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은 지났지만...
아직은 불쑥 추위를 맞닥뜨리게 되는 때입니다. 그리고 설 명절도 곧 다가옵니다. 다시 심기일전해야지요?
지난 2주간 진행된 또문 여성주의 평화정치학 2026: 저자들이 직접 읽어주는 <'위안부' 더 많은 논쟁을 할 책임>의 연속강좌가 잘 마무리 되었습니다. 저자 일곱 분과 올해 출간예정인 2권의 저자 한 분이 참여해주셔서 8강이 진행됐습니다. 이번엔 연구자들이 수강생인 경우가 많아서 그랬는지 더욱 진지한 분위기가 만들어졌고, 저자들도 지난 시즌에 못다한 이야기를 새롭게 들려주셔서 정말 큰 공부가 됐습니다. 늘 더 많은 분들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다음 시즌에는 동인들께서도 많이 참여해주세요.
월례포럼은 겨울동안, 2월까지 쉬고 있습니다. 3월부터 재개할 예정입니다. 2월의 신년 떡국모임에 오셔서 의견도, 요청도 마구 해주세요.
오늘도 읽으실 글들이 많이 있습니다. [함께 나눠요]와 [지금 여기에]의 글들은 또문 브런치에 계속 쌓아두고 있으니 팔로우 또는 북마크 해두셨다가 천천히 보셔도 되어요.
- [초대] 신년회 소식(떡국모임)
- [모집] 또문독서회
- [함께 나눠요] 세 편의 글
- 반하라, 정희진, 김영옥
- [지금 여기에]
- 김은실 - 대학알리 다큐 <고장 난 공론장: 잃어버린 총여학생회를 찾아서>
- [동인동정] 김용님 화백 전시회 <현빈>
|
|
|
2026년 2월 25일(수요일) 12:30~16:00
@ 또문사무실
1월 대부도 담소재에서 진행하려던 신년회는 당일의 기상이슈로 취소되었어요. 담소재에서의 만남은 따뜻해진 봄날 다시 나들이 계획을 세우기로 하였고요, 아쉬운대로 설이 지난 뒤 또문 사무실에서 함께 떡국을 나눠먹는 모임을 준비하게 됐습니다.
서울 바깥으로 가지 않고, 신촌에서 모임을 하게 된 만큼, 가벼운 마음으로 발걸음 하시기를 기대합니다. 평일 점심 때라 시간 내기 어려운 분들도 계시겠지만, 점심시간 떡국 한 그릇만 드시고 가셔도 좋습니다. 많이 와주세요.
참가신청하기: https://forms.gle/uJzkPiEWoub7wL2X9
|
|
|
또 하나의 문화 소모임, 또문독서회는 진행중 (회원모집은 언제나) |
|
|
'돌봄'을 화두로 한 독서회는 올해도 차분히 진행될 예정입니다. 늘 열려 있는 문, 어느날 슬쩍 참가해주세요.
|
|
|
함께 나눠요.
- 반하라, 정희진, 김영옥 세 동인의 글을 차례로 싣습니다.
- [함께 나눠요]의 동인필진 그룹은 어느새, 김영옥, 김은실, 반하라, 이헌미, 이선향, 정희진 여섯분이 참여해주셨고, 필진들은 돌아가면서 2-3개월에 한 번씩 또문소식을 위해 기고해주실 예정입니다. 그외에도 참여를 약속한 동인들도 몇 분 더 있답니다. 이전의 동인지와 뉴스레터에서 했던 것처럼 집단지성과 공동체적 글쓰기가 2026년 버전으로 순항중이에요. 서두에 말씀드린 것처럼 이 글들은 또문브런치에서 모아 읽으실 수 있어요. 브런치에는 지면제한 없이 필요한 정보를 더 넣기도 해요. 또문소식에 올릴 때에는 늘 '스크롤'의 압뱍을 느끼는 중이랍니다. 그래도 글을 받고 또문소식에 넣을 때 좋은 글을 공유할 있어 감사하고 기쁜 마음 함께 느껴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지난 또문소식에 조한선생님께서 하셨던 것처럼 이 글들에 대한 화답하기, 이어쓰기의 글도 늘 환영합니다.😉
|
|
|
여성들의 '이란혁명': 이란의 여성운동은 글로벌 페미니스트 실천의 배움터다
반하라(또 하나의 문화 동인)
2026년 ‘이란혁명’(반체제 시민봉기)은 대량 학살과 검거로 가라앉아 있지만 ‘혁명’의 전류는 끓고있다. 하지만 한국언론의 지역논평들은 2026년 반정부시위를 ‘이란혁명’의 선상에서 보지않고 이슬람 물라Mullah 정권의 지지층인 상인들의 시위가 경제적 난국에서 촉발되어 전역으로 확산된 거라며 이전의 반정부 시위들과 다르다며 ‘차별성’을 강조한다.
