을 해도 초반부터 상위 그룹에서 놀았는데 동네 러닝 크루에 나갔다가 고인물 아줌마들을 못 따라가서 황당했다는 것이다. 그 글 아래에 댓글이 스무 개 넘게 달렸다. 마라톤은 오직 훈련량만큼 보상을 주는 운동이니 까불지 말고 열심히 하라는 내용이었는데, 댓글을 쓴 사람도 대부분 남자 회원들이었다. 그중에서도 이런 댓글이 기억에 남는다. 누군가 느리게 뛰고 있다고 해도 무시하지 말라고, 그 사람이 이제 처음 시작한 사람인지 아니면 수십 년을 뛰다가 지난 대회에 부상을 입고 재활 중인 사람인지, 아니면 오늘 훈련을 슬로우 러닝으로 하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쓸데없는 경쟁심 가지지 말고 자신에게 집중하라는 내용이었다. 이런 태도가 기본이라는게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우리는 흔히 마라톤을 인간의 신체적 한계를 넘는 극기 훈련쯤으로 여긴다. 하지만 장거리 달리기는 인간의 한계를 넘는다기보다는 인간 종이 가진 특유의 진화적 산물이라는 가설도 있다. 대부분의 포유류는 온몸이 긴 털로 덮여 체온을 쉽게 식힐 수 없지만 인간은 두꺼운 체모가 퇴화하고 온몸에 땀샘이 분포되어 있어 오래 달리면서도 체온의 급상승을 막을 수 있다. 오래 달리기는 인간이 잘할 수 있고, 잘 해왔던 일이다. 그러니 한계를 '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각자의 방식대로의 달리기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 무엇보다 나를 신나게 한 것은 오래달리기라는 종목에서 유독 최근 들어 여성들이, 그것도 엘리트 스포츠에서는 은퇴할 나이인 40대에 종합우승을 차지하는 등 두드러진 성과를 내고 있다는 점이었다. 2020년 울트라마라톤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195마일(약 314km) 이상의 초장거리에서는 여성의 평균 완주 시간이 남성보다 빠른 것으로 조사되었다. 재스민 파리스는 431km의 스파인 레이스에서 남녀 통틀어 우승하며 종전 기록을 12시간이나 앞당겼는데, 경기 중 어린 딸을 위해 모유를 짜내면서 이룬 기록이라는 점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장거리 달리기에서 여성의 신체적 능력을 재조명하는 연구도 활발하다. 최근 베를린 마라톤 완주자 87만 명의 기록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30km 이상의 후반부에 페이스가 20% 이상 무너지는 이른바 '통곡의 벽'을 경험하는 비율은 남성이 2배 이상 높았고, 3시간 이내 완주자 중에서는 여성에 비해 6배 이상 높았다. 진화인류학자 카라 오코복과 세라 레이시는 여성의 몸은 남성에 비해 지방을 에너지원으로 전환하는 능력이 뛰어나 오랜 시간 동안 동물을 추적하는 사냥에 대사적으로 최적화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셰프린 등의 연구에서는 이 같은 차이를 신체적 차이에 따른 결과라기보다는 페이스를 고르게 유지하는 능력에서 성차가 나타난 결과라고 본다. 남성 주자들이 초반에 오버페이스를 하는 경향이 있다면, 여성 주자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페이스를 이븐(even)하게 운영한다는 것이다.
여자의 달리기는 달리기 그 자체를 더 풍부하게 해석해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통로로도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올해 열린 여성 마라톤 대회에서 내가 소속되어 있는 페미니스트 러닝크루 ⟨다뛰여⟩는 3.8 여성대회 참가자들에게 받은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차별금지법 제정", "성평등 개헌" 등의 구호를 몸에 매달고 뛰었다. 동성결혼 법제화를 위한 연대체 <모두의 결혼>에서는 동성결혼 몸자보를 하고 웨딩 베일을 쓰고 부케를 들고 달렸다. 대회 직후 일부 마라톤 커뮤니티에서는 레이스 중에 본 '동성혼 법제화'나 '차별금지법 제정' 같은 정치적 구호들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는 불평이 올라오기도 했다. 마라톤은 순수한 체육 행사인데 왜 정치를 끌어들이냐는 투였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그 '불편함'이 무척 반가웠다. 1967년 보스턴 마라톤에서 캐서린 스위처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레이스 도중 배번호를 뜯으려 달려든 대회 감독에게 저지당할 뻔했지만 동료들이 그를 막아선 덕에 끝까지 완주했다. 애초에 여성이 안전하게 거리를 달릴 권리조차 길고 긴 투쟁으로 얻어내야 했던 역사를 생각하면, 여성마라톤이 가장 정치적인 마라톤이 된 것은 당연하고 자랑스러운 일이다.
