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공(올림픽공원)집회가 이어지는 가운데 지난 주말 떠들썩한 서울을 만들었던 퀴어퍼레이드와 팔레스타인 연대집회, 창원에서 진행된 기후정의행진(정의로운 전환 노동자, 시민 연대 행진) 등의 소식을 들으며 이토록 많은 의제들 가운데, 또문소식을 읽는 분들은 지금 어떤 의제들을 우선순위에 올려두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집니다.
지방선거 이후 여당 당선자들은 지역부흥을 위한 로드맵을 속속 발표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강원도의 대규모 AI데이터센터 계획이, 울산, 새만금 등에 추진중인 대규모 피지컬AI산업과 AI데이터센터 유치, 부산의 AI북극항로 개발과 같은 것들입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로드맵으로 정말 지역부흥이 실현될까 듣자마자 벌써 의심스럽습니다. 대규모산업의 바깥에 놓인 사람들의 삶은 어떻게든 잘 고려되고 있는 것인지요?
2021년 대만에는 심각한 가뭄이 닥쳤습니다. 이때 미국으로부터 위탁생산 중이었던 반도체 공장을 위해 대만정부는 농수로를 차단하고 제한급수를 하면서 농민들의 농사포기를 강요하기도 했다지요. 반도체산업이나 데이터센터 같은 것들은 '전기/물 먹는 하마'와 마찬가지이므로 이런 일들은 조만간 전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게 되지 않을까요. 영화 엘리시움의 사회가 이미 눈앞에 와있는 것만 같습니다. 최근 미국에서도 오라클과 오픈AI가 중심이 되어 미국 최대규모의 데이터센터 건립을 추진 중인데, 완공이 되는 내년 7월이 되면, 이 지역의 75% 전력을 담당하던 전력회사가 데이터센터의 전력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지역에 공급하던 전력을 중단하겠다는 발표를 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정부는 이 지역의 '지독한 가난과 만성적 실업률'을 구제할 해법으로 데이터센터 유치를 승인할 수밖에 없다는 해명을 하고 있다고 해요. 가난과 실업, 거기에 이미 최악의 가뭄과 더위를 겪고 있는 5만명의 지역주민들은 앞으로 더 무엇을 견디면서 살게 될까, 생각만으로도 괴롭습니다.
어제는 '이란 종전'이라는 낭보가 들렸습니다. 종전 이후에도 해결해나가야 할 일들이 산더미이겠습니다만, 조인식이 19일이라는 얘기를 듣자마자 그 날까지, 그 사이에 또 무슨 '변덕'이 있으려나, 이스라엘은 어쩌고 있는 거지 생각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좋은 마음도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민족, 국가, 종교, 자본, 에너지, AI, 무기산업 등에 이르기까지, 이란 전쟁의 모든 장면에서 해묵은, 그러면서 해결되기 어려운 난제를 정독하고 있는 느낌을 갖습니다. 전장의 포화 속에 생존중인 사람들, 비인간존재들 모두의 고통이 떠올라 여당 당선자들의 밝은 전망들이 전혀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지난 주 가디언 지에는 세계적인 경제학자들 - 올리비에 드 쉬터, 조지프 스티글리츠, 자야티 고시, 토마 피케티, 케이트 레이워스, 제이슨 히켈이 함께 쓴 글이 실렸습니다. 글의 제목은 "우리 경제학자들은 계산을 끝냈다: ‘성장’은 파멸로 가는 전략이다 - 더 나은 길이 있다"로 기후활동가인 김선철 님이 기사 전문을 번역해두셨기에 링크를 걸어둡니다. (▶번역문보기) 참고로 번역문의 각주1에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홈페이지에 실린 "성장 너머 빈곤종식을 위한 로드맵" 링크도 들어 있네요. 이런 전망과 논의들이 실질적인 반향을 끌어낼 수 있기만을 바랍니다. 빈곤종식과 더불어 '혐오종식'의 로드맵 또한 섬세하고 치밀하게 추진되기를 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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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또문소식은 아래 순서로 쓰여졌습니다.