그 논평들은 2015년 핵합의(JCPOA)에서 2018년 미국이 탈퇴하며 해제되었던 제재의 복원, 이란의 합의불이행을 이유로 2025년 유엔안보리가 결의한 제재복원(스냅백)이 경제난을 가중시켰다고 했다. 고질적 부패에 기인한 주요 은행들의 연쇄도산, 극도의 고환율과 물가상승 등에 따른 경제압박을 버틸 수 없었다고 했다. 2025년 6월 이스라엘과의 굴욕적인 12일 전쟁, 이어 미국의 핵시설 공습에 무력했던 신정 군사체제의 안보무능, 아사드 전 정권의 시리아, 레바논의 헤즈볼라, 예멘의 후티와 이라크의 시아 민병대까지 그들에게 무리한 지원을 하면서 거대한 이슬람 제국을 지향했지만 실패하면서 자국의 빈곤화만 가중시킨 물라 정권에 대한 불만, 기후변화에 따른 물부족 대비가 없었던 것까지 나열하며 역대급 반체제 시위가 발생한 배경을 짚었다. 하지만 극심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이란혁명’의 불을 지펴온 젊은 여성들의 반정부 시위 동력은 언급하지 않았다. 다양한 지형의 시민들이 ‘독재자에 죽음을’ 구호를 외치며, ‘경제’ 너머 자유와 민주를 주창해온 여성들의 ‘이란혁명’에 합류했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으면서 이전 시위들과의 연계성을 부정했다.
구기연 교수는 ‘많은 이들이 이번 시위는 이전의 시위들과 다르다고 단언하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며 그 ‘많은 이들’과 각을 세우며 이전의 반정부 시위들과의 연계성을 주장했다 (경향신문 칼럼 1월 20일). 정지혜 기자도 반정부시위가 이번에 폭발한 데는 여성들의 끈질긴 반정부 투쟁의 저력이 있었기 때문이라면서 ‘외신들은 2022년 마흐사 아미니 사망(히잡을 잘 못썼다고 종교경찰에 체포되어 구금중 사망)이후 시위 정신(‘여성, 생명, 자유’ 시위)을 계승한 Z세대 여성들이 이번 시위를 설계하고 주도하고 있음에 주목한다’고 썼다 (세계일보 1월 22일). 프랑스의 언론만 봐도 여성들이 주도해온 이란의 반 신정체제 저항운동을 중심에 놓고 이들에 동참한 젊은 남성들, 소수민족들, 노동자, 학생, 상인과 중산층등, 여러 지형의 이란 시민들이 역대급 시위에 나선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여성들을 배제하고 이번 시위를 논할 수 없는 것은 주지의 사실인데 대다수인 한국언론의 남성논평들만은 이번 시민봉기를 이란혁명’의 선상에서 보지않고 반체제 혁명의 최전선에 포진하고 있는 젊은 여성들을 애써? 혹은 습관적으로 무시했다. 여성을 배제하는 알고리즘이 장착된 ‘병리’적 언론이라면 치유의 대상이다.