페미니스트 러닝크루 ⟨다뛰여⟩에서는 일요일마다 5.8km의 숲길을 함께 뛰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는 3.8 여성의 날 기념런, 언론노조 성평등위원회와의 조인트런, 한국여성의전화와 함께한 강남역 사건 10주기 추모 및 친밀한 관계에서 살해당한 여성들을 기리는 137런 등의 달리기를 함께 했다. 이번 지방선거를 맞아 우리 동네에 출마한 정치인들과 함께 응원런을 하기도 했다. 각자의 속도대로 따로 또 함께 달리는 여러 가지 실험을 앞으로도 해보려고 하는 중이다.
다시 남산 순환로의 풍경을 떠올려본다. 숲길의 짙은 그늘 아래서 서로의 달리기를 존중하며 각자의 달리기에 몰두하던 사람들을 생각한다. 길 위에서 폭력과 차별과 혐오에 맞서는 문구를 달고 함께 질주했던 지난 137런의 경험을 생각한다. 남을 앞지르려 무리하는 대신 끝까지 나의 호흡을 지킬 때, 그리고 나보다 조금 느린 동료의 곁을 든든하게 지키며 다 함께 뛰어갈 때 흐트러졌던 숨이 다시 평온을 찾았던 것을 기억한다. 어떻게 그렇게 페미니스트로 오랫동안 살 수 있냐는 질문에 항상 나는 함께 달리는 동료들이 있어서라고 답하고는 했는데, 요즘처럼 그 대답이 진심이었던 적이 없다.
참고자료
Ocobock, C. & Lacy, S. (2024). Woman the hunter: The physiological evidence. American Anthropologist, 126(1), 7–18.
Seffrin, A., Villiger, E., Andrade, M. S., Rosemann, T., Weiss, K., & Knechtle, B. (2026). Sex differences in marathon pacing: analysis of 873,000 Berlin marathon runners reveals men are twice as likely to "hit the wall." Scientific Reports, 16, 19529.
RunRepeat & IAU (2020). The State of Ultra Running 2020.
Ingle, S. (2019. 1. 17.). Jasmin Paris becomes first woman to win 268-mile Montane Spine Race. The Guard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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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할아버지의 죽음은 처음으로 밀접하게 겪은 죽음이라 아직도 잔상이 깊게 남아 있다. 무엇보다도 그간 고민해 왔던 돌봄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 과정이었기 때문이었을까? 몰랐던 것들을 알아차리게 했고, 이들에 반문하게 했다. 그리고 아직도 풀리지 않은 물음들이 있다.
엄마는 장녀였기에 할아버지 돌봄의 선봉장이 되었고, 삼촌들은 자연스레 전선에서 물러났다. 그녀의 근거에 따르면 삼촌은 일을 하고 있으니까, 출근해야 하고 퇴근하면 또 피곤하니까, 돌봄은 당연히 ‘일’하지 않는 엄마, 이모의 몫이었다. 그들은 교대로 부모의 집에 가서 잤다. 섬망 증세로 밤중 대부분의 시간 할아버지는 깨어 있었기에 곁에 있는 이들은 사실상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 엄마는 점차 야위어 갔다. 출근하지 않는 것은 구조적인 문제였음에도 돌봄은 당연히 여자가 할 ‘일’이었다. 기억 속 할아버지는 조용하고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는데 치매 증세가 오자 무언가를 끊임없이 두려워했고, 자식이 곁에 없으면 홀로 곁에 있는 할머니를 구박했다. 할머니는 울었다. 딸에게 전화를 건다. 그럼, 엄마는 다시 본가로 가서 할머니를 달래고 할아버지 곁을 지켰다. 이런 일상이 몇 달간 반복되었고 결국 할아버지는 요양원에 보내졌다. 그렇게도 엄마가 반대했던 일이었지만, 이미 그녀들은 지쳐 있었다. 설날, 가족 모두가 모여 함께 요양원을 찾았다. 여섯 명을 담당하는 전문 간병인의 손길로 할아버지는 너무나도 깨끗했지만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말도 하지 못하는 상태로 쪼그라들어 있었다. 엄마, 이모, 할머니는 죄책감을 느꼈고 슬퍼했지만 그를 더 이상 퇴원시키지는 못했다. 할아버지는 설을 보내고 돌아가셨다.