- 또문독서회 (6월) 안내
- 지금 여기에 : 김혜정, "9회 지방선거와 이재명 정부 1년"
- 함께 나눠요 : 김신현경, "무가치함과 (함께) 싸우기"
정희진, "나의 <나의 해방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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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문화 소모임, 또문독서회는 진행중 (회원모집은 언제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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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1,464쪽이나 되는 책 ⟪남성 판타지⟫ 읽기가 끝났습니다. 15일에는 책거리와도 같은 이야기들을 나누었고요.
다음 모임은 ⟪남성 판타지⟫와 연결되면서도 이후 이어갈 주제를 살펴볼 수 있을 것 같은 세 편의 영상 리뷰 시간으로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여러 편이 되고보니 두터운 책읽기의 부담을 내려놓고도 꽤 시간을 들여 준비해야 합니다만, 혹시 관심이 있으시다면 세 편을 다 보시지 않았더라도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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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에
- 계엄사태 후 1년 반. 아직 마무리 되지 않은 시간 속에서 투표용지 부족사태 등이 불거지며 혼란은 또다른 국면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함께 만나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나누고 싶지만, 여의치 않은 때에 오매 님(김혜정)이 시의적절한 생각과 질문을 전해주셨어요. 이 질문에 이어 자신의 생각을 나눠주실 분 계실까요? 늘 기다리고 있는 것 아시지요? 슬며시 또문의 이메일주소 다시 적어봅니다. tomoon.tomo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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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회 지방선거와 이재명 정부 1년
오매/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또문친구)
어쩌면 지방선거를 기다렸다. 형법 강간죄 개정, 친밀관계폭력 법안을 들고 국회를 찾아가면 “지방선거 마치면....”이라고 ‘나중에’를 나름 기약했기 때문이다. 새 대통령이 차별금지법이 아니라 역차별 앵무새처럼 “남성 역차별 알아보라”고 계속 말할 때도 “지방선거가 끝나면 달라지겠지”라는 주문을 계속 외워보곤 했다. “지방선거를 마치면 본격적인 ‘사회개혁’ 논의를 시작하겠지. 설마 남태령을, 키세스 시위대를, 지금 정치를 다시 가능하게 한 얼어붙었던 몸들을, 생업도 포기했던 그 목소리들을 구겨 버리는 것은 아니겠지”라는 주문을.
2월 지방선거 예비 후보자 등록이 시작된 초봄. 안희정 성폭력 가해자가 부여군수 출판기념회에 와서 마이크를 잡았다. 78개 여성단체들은 여기에 격분했다. 2018년 미투운동 후 겨우 세 번째 지방선거다. 미투운동의 가해자가 등장해 영향력을 테스트하다니. 청주시장 후보로 나왔다가 미투 신고로 후보 사퇴했던 전 686세대 남성은 또 청주시장 예비후보에 나와서 가짜 미투였다며 단식농성을 했다.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은 청주로 서울로 이동하며 싸웠고, 가까스로 공천을 막았다. 다음에 또 나오면 피해자가 또 싸워야 하나. 의문이 남았다. 경남에서는 성추행과 무고죄로 유죄 확정된 군수가 또 무소속 후보로 나왔다. 당선되면 복당하겠다고 공공연히 말했다(결과를 미리 말하면 3선 군수가 됐다). 이런 모습으로 마침내 지역의원 지역구 중 23.7%, 기초의원 지역구 중 26.3%, 광역단체장 후보 중 9.3%, 기초단체장 후보 중 7.2%만 여성이 공천됐다. 진보정당을 빼면 비율은 더 낮아진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30% 여성공천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 이게 ‘역차별’을 걱정해야 하는 사회의 모습인가?
선거운동은 어땠나. 진보정당 후보들은 ‘내란척결’이라고 쓰인 조끼를 입고 걸었고, 더불어민주당은 선거에서 아예 진지한 논의·논쟁을 피했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부산 선거운동 중 여자 어린이에게 하정우 부산 북갑 국회의원 보궐선거 후보를 “오빠라고 불러봐”라고했다. 두 정치인이 “오빠” “오빠”라고 연이어 발음하던 영상은 정치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어린이 여자 시민을 통해 서로에 대한 남성적 추앙을 하려는 모습은 이번 선거의 퇴행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평택을 국회의원 재선거에 무려 대통령 픽으로 출마했다는 김용남 후보의 변호사 시절 성폭력 가해자 변호 내용은 너무 심각했다. 자격 없다고 문제제기하자, 당은 네거티브라고 답했다. 국민의힘 후보자들은 이번 선거에 기이한 열정을 창출해냈다. 윤어게인과 결합하는 집단이나 그에 반대하여 대안세력이라고 주장하는 후보자들이 모두 열정적으로 선거를 치루는 기이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조국혁신당 조국 후보는 평택을 재선거에 사활을 건 나머지, 국회에서 ‘혁신’ 부분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는 자당 국회의원들을 모두 평택을 동과 읍면에 전담으로 배치하겠다고 약속하며 당을 사당화했다.