1979년 이란 이슬람 공화국이 선포되고 최고지도자 호메이니가 여성들에게 히잡착용을 명령하자, 5만-10만의 여성들이 대대적인 불복종 시위로 맞섰다. 여성을 체제의 위협으로 본 물라 정권은 이슬람 공화국 민법과 형법에 상속(남성이 여성의 2배를 상속), 피보상(남성사망 보상이 여성사망 보상의 2배), 법정 증언효력( 2명의 여성증인이 1명의 남성증인과 같은 효력)등으로, 여성 가치는 남성의 반에 해당한다고 정해서 여성의 존엄을 굴욕적으로 훼손하고 히잡착용 ‘젠더 아파르트헤이트’를 지배 원리로 ‘소녀와 여성에 대한 전쟁을 선포’한 것과 마찬가지로 여성들을 적대한다.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2000년도 영화 ‘써클’은 한 교도소 방을 거점으로 그 곳을 거쳤고 거치게 되는 여성 네명의 이야기인데, 도처에 포진된 군경과 남성들의 감시망에 포획되는 여성들은 교도소 안팍에서 물리적으로 상징적으로 갇힌다. 여성흡연이 이란사회의 금기임에도 불구하고 출구없는 삶의 방편으로, 불복종으로 담배의 상징성이 부각되는데, 웨인 왕 감독의 영화 ‘스모크’에서 보여주는 따뜻한 교류의 매개가 되는 흡연과 대조적으로 고독한 암울 속의 긴박한 생존 흡연을 연출한다.
2001년 인권변호사 시린 에바디는 고통받는 여성들, 학대당하는 아동들, 탄압받는 반체제 지식인들을 돕는 ‘인권옹호센터’를 세운다. 1979년 여성은 판사자격이 없다며 판사인 에바디를 몰아냈던 물라 정권이 한참 후인 1993년 변호사업은 허용하자 시린 에바디는 인권변호사 활동을 시작한다. 그는 줄곧 탄압당했지만 위협과 공포에 무너지지 않고 인권투쟁을 강행했고 2003년 노벨평화상을 받는다. (에바디는 2009년 한국의 만해상과 국제적으로 권위있는 여러 인권상을 받았다.) 페미니스트 인권 운동가들은 고무되어 2006년‘평등을 위한 변화’ 캠페인을 펼치면서 누쉰 아흐마디 호라사니, 파르빈 아르달란외 여러 페미니스트 활동가들를 필두로 페미니스트 활동가라면 모두 관여한, 결혼, 이혼, 상속, 다처제…등등에 걸친 여성들에게 불평등한 법 개정을 요구하는 100만인 서명운동을 시작한다.
평화적인 서명운동을 탄압하면서 70명의 활동가들을 한번에 체포해서 법적 근거도 없이 형사처벌까지 했지만 여성 활동가들은 굴복하지 않고 공공 장소가 아닌 생활공간 곳곳을 찾아 조용히 대화하면서 스며드는 식으로 서명운동을 2년간 지속한다. 그 과정은 여성과 남성들에게 아동과 여성의 존엄성을 고취시키고 평등과 인권의식을 일깨우며 민주와 자유에 대한 열망을 확산시키는 성과를 수반했다. ‘평등을 위한 백만인 서명운동’은 권위 체제하에서 탄압을 딪고 성과를 낸 풀뿌리 운동의 모범이 되어 국제적으로 여러 상들을 받는다.
백만인 서명운동에 관계했던 수많은 여성들과 시민들은 2009년 대선정국에서 첫 민주화시위가 된 ‘녹색운동’을 주도한다. 개혁파 대선 후보의 상징색인 녹색 장식을 부착한 여성들은 개혁 후보 당선 켐페인을 벌이면서 그들이 당선시킨 대통령이 백만인 서명운동의 법개정 리스트들을 능가하는 개혁을 해내길 열망했다. 하지만 부정선거로 보수 후보가 당선되자 선거결과를 조작한 신정체제에 절망한다. 분노한 여성들과 시민들은 ‘독재자에 죽음을’ 외치며 녹색운동에 나섰는데 첫 민주화 시위에 직면한 물라 정권은 잔혹한 유혈진압을 강행해서 세계를 경악시켰다. 26세의 여성 네다 아가 솔탄이 사복경찰의 총탄에 맞아 죽는 것을 전 세계가 본 것이다. 분노에 찬 ‘녹색’ 여성들은 ‘사자떼’와 같은 기세로 반독재 시위에 나서 여성들의 위세를 떨졌지만 군경의 유혈진압으로 시위자들이 죽고 체포당한 반정부 인사들과 시위자들에 대한 잔인한 고문이 이어지며 녹색운동은 나아가지 못했다. 하지만 첫 민주화 시민운동인 녹색운동의 중심에서 여성들의 축적되어온 반체재 투쟁역량이 확인되었다.