6월 23일 국가데이터처가 국민계정(GDP)에 집계되지 않는 무급 가사노동 가치를 금액으로 환산한 통계인 ‘2024년 국민 시간 이전 계정’을 올해 처음 공표했다. 조사 결과, 한국 여성의 가사 및 육아 부담은 84세까지 지속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반면 남성은 여성보다 40년 조기인 44세부터 본인이 제공하는 가사 노동량보다 제공받는 돌봄의 양이 더 많아지는 ‘가사 흑자’상태에 진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여성 84살 돼서야 가사노동서 해방될 수 있다니” 사설은 여성이 노년기에 접어들면서도 가사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상을 조명한다. 이러한 현상은 인구 고령화뿐만 아니라, 손자녀를 맡는 ‘황혼 육아’와 배우자 간병 ‘노노 (老老) 돌봄’ 등의 가사·돌봄 책임이 고령의 여성층에게 집중되고 있는 현실에 기인한다. 해당 기사에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노부모를 돌보는 것도 한국 여성의 몫이다. 또한 손자녀뿐만 아닌 여전히 자녀 또한 이들의 돌봄 영역 안에 있는 것을 고려하면 이중, 삼중, 사중의 가사 노동의 역할이 노년 여성에게 지워지고 있다. 저자는 저출생·고령화 위기 속에서 한국형 돌봄 해법을 마련하려면, 여성에게 편중된 돌봄 책임을 가정에서 사회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여성의 가사 부담을 낮출 수 있는 정책적 배려와 종합 대책 수립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할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돌봄 문제를 더욱더 생각하는 와중 일본으로 이사해 보니 문제는 일상 속으로 더욱 깊숙하게 들어왔다. 고령화 사회는 거리에서 매일 마주치고 학교 울타리 안에서도, 특히 연구하고 있는 이주 분야에서 돌봄은 학회, 세미나, 연구자와의 만남 속에서 빈번하게 등장했다. ‘특정 기능’비자,‘개호’자격, 기능 실습 제도, 경제동반자협정(EPA) 등의 경로를 통해 5만여명의 외국인 근로자가 일본으로 이주해 돌봄 분야에 종사하고 있다(구혜경, 일본의 외국인 돌봄인력 확보 방안, 2024). 이주뿐만 아니라 내가 속해 있는 연구소 내 또 하나의 주축인 인공지능 미래 연구팀에서도 돌봄은 중요한 주제다. 담당 연구자들과 종종 마주치며 생기는 대화를 통해 나는 갓 입당한 서당 개처럼 마당을 돌아다니다 로봇과 인공지능 기술의 세계에 대해 듣고 질문하며 배운다. 연구팀은 인공지능과 로봇이 돌봄 산업에서 얼마나 효능과 효율이 있는지를 탐색하는데 아직도 인간과 인간 간의 연결이 중요하고, 감정 노동에 있어 인간 노동자가 필수적이라고 본다. 현 다카이치 정부는 ‘제로 플랜’을 도입해 미등록 이민자를 강력하게 검열하며, 동시에 심각한 노동력 부족에 직면한 돌봄, 건설 현장을 포함한 19개의 분야의 외국인 근로자 수를 줄이고 상한을 설정했다(Kenji Tatsumi, Japan aims to cap foreign workforce at 1.23 million for 2 visa types across 19 sectors, 24 December 2025). 한편, 인공지능 돌봄 의료 서비스 산업에는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Naofumi Ishikawa, Takaichi unveils growth strategy with 370 trillion yen investment, 5 June 2026). 돌봄 산업에 있어 외국인 근로 인력은 피할 수 없는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이주 노동자에게는 빗장을 더 단단히 채우지만, 인공지능에서 미래를 찾고자 하는 것이다. 다른 인간에 대해 두려움과 반감을 품는 한편 인공지능은 오히려 환영하는 현상이 내게는 적잖이 아이러니로 다가왔다. 하지만 또 다른 대화에서 미국에서 온 한 동아시아 인구학자는 반-이민 정서의 문제를 떠나 돌봄 산업에서 인공지능에 대한 투자가 수요를 따라가기 위한 지극히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보았다.
연구팀에 따르면 현재 상태로서는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완벽히 대체할 수 없기에 서로 보조하며 협력하는 방식으로 돌봄이 진행되고 있다. 또한 현장에서 인공지능, 로봇과 인간 노동자 간, 고용자와 고용주 간의 불화가 존재하며, 로봇과 인공지능 또한 최대의 이익과 효율성을 위한 착취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돌봄 노동자에 대한 돌봄의 관점도 존재하지만(Caring for Caregivers), 여전히 많은 연구는 사용자(고용주, 그리고 서비스 이용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기술이 가져다줄 생산성과 효율성, 이익에 몰입된 나머지 윤리적 관계에 대한 논의는 아직 미미하다.