2026년 6월 4일은 근래 들어 가장 괴로운 날이었다. 전날 ‘페미니스트+퀴어 시사정치 토크쇼 권손징악’ 개표방송을 보며 권김현영, 손희정 정치평론가들의 의견을 들을 때만 해도 지방선거 기간 동안 꿋꿋하게 해오던 일 등을 잘 이어가고 갈무리해야지 다짐했다. 그러나 6월 4일이 되자 무언가 둠스데이 같은 하루가 시작됐다. 서울시장은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되었는데, 그건 일반적인 예상이 뒤집어진 것이었다. 투표소에서 투표 용지가 부족해 투표하지 못한 사람이 있었다는 초유의 뉴스가 내 타임라인을 메웠다. 잠실에서 부실선거/부정선거/재선거 시위가 시작되었다. 20·30대 서울 여성들이 오세훈 후보를 생각보다 너무 많이 찍어서 이에 대해 “여성은 더 이상 민주당 집토끼가 아니다”라는 기세있는 말과, ‘성평등 서울’ 캠페인이 여성에게도 외면받았다며 조롱하는 안티페미니스트의 말이 둘 다 허공을 맴돌았다. 지방선거가 일주일 넘게 지난 지금, 여전히 어쩐지 기존의 방식으로는 해석할 수 없는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 방송사공동예측조사위원회는 지방선거 출구조사 결과 보도가 잘못된 것이었다며 사과했다. 2030 여성의 표가 오세훈 국민의 힘 후보로 이탈했다고 했었는데, 20대 여성의 정원오 후보 득표율 추정치는 48.5%가 아니라 56.7%, 30대 여성의 정 후보 득표율 추정치는 42.8%가 아니라 51.3%였다. 잠실 올림픽공원에는 일하러 들어가지 못하는 직원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선관위에서는 몇 군데 지역 교육감 선거 개표 결과 입력이 누락되었거나 오류가 났다고 밝혀서 연일 사과하고 있다.
나와 내가 일하는 여성운동단체가 지방선거에서 했던 활동은 성평등 공약 분석, 성명서 작성 및 조직, 대안적 지역 정책 캠페인 기획, 언론기고, 서울시정 모니터링, 정책제안과 협약, 연대체 활동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제안해도 정치권에서 ‘경청’하는 태도가 보이지 않게 된 것은 사실 좀 되었다. 약속하면 최소한 되든 안되든 책임있게 답변해주던 담당자는 그 자리에 남아있지 않다. 그래도 왜 성평등 정책과 공약을 더 내지 않았냐고, 여성후보를 더 공천하지 않았냐고, 성실하고 꿋꿋하게 문제제기하고 필요한 정책을 제안하는 활동은 여전히 필요하다. 그러나 - ‘나중에’를 민주주의 광장 이후에도 계속 말하고 있는 아주 나사 빠진 정치인들의 정치과정에서 누가 어떻게 상처받고 탈진했는지, 누가 어디서 누구와 무엇으로 싸우고 있는지, 누가 현재를 어떠한 틀로 분석하고 있는지를 조망하고 검토해보는 것이 우선 필요하다고 느낀다. 어쩌면 지금은 듣는 정치/정부와 제안하는 시민의 2자 관계, 정치/정부가 정당하게 대리하고 책임지며 시민은 생활세계의 상호 안정된 협력적 일상으로 살아가는 체계가 깨져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2023년 신경아 교수님이 ⟪백래시정치⟫’에서 말했던 것인데 이제야 지금 나는 여기서 진정 몸으로 체감하는 듯 하다. 학교에서 악성민원 넣는 엄마에게 교권보호위원회가 응징하는 드라마가 넷플렉스 1위를 하는 시절, 모든 정부 부처, 모든 기관의 업무를 대통령이 알고 지시하고 호통치는 생중계가 행정과 정치를 대체하는 사이다의 시절, 잠실 올림픽공원 부정선거 시위대를 질서유지하는 경찰은 사진 찍혀 ‘중국인’ 이라고 온라인에 퍼지는 시절, 지금 필요한 성평등 정치는 소수 선출된 정치인이 대표하는 것, 임명된 공무원이 대리하는 것은 더 이상 안될 것 같다. 그렇다면 무엇이 필요할까. (2026. 06, 또문브런치에서 읽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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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나눠요
- 이번엔 김신현경, 정희진 두 분의 글을 전합니다.