2014년 #MyStealthyFreedom (나의 은밀한 자유) 운동은 소셜미디어에 히잡을 벗은 셀피를 나누며 넷 시민 불복종 운동으로 확산되었고, 2017년 말 드디어 오프라인에서 31세의 용감한 비다 모바헤드가 테헤란 엥겔랍(혁명)가의 전기사물함에 올라 흰색 히잡을 긴 막대 끝에 꼽고 깃발같이 흔드는 히잡반대 단독시위를 하고 체포된다. 2018년 내내 비다를 따라 ‘엥겔랍 가의 소녀들’ 시위가 이어졌다. 그들은 체포되면서 팔이나 다리가 부러지기도 했고 구금되어 구타당하기도 하고 장기형과 태형을 선고받으며 낼 수 없는 거액의 보석금을 요구받기도 했다. 페미니스트 인권 변호사 나스린 소투데는 비다의 석방을 도왔고 구속된 젊은 여성들을 구하기 위한 활동을 펼지면서 그 역시 체포되어 수감당한다. (그에 대한 다큐멘터리 ‘나스린’이 유튜브에 공개되어 있다.) 나스린 소투데는 2012년 유럽의회가 수여하는 사하로프 인권상을 받고도 줄곧 망명을 거부하며 활동하다 수감된 것인데 코로나에 걸려 건강 악화로 풀려난 뒤로도 물라 정권은 그의 반정부 투쟁을 막기 위해 그의 자식들을 위협하고 2024년 말부터는 남편까지도 수감시켰다. 나스린 소투데는 ‘여성, 생명, 자유’시위에 연대해서 히잡을 쓰지않고은 채 남편접견을 가고 교도소는 소투데가 히잡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남편접견도 불허하는 등 그를 위협하지만 소투데는 물러서지 않는다.
2018년 이어진 반 히잡시위는 미국이 핵합의를 탈퇴하면서 복원된 경제제재에 따른 고환율 물가상승의 경제압박과 겹쳐졌고, 2019년 연료비상승으로 살기가 더욱 어려워지자 각층의 시민들이 부패한 독재 정권에 분노하며, 이어지는 젊은 여성들의 용감한 반 히잡시위에 힘입어 전역에 걸친 반정부 시위에 나섰다. 매번 반정부 시위는 더 커졌고 정권은 더 잔혹하게 진압했다. 하지만 식지않는 분노의 전류를 타고 2022년 ‘여성, 생명, 자유’ 시위가 폭발한다. 2022년 23세의 마흐사 아미니가 사망하자 소녀와 젊은 여성들은 쿠르드 소수민족인 아미니를 추모하며 쿠르드 정치권에서 회자된 ‘여성, 생명, 자유’ 구호를 외치며 돌아갈 수 없는 다리를 건넌다. 보안대와 군경은 그들을 잔혹하게 탄압했다. 16세의 니카 샤카라미가 보안대에 납치되어 강간당하고 살해당했는데 자살했다고 사인을 조작하자 분노로 전율하면서 젊은 여성들은 ‘우리가 모두 니카다’를 외치고 ‘자유 아니면 나를 죽여라,’며 어떤 탄압에도 물러서지 않을 기세로 ‘여성, 생명, 자유’ 시위에 동참했다. 아미니의 죽음에 이어 니카와 같이 희생된 소녀시위자들이 알려지면서 분노한 소수민족들, 젊은 남성들, 학생들과 일반 시민들이 ‘여성, 생명, 자유’ 시위에 동참하면서 역대급 반정부 시위는 이란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160개 도시와 143개의 대학에서 시위가 있었고 국제적 연대시위가 줄을 이었다. 다급해진 정권은 600명에 가까운 시위자를 학살하고 눈을 겨냥해 총을 쏘아 실명케 하고 수만의 시민들을 체포하고 10명이 넘는 청년들의 생명을 교수형으로 뺏으면서 6개월 지속된 시위를 겨우 진압했다. 하지만 이번 급격히 타오른 시민봉기가 촉발되기까지 젊은 여성들의 ‘여성, 생명, 자유’시위는 완전히 끊기지 않고 지속되어 왔다. 지난 1월 9일 물라 정권이 시민들을 상대로 반인도적 범죄를 저지르며 증거를 은폐할 작정으로 인터넷 차단을 하기 직전 전세계에 이번 시위진압의 첫 희생자로 알려진 ‘로비나’는 ‘여성,생명,자유’시위의 대표성을 지닌 여성, 용기와 활력이 넘치는 23세의 쿠르드 소수민족 시위자였다. 수많은 ‘로비나’들이 시민봉기에 일어선 시민들을 이끌어 왔음을, 이번 시위는 그들이 지펴온 ‘이란혁명’의 출발인 것을 어떻게 부정할 수 있는가!