착취의 문제는 돌봄의 다방면 영역에 걸쳐 있다. 또 다른 동료 연구자는 최근 도쿄에서 열린 성인 산업 정보통신 기술 박람회에 현장 연구를 하러 갔다 왔는데 이후 내게 미래가 더 우울해졌다고 말했다. 인공지능을 탑재한 데이트, 연애 앱들은 사용자의 요구에 더욱 정교하게 맞춘 매력적인 구독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광고했다. 예전 흥행했던 영화‘그녀’에서 시리(Siri)와 주인공 남성 간의 낭만적으로 묘사된 연애 관계는 고독해지는 현대 인간 사회 속 기술이 제공하는 새로운 돌봄의 가능성으로 비쳤지만, 현실은 공포스럽고 기괴하다. 자본주의 인류가 그래왔듯 사용자는 당연히 돈을 지급했기에 인공지능은 더더욱 만족스러운 서비스를 제공하라고 독촉받는다. 데이트, 관계에 대해 지급을 했기에 착취성은 정당화된다. 인공지능에 대한 착취는 어떤 미래를 가져오게 될까? 윤리에 대한 고민과 물음 없이 기술들은 끊임없이 생성, 적극 보급되고 있다.
돌봄과 돌봄 산업, 착취의 타래를 헤집으면 헤집을수록 가부장주의의 매듭이 얽혀 있다. 단지 많은 여성이 돌봄 제공자이고 돌봄 산업에 종사하는 ‘현상 때문만은 아니다. 당연히 여성이 돌봄의 영역을 담당한다는 역사적이고 사회적으로 깊게 박힌 ‘자연스러운’ 관습과 규범이라는 차원에서 가부장주의는 공고하다. 인도에서 온 일본의 돌봄 노동자를 연구하는 한 인류학자는 인도 동북 지방의 마을에서 현장 연구를 진행하면서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했다. 오히려 많은 젊은 남성들이 재패니즈 드림을 꿈꾸며 일본에 돌봄 노동자로 간절히 오고 싶어 하지만 비자 중개소는 여성을 선호해 이들의 신청을 반려한다. 여성의 돌봄 노동이 시장에서 환영받으며 당연히 여성이 돌봄 제공자여야 하는 구조는 뿌리 깊고 보다 더 복잡하다. 매우 지역적이고 주변적인 실천들이 구조를 재생산하며 가부장주의 체제를 견고하게 하고 있다.
돌봄은 젠더, 자본, 권력의 치열한 장이다. 문제는 이들이 빚어낸 불평등이 착취되고 폭력이 발생하는, 무엇보다도 착취와 폭력적 관계가‘평범하게’,‘자연스럽게’ 되는 지점이다. 사용자는 위계질서 속 돌봄 제공자의 권리를 침해할, 착취할 권리가 있다는 사고와 행동 방식은 최근 다시 불거진 (항상 있었던) 데이트 폭력과 죽음, 죽임과도 맞닿아 있다. 자신이 화가 나거나 좋아하는 여성이 자신을 피한다는 이유로, 그 여성 혹은 전혀 상관없는 다른 여성에게까지 너무나 당연하고 쉽게 피해를 주거나 죽일 수 있다는 생각이, 감정이, 행동이 용인된다는 게 문제다. 이는 다르지만, 가족의 돌봄을 둘러싼 내 질문들과도 연결된다. 그렇게 점잖았던 할아버지는 치매 노인이 되어 자신의 배우자를 구박하는데, 그게 치매라는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눈 감아질 수 있는 것인지, 그런데도 딸들은 그런 아버지를 불쌍히 여기고 돌봐야 하며, 또한 그녀들의 어머니에 의해서도 그 마땅한 본분은 소명되는 것인지, 왜 이 모든 것들은 당연시되는 것인지. 나의 물음들은 아직 대답을 얻지 못했다.