- 박해영 작가만큼 팬덤이 분명한 작가가 있을까 싶습니다. 박해영 작가의 작품 몇 편이나 보셨나요? 신작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를 살피며 김신현경 동인은 '가치'에 대한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리고 조금은 오매 님의 글에 대한 응답도 들어 있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물론 오매 님의 글을 읽고 쓰신 건 아니지만요. 우리들의 '이심전심'.
- 이렇게 까지 팬심이 두터웠다니! 하고 놀랐던 정희진 동인의 글은 조금 시간이 지난 작품 <나의 해방일지>를 돌아보면서 정희진 동인이 그간 마음에 담아 둔 것들 중 한 가지를 소개합니다. 어쩌면 그 '모두'의 바깥에 있었을지 모를 사람들, 그리고 '나의 해방'에 대한 다른 해석을 떠올릴 수 있어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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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가치함과 (함께) 싸우기
김신현경(서울여대 학부대학 교수, 또문 동인)
얼마 전 끝난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는, 그 제목 때문에라도 안 볼 도리가 없는 드라마였다.
데뷔하지 못 한 채 이십 년을 보낸 감독 지망생 황동만. 그는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일까 봐 끊임없이 말을 쏟아낸다. 그 모습에서 현재를 포함한 어떤 시기의 자신을 찾지 못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억세게 운이 좋은 사람일 것이다. 물론 저마다 자기 안의 무가치함과 싸우는 방식은 다르다. 황동만이 말을 쏟아낸다면, 영화제작사 PD로 일하는 변은아는 말을 삼킨다. 대신 그 말로 타인의 말을 다듬는다. 그러나 둘 다 자신의 쓸모를 증명해 인정받고 사랑받으려 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이처럼 가치 있음 또는 무가치함은 혼자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가치’를 마치 개별적인 것의 본질인 것처럼 다루지만 무엇이 가치 있고 무엇이 무가치한지를 정하는 척도는 언제나 ‘외부’와의 관계를 상정해야 한다. 무가치함은 개인이 홀로 감당하는 실존의 문제가 아니다.
익히 알려져 있듯, ‘가치(value)’라는 말은 이중적이다. 우리는 그것을 소중함, 존엄이라는 의미를 내포한 도덕적 의미로도, 가격, 값어치와 같은 경제적 의미로도 쓴다. 그리고 이 두 의미는 깊이 얽혀 있다. 일찍이 마르크스가 짚었듯, 경제적 가치는 사물에 깃든 자연적 속성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의 표현이다. 어떤 노동이 ‘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으로 인정받고 어떤 노동이 그렇지 못한가는, 사물의 본성이 아니라 그 사회가 무엇을 셈하기로 합의했는가에 달려 있다. 즉, 가치는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셈해지는 것이다.
페미니즘은 바로 이 셈법에 가장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 왔다. 자본주의는 재생산노동을 가치의 바깥으로 밀어냄으로써, 다시 말해 그것을 ‘무가치한 것’으로 처리함으로써 비로소 작동한다. 돌봄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본성이라는 이름으로, 여성이 ‘원래’ 하는 일이라는 이름으로 자연화되었고, 자연화된 것은 값이 매겨지지 않는다. 이처럼 무가치함은 결핍이 아니라 배치의 결과다. 누군가의 노동이 무가치하다고 말해질 때, 그것은 그 노동에 가치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 노동을 셈하지 않기로 한 체제가 있기 때문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드라마 속 인물들이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는 장면은 다르게 읽힌다. 그들은 자기 안의 결함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무가치하다고 판정하는 척도와 싸우고 있다. 그러나 그 척도는 너무 깊이 내면화되어 마치 자기 자신의 목소리처럼 들린다. 셈에서 빠진 사람들이 스스로를 셈할 가치가 없다고 믿게 만드는 이 내면화야말로 우리 시대에 완성된 것처럼 보이는, 가장 효율적인 통치의 모습이다.