2023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엔지니어 출신의 저널리스트이자 페미니스트 인권운동가인 나르게스 모하마디는 시린 에바디가 세운 ‘인권옹호센터’의 부회장을 했고, 사형폐지 운동과 여성인권 투쟁을 전개하면서 총 30여년 선고를 받았고 수감과 석방을 수차례 반복하면서 장기 수감자가 되었다. 그는 교도소에서 ‘여성, 생명, 자유’ 시위가 시작되자 열렬히 지지하면서 그 ‘마흐사 아미니 사망’ 시위로 구금된 여성들이 당한 성적, 신체적 학대를 상세히 기록한 그의 보고서를 BBC가 출판하게 했다. 그는 자신이 수감된 정치범 수용소로 악명 높은 에빈 교도소의 58명 수감자 명단을 밝히고 그들이 수감되어 있는 환경과 심문받은 과정과 당한 고문들을 상세히 기록한 보고서도 쓴다. 2022년 모하마디는 수감자들의 증언을 담은 ‘백색고문’을 책으로 출판한다. 그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 같은 저널리스트인 남편이 14년형을 받자 남편과 아이들을 망명시키고 자신만 이란의 장기수로 남아 독방에 갇히는 고문(백색고문)을 당하고 수시로 탄압받았지만 수감중에도 무고한 사형 희생자들을 기록해서 알리며 물라 정권의 반인도적 범죄를 고발했다. 물라 정권은 백색고문을 자행해서 허위자백을 받아내고 그것을 근거로 사형을 집행하기도 하고 법적 증거가 없어도 임의로 사형을 집행하면서 전 국민들에게 누구든 체제에 반하면 사형선고로 죽을 수 있다는 공포를 심어 지배를 연장해 왔다는 것을 고발하면서 사형폐지에 사투를 걸고 있다. 극도로 건강이 악화되어 풀려나 있던 모하마디는 지난 12월 의문사한 인권변호사의 추모식에서 반독재 항거를 독려하는 연설중에 납치되어 재수감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교도소 접견도 안되고 그의 행방과 건강상태가 확인되지 않아 모두를 안타깝게 하고 있는데 물라 정권이 그에게 이스라엘 내통 협의를 씌워 사형시킬 계획이라는 루머가 있었기 때문에 더욱 긴장하면서 세계 인권단체들이 이란정부에 그의 안전보장과 건강상태 확인을 요청하는 서신을 계속 보내고 있다.
각각 70대 60대 50대인 페미니스트 인권 운동가들인 에바디, 소투데, 모하마디, 이들과 함께 백만인 서명운동을 벌였던 수많은 페미니스트들 활동가들이 있고, 2009년 녹색운동에서 사자떼의 위세를 떨쳤던 여성들, 2014년 ‘나의 은밀한 자유’ 온라인 캠페인에 참여했던 젊은 여성들, 2017년 ‘엥겔랍 가의 소녀들’ 시위에 이어 2022년 ‘여성, 생명, 자유’시위를 이끄는 주체인 Z세대 여성들까지, 이란의 여성운동은 여러 세대간 유기적 연대를 이루며 경탄할 만한 용기와 끈기로 각각의 투쟁을 독려하며 점점 강력해지고 있다. 그렇게 2026년 ‘이란혁명’이 출발한 것이다.