래윈 코넬(Raewyn Connell)은 양성평등을 넘어서 젠더 혁명을 위해서는 새로운 긍정적인 헤게모니적 남성성의 출현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남성 자체를 혐오하고 반대하는 것이 아닌 젠더 불평등과 폭력적 젠더 관계들에서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남성성을 사용하며 새로운 학습과 실천을 만들어내는 가능성을 얘기한다. 사설이 지적하듯 여성에게 편중된 돌봄 책임을 사회적 책임으로 바꾸는 정책적 배려가 시급한 지금, 남성성을 완전히 새롭게 상상하고 실천하는 것이 어쩌면 긴요한 일일지도 모른다. 인공지능과 함께하는 현재, 그리고 미래에서는 돌봄의 고질적 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긍정적인 헤게모니적 남성성의 출현은 정말 가능할까?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베네수엘라에서 연쇄 강진으로 100년 만에 최대 규모, 최악의 재난이 발생했다. 국가가 처한 정치-경제적 위기와 맞물려 지진은 국가 돌봄의 취약성을 드러냈고, 부패한 정권과 관료제는 구조 피해 복구 작업 마저 방해하고 있다. 분명 연대와 구호 지원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지만 어느 순간 이야기는 뉴스 머리기사들에서 사라졌다. 멀지 않은 이웃 나라에서 수많은 사상자가 나오고 일상이 파괴된 상황에서도 멕시코 월드컵이 한창이다. 세상은 떠들썩하며 게임은 계속 이어진다. 세계는 연결되어 있지만 - 특히 이주 노동을 매개로 한 ‘돌봄의 사슬’로 얽혀 있으면서도 - 파편화되어 있다는 모순을 다시금 깨닫게 하며, 세계를 묶어줄 돌봄의 부재를 곱씹게 한다. (2026. 06, 또문브런치에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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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네수엘라 지진 소식으로 마무리 하려니, 최근 유튜버 '새덕후'의 고양이 살처분 청원에 5만 명이 넘는 동의가 진행되면서 벌어지고 있는 뜨거운 논쟁 얘기를 해보고 싶어졌어요. 이런 논쟁을 들을 때면 2010년 연평도 포격사건 때 갑작스러운 주민대피 이후 동물보호단체와 수의사들이 섬으로 들어가 개와 고양이 등 반려동물 구출에 나섰던 일이 떠오릅니다. 개인적으로 전쟁에 대한 공포에도 불구하고 길을 나선 사람들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어 깊은 인상을 받았던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음해 2011년 후쿠시마 원전폭발 이후 남겨진 가축과 반려동물 들이 겪게 된 이야기나 그들을 돌보는 자원활동가들 소식 또한 세상에 대한 다른 관점, 재난에 대한 다른 접근을 생각해보게 한 사건들입니다. 재난에 직격 당하는 다수의 사람들과 비인간 존재들이 새롭게 경험하고 만들어내는 연결과 연대 또한 소중하게 조명되어야 하는 중요한 가치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2024년 대전시 서구 용촌동의 주민들이 겪은 수해와 마을공동체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정뱅이⟫를 적극 추천드립니다.)
많이들 알고 계시리라 짐작되는, 부암동 미술관 앞 은행나무 독살사건을 겪으며, 자연물 보호를 위한 법과 제도에 대한 개선을 위한 국민청원이 진행중입니다. 이 사건에 대하여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계신 동인들도 꽤 계시고,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분들도 많으신 것으로 압니다. '메가이슈들'이 넘쳐나지만, '작은' 이슈들이야말로 그 메가이슈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섬세한 방향을 제시해주는 중요한 시금석이라는 생각을 종종합니다. 국민청원은 8월 9일까지 진행중이라고 하니, 관심 있는 분들께서는 기한 내에 청원에 참여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제 주변에는 이 사건에 관심 있는 분들이 엄청 많아서 국민적 관심을 일으켰을까 기대했는데, 의외로 참여율이 저조합니다 ㅠㅠ)
※ 국민청원참여링크:
7월 또문소식이 많이 늦은 관계로, 8월 소식은 늦지 않게, 곧 다시 뵐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안전하고 건강한 여름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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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문화를 후원하고 계신 동인들
후원회원(가나다순): 곽영선, 권김현영, 김경희, 김미현, 김보화, 김상애, 김성례, 김소영, 김신현경, 김영경, 김영옥, 김영일, 김유익, 김은실, 김정명신, 김정은, 김정희원, 김주희, 김찬호, 김태형, 김현미, 김혜련, 김효정, 김희옥, 남정호, 두애린, 문수복, 문정주, 박나미, 박은, 박진숙, 박총, 배채은, 백경흔, 변재란, 소영, 손은정, 안혜경, 안희경, 안희옥, 양선미, 양현경, 양현아, 여은영, 연주희, 우은희, 유승희, 이경자, 이선향, 이소희, 이수정, 이숙경, 이은아, 이은주, 이정주, 이지예, 이진아, 이헌미, 이현주, 이혜령, 장필화, 전유나, 정진경, 정혜란, 정혜진, 정희진, 조민아, 조옥라, 조은, 조형, 조한혜정, 지현, 진영옥, 채혜원, 최소연, 최수연, 최은숙, 최은주, 최한솔, 한혜정, 허순희, 현유라, 황은진(83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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