자산시장은 그 셈법의 풍경을 지금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곳이다. 주식과 부동산의 가격이 치솟고, 누가 얼마를 벌었고 잃었는가가 일상의 화제가 된다. 자산은 마치 스스로 가치를 낳는 것처럼 보인다. 가만히 보유하고 있기만 해도 값이 불어나니, 가치가 노동이 아니라 자산 그 자체에서 솟아나는 듯하다. 그러나 이것은 착시다. 자산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노동 혹은 수탈이 만들어낸 가치를 끌어와 제 몫으로 셈하는 것이다. 다만 그 노동과 수탈의 흔적이 가격이라는 매끈한 숫자 뒤로 지워질 뿐이다. 자산의 자기증식이라는 외양은, 정확히 그 가치를 떠받치는 노동과 수탈을 보이지 않게 만드는 방식으로 완성된다. 한편에서 사람을 먹이고 돌보는 노동과 폭력적 배치를 통해 달성되는 수탈이 끝내 셈해지지 않는 것과, 다른 한편에서 자산이 제 힘으로 불어나는 듯 보이는 것은 같은 동전의 양면이다. 그리고 일해서 버는 것보다 자산이 불어나는 속도가 빠르다는 감각과 그 격차가 만들어내는 불안과 조바심은 우리 시대의 가장 강력한 정동이 되었다.
이번 6. 3 지방선거는 이 셈법이 시장에만 있지 않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하는 자리였다. 말하자면 선거는 정치가 누구를 가치 있는 존재로 셈하는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장부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 청년 여성을 포함한 여성들은 ‘표심’으로도 제대로 불리지 못했다. 그들을 향한 공약도, 그들의 요구를 정면으로 묻는 토론도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첫 여성 광역단체장이 탄생했다는 상징적 진전 뒤에서, 성차별 구조를 바꾸겠다는 약속은 후보들의 공약에서 사실상 사라졌고, 여성이 호명되는 거의 유일한 순간은 상대 후보를 공격하는 소재로 쓰일 때였다. 개표가 끝난 뒤에야 서울의 청년 여성 표가 어디로 움직였는지가 잠깐의 분석거리가 되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이 글을 끝내기 전에 다른 장면 하나를 적어 두고 싶다. 얼마 전 본 다큐멘터리 <남태령>은 탄핵과 대선 승리를 결말로 삼지 않는다. 카메라는 대부분의 이야기가 '우리가 이겼다'라고 멈출 만한 그 지점에서 시작한다. 2024년 12월 동지, 1년 중 밤이 가장 길었던 그 날, 남태령을 함께 넘은 사람들이 어떻게 변했으며, 이후의 일상과 현장에서 무엇을 이어가고 있는지를 따라가는 것이다. 결국 이 다큐멘터리가 보여주는 것은, 저마다 다른 자리에서 셈에서 빠져 본 사람들이, 그 다름을 굳이 지우지 않은 채 서로의 곁을 지키고 서로의 이름을 불러 주는 동안, 스스로가 셈할 가치가 있는 존재였음을 함께 깨달아 가는 장면들이다.
무가치함과 싸운다는 것은 결국 이런 일일 것이다. 자기 안의 결핍을 홀로 견디는 일이 아니라, 무엇을 가치로 칠지 정하는 척도 자체를 함께 다시 쓰는 일 말이다.
그러고 보면 드라마도 비슷한 자리에 가닿는다. 끊임없이 말을 쏟아내던 황동만이 끝내 영화를 완성하고 인정받는 것은, 그가 마침내 혼자 힘으로 자신의 쓸모를 증명해 냈기 때문이 아니다. 서로의 무가치함을 마주한 사람들 사이에서 관계가 드러나고 다시 엮이는 과정, 그 공동의 자리에서 비로소 한 편의 영화가 가능해진다. 그가 완성한 영화의 결말이 의미심장하다. 영화는 모든 것이 빈틈없이 통제된 미래에서, 끝내 통제되지 않는 단 하나의 우연을 인간다움의 자리로 남겨 둔다.
<남태령>이 멈추지 않고 ‘그 다음’을 따라갔듯, 황동만의 영화도 통제의 완성이 아니라 그 완성 어느 틈엔가 난 균열에서 인간을 찾는 것이다. 두 결말은, 무엇을 가치로 칠 것인가는 끝내 장부 한 장으로 닫히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게 아닐까? 셈해지지 않는 것들, 셈을 빠져나가는 우연과 관계와 돌봄이야말로, 우리가 끝내 가치라고 부르기를 멈추지 않는 것들이다. (2026. 06, 또문브런치에서 읽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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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나의 해방일지>
정희진(또 하나의 문화 동인)
박해영 작가의 2022년작 <나의 해방일지>는 그의 여느 작품들처럼 이야깃거리가 많은 드라마다. 두 가지만 고른다면, 취약한 인간들의 세상살이와 극 중 어머니의 노동에 관해서 말하고 싶다.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나 자신과의 관계에서도, 내가 제일 못하는 것 이 ‘밀당’이다. 사실 나는 밀당 행위 자체가 싫다. 내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밀당을 잘하는 사람이 부러운가? 그것도 아니다. 오히려 경멸에 가까운 입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밀당을 못해서 손해를 보면 기분이 좋지 않다. 나를 잘 아는 어느 선생님은 내가 “분별력은 없는데 결단은 빠르다”고 하신다. 정확한 ‘진단’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 자신과 협상을 못하는 사람은 판단력이 약하다. 그런데 성질은 급해서 뭐든 빨리 결정을 내린다. 후회는 깊고 댓가는 길다.
나는 박해영 작가의 팬이다. 그의 작품은 ‘나의 월드’다. <나의 해방일지>는 16부작인데, 세 번 봤다. 대본집도 샀다. <올드 미스 다이어리>, <나의 아저씨>, <우리는 모두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그의 드라마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밀당을 못한다. 다들 ‘모’ 아니면 ‘도’다. 하지만 작가는 이들을 응원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나의 해방일지>는 권투 시합으로 변해버린 이 시대에 인생의 ‘링’ 주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모든 이들과 싸 워야 하는 사람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상황에서 외롭게 삶에 내몰린 개인들이 정말 ‘소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내 친구는 전라북도 정읍시에서 수의사로 일하는 동물권 운동가이다. 정읍은 소싸움이 ‘지역 축제’로 불리는 고장이다. 소끼리 싸우게 하는데, 소들은 축사에서 안 나오려고 발버둥 친다. 싸우러 가기 싫은데, 주인이 끌고 나와 싸움을 붙이면 소들은 내장이 쏟는 등 엄청나게 다친다고 한다.
밀당을 못하는 사람들은 대개 타인의 입장을 먼저 고려하거나 취약한 사람들이다. 당대는 밀당을 못하는 사람들이 (배려받기보다는) 악의 타겟이 되는 시대다. 그렇지만 박해영 작가는 취약한 사람들도 행복하고 다른 법칙으로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작가는 우리 시대의 뻔뻔함이나 강함이 사실 별거 아니라고 위로한다. 작중 염씨네 가족의 큰 딸인 기정(이엘 분)의 직장 상사는 사랑이 없으면 못산다며, 항상 연애 중이다. 비법은 밀당이다. 하지만 결국 연애에서의 밀당이 피곤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염미정(김지원 분)은 대출까지 받아서 자신이 헌신했던 남자친구한테 돈을 빌려주었으나 남자친구는 도망갔고 다른 여자친구 집에서 지낸다. 그 돈을 못 갚으면 미정은 신용불량자가 되고 회사와 집에 그 사실이 알려지게 된다. 그래서 구씨(손석구 분)에게 작은 부탁을 하는데, 구씨는 화를 내며 이렇게 말한다. “너 남자한테 돈 뜯겼지? 그러면 니가 바보라는 것을 인정하고, 문제를 해결해. 뚫을 데를 뚫으라고(엉뚱한 데 와서 울지 말고)!”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돈을 떼어먹은 남자를 욕하는 게 아니라 남자한테 차이고 돈도 뜯긴 ‘멍청이 바보 같은 여자’를 한심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미정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사람들하고 얼굴 붉히며 이야기하는 것도 힘든 사람인데, 어떻게 돈을 달라고 따져...” 미정에게 채권자는 너무 힘든 역할이다.
이런 타입의 사람들은 억울해도 가만히 있다. 상대방과 싸우기 싫거나 기력이 없거나 귀찮다. 당연히 만만하게 보인다. 사람들과 같이 있기만 해도 기운을 빼앗기는 타입이라 갈등을 만들고 싶지 않다. 되도록 혼자 있고 싶다. 자기주장이 마구 격려되는 당대의 ‘나 중심주의 시대’를 살아내기 힘들다.
경쟁 사회에서 우리는 자의든 타의든 링 위에서 싸움을 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링에서 내려오고 싶다. 싸움의 법칙에 동의하지도 않는다. 나는 ‘나대로’ 살고 싶다. 나는 링 위에 올라가고 싶지 않다. ‘자연인’으로 살 수 있는 능력, 은둔할 수 있는 자원이 있다면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고 싶다. 내게 <나의 해방일지>는 다른 삶, 다른 마음가짐을 제안한 드라마다.
<나의 해방일지>에서 염씨네 가족들이 마당 평상에서 먹는 여름 저녁 식사는 ‘아름답다’. 하루 종일 노동한 이들의 ‘어머니’가 해 준 집밥. 맛있을 수밖에 없다. 어머니의 존재는 이 드라마의 분기점이자 주제이기도 하다. 극 중 “곽혜숙 여사”로 불리는 어머니는 최소 3중 노동을 한다. 싱크대 공장에서 일하고 농사를 짓고 의식주를 포함한 모든 가사노동을 한다. 결국 과로사. 평생 가족을 돌보다 기운이 다해서 생을 마감한 것이다.
이것이 우리 시대의 딜레마다. 사회 구성원이 행복하고 계속 일하려면 먹을 거리를 해 주는 사람이 있거나 각자 그런 능력이 있어야 한다. 어머니의 밥상은 밑반찬이 많이 깔리고 집에서 가꾼 야채가 있다. 남자들은 꼭 반주(飯酒)를 한다. 특히나 식사를 맛있게 하는 아버지와 구씨의 얼굴은 평화롭고 만족스럽다(아무 생각이 없다). 나는 이 저녁 식사 장면에 반해서, 드라마의 주요 촬영지인 경기도 연천군에 여러 차례 다녀왔다. 실제 그 집, 그 평상, 그 대파밭도 가 보았다.
구씨는 고구마 줄기 김치를 좋아한다. 디저트는 수박과 옥수수다. 수박은 맛있지만 음식 쓰레기가 많이 나오는 대접하기 번거로운 과일이다. 옥수수는 수확 후 당분이 급속히 전분으로 변하기 때문에 옥수수를 맛있게 먹으려면 따자마자 쪄야 한다. 그다음 냉동고에 얼리고, 먹을 때 한 번 더 삶아 먹으면 맛있다. 이런 음식을 계속 먹으면 집 밖 음식은 못 먹는다.
나는 이 드라마를 보고 고구마 줄기 김치도 담그고, 묵은지에 돼지갈비찜도 만들어 먹었다. 좋은 돼지갈비를 산 다음 어느 정도 비계를 손질하고 집에서 담근 과일주와 식초를 조금 넣고 물에서 핏물을 뺀다. 그리고 나서 한 번 뜨거운 물에 데친 돼지갈비에 묵은지를 넣고 끓이면 끝이다. 묵은지가 짜다 싶으면 무나 감자를 넣는다. 그러면 무와 감자에 향이 배고 양도 많아지고 맛있다. 드라마에서 자주 먹는 김치 돼지 갈비찜을 만들 묵은 김치를 저장해 놓으려면, 김치가 충분히 익는데 3개월은 지나야 하므로 거의 매주 10킬로씩 김치를 담궈야 한다. 요즘 삼시 세끼를 집에서 먹는 가정은 거의 없다.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어머니는 밥하다가 죽음으로써 해방을 맞이한다. 나는 이 드라마를 이고 지고 가는 인물이 어머니라고 생각한다.
사족 – <나의 해방일지>의 삼 남매는 경기도에서 서울로 출퇴근을 한다. “서울은 노른자, 경기도는 흰자”라는 대사가 많이 나오는데, 해결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계란 프라이로 먹지 말고 섞어서 계란찜을 하는 것은 어떨까? 사람은 그렇게 섞이고 분산되어야 한다. (2026. 06, 또문브런치에서 읽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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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소식에서 예고했던 6월 4일의 담소재 모임을 다녀왔습니다. 가장 흥미진진한 근황 나눔, 그리고 빠져들 수밖에 없는 또문의 옛이야기, 그리고 다시 앞으로의 기대 같은 것들을 나누다보니 계획했던 시간이 너무나 부족했었던 것을 실감했습니다. 정병호선생님, 정진경선생님 두 분께서 만든 담소재는, 두 분의 오래된 인연 속에 연결된 여러 시민단체와 모임 들을 배려한 공간이었어요. 개인적으로는 어린이화장실 명패가 아주 인상적이었답니다. 나오는 길에는 담소재 윗집에 사시는 정진경선생님 댁도 잠깐 구경했어요. 두 분 선생님의 지난 시간을 느낄 수 있어 소중한 집이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또문연극팀의 구성원이었던 이동훈 교수가 지은 집이기도 해서 더욱 좋았습니다. 다음엔 더 많은 동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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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같은 날, 안타깝게도 마르잔 사트라피 작가의 부고를 들었습니다. SNS의 타임라인에는 고인을 애도하는 포스팅들이 가득했지요. 이란 여성의 이야기를 듣기 어려웠던 때 마르잔 사트라피의 그래픽 노블 ⟪페르세폴리스⟫는 전 세계 많은 독자들에게 이해와 영감을 주었던 작품이었습니다. 저에게도 매우 소중한 작품이었고요. 마르잔 사트라피를 기리는 마음으로, 배경이 되는 시대로부터 훌쩍 40년이 흘러버렸는데도 여전히 비통함과 혼돈으로 점철된 이 시간들을 괴롭게 느끼지만,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망명하듯 유학길에 오를 수밖에 없었던 어린 마르잔에게 그의 할머님이 애써 전해주셨던 조언을 다시 새겨봅니다. 그런 때에도 우리는 스스로의 '가치'(여기서는 고결함'dignity')를 잃어서는 안 된다는 다정하지만 엄격한 말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In life you'll meet a lot of jerks. If they hurt you, tell yourself that it's because they're stupid. That will keep you from reacting to their cruelty. Because there is nothing worse than bitterness and vengeance. Always keep your dignity and be true to yourself."
"인생을 살다 보면 별의별 멍충이 같은 인간들을 만나게 될 거다. 그들이 네게 상처를 주더라도, 그건 그들이 미련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렴. 그러면 그들의 악행에 맞서 보복하려는 마음을 떨쳐버릴 수 있단다. 세상을 살면서 가장 경계해야 할 건 원망과 복수심이야. 언제나 고결함(dignity)을 지키고 네 자신에게 솔직하거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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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문화를 후원하고 계신 동인들
후원회원(가나다순): 곽영선, 권김현영, 김경희, 김미현, 김보화, 김상애, 김성례, 김소영, 김신현경, 김영경, 김영옥, 김영일, 김유익, 김은실, 김정명신, 김정은, 김정희원, 김주희, 김찬호, 김태형, 김현미, 김혜련, 김효정, 김희옥, 남정호, 두애린, 문수복, 문정주, 박나미, 박은, 박진숙, 박총, 배채은, 백경흔, 변재란, 소영, 손은정, 신유리, 안혜경, 안희경, 안희옥, 양선미, 양현아, 여은영, 연주희, 우은희, 유승희, 이경자, 이선향, 이소희, 이수정, 이숙경, 이은아, 이은주, 이정주, 이지예, 이진아, 이헌미, 이현주, 이혜령, 장필화, 전유나, 정진경, 정혜란, 정혜진, 정희진, 조민아, 조옥라, 조은, 조형, 조한혜정, 지현, 진영옥, 채혜원, 최소연, 최수연, 최은숙, 최은주, 최한솔, 한혜정, 허순희, 현유라, 황은진(83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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