무함마드 라술로프의 영화, ‘신성한 무화과의 씨앗’(2023, 한국상영 제목을 ‘신성한 나무의 씨앗’으로 바꿨는데 영화주제의 중요한 상징인 ‘무화과’를 무슨 이유인지 지웠다.)은 ‘아버지 살해’를 불사해야 하는 비극적 국면의 절정을 이란 사람들에게 대면케 한다. 극한의 긴장으로 치닫는 절정의 국면에서 죽어야 하는 아버지는 파라노이드 광기 자체로 돌변한 더 이상 아버지일 수 없는 아버지, 신정체제의 물라정권을 향한 것임을 인식하게 해준다. 이란 역사에서 존재가 부정당한 수많은 소녀와 여성들은 무화과의 작은 씨앗들과 같지만 그 씨앗들을 먹은 새들과 동물들을 통한 순환으로 다시 나무로 자라 더 많은 씨앗을 품은 ‘열매꽃’이 풍성하게 달리는 든든한 혁명의 나무로 우뚝 설 것이다. (2026. 02, 또문브런치에서 읽기) |
|
|
‘알지만’ 쓸 수 없는 글
정희진(또 하나의 문화 동인,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 저자)
25년 전, 나는 아내에 대한 폭력(‘가정폭력’)으로 석사 논문을 쓰고 있었다. 나는 피해 여성들을 희생자화(化) 시키거나 폭력 상황을 선정적으로 묘사해서는 안 된다는 강박 관념에 시달렸다. 그래서 인터뷰(상담) 사례 중 가장 ‘경미한 폭력’만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선정성. 나는 이 단어에 히스테리가 있었다. 긴장감과 ‘사명감’ 때문에 음식도 못 먹고 이 문제의 심각성을 모르는 독자를 의식했다. 결국 세 가지 버전으로 썼다가 두 개를 버렸다.
마치 프리모 레비처럼 경험한 자아와 말하는(쓰는) 자아 사이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에 무지한 세상에 대한 분노와 나 자신의 무능함으로 인해 기진맥진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나는 “앞으로는 고통스러운 소재에 대해서 글을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세상사는 없었다.
내 걱정은 현실이 되었다. 내가 고르고 고른 경미한 사례만으로도 나를 의심하고 현실을 수용할 수 없는 이들이 있었다. 논문 심사 때 심사 위원 중 한 분이 “너무 극단적인 케이스만 쓴 거 아니냐. (여성 잡지)‘주부 생활’에서나 본 듯한 이야기다”라고 말했다. 다행히 다른 심사 위원들이 나 대신 반박을 해 주셔서 심사는 무사히(?) 끝났다.
글은 아는 것을 쓰는 것이 아니다. 아는 것을 버리는 과정이자, 아는 것(경험)에 대한 해석을 써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제대로 읽어줄 독자가 필요하다. 아는 것과 쓰기는 별개의 영역이다. 예를 들어 가정(假定)했던 문제의식과 필드 웍의 결과가 다를 때, 특히 조사한 내용이 ‘진실’임에도 불구하고 쓸 수 없는 이야기일 때, ‘사실과 현실’ 사이에서 나는 무엇을 써야 하나?
이 문제와 관련하여 요즘 내가 가장 고민하는 주재(主材)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다. 기존에 읽었던 관련 자료와 내가 직간접으로 겪은 ‘위안부’ 운동의 역사 사이에는 큰 괴리가 있었다. 나는 2024년에 출간된 <‘위안부’, 더 많은 논쟁을 할 책임>에 이은 두 번째 책에 실을 글을 준비하고 있다.
기존의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와 가장 불편한 관계에 있으며, 정대협 중심의 ‘위안부’ 운동에 가장 비판적인 세력은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이하 유족회)로 알려져 있다. 이들의 갈등은 이미 언론사의 정치 성향에 관계 없이 신문 지상에 여러 차례 보도되었고, ‘위안부 운동판에서도’ 익숙한 이야기이다.
처음에 나는 이 문제가 과거사에 대한 정치적 입장차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여성을위한아시아평화국민기금(이하 국민기금) 수령 여부였다. 유족회 중 군 ‘위안부’ 피해 여성은 받았고, 정대협은 가해국으로부터 이 기금을 받으면 전시 성폭력이 매춘 논리로 변질되기 때문에 국민기금 반대 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했다(당시 나도 정대협과 같은 입장이었다). 정대협은 ‘시민단체’, 유족회는 ‘당사자 단체’이기 때문에 운동의 방향과 지향점이 다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관련자들을 인터뷰하면서, 내 가정이 ‘진실’과 거리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오랜 세월 ‘위안부’ 문제에 헌신해 온 연구자, 운동가, 예술가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들의 증언 내용은 하나 같이 두 단체 간의 입장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인터뷰이들은 군 ‘위안부’ 운동이 근본적으로 피해자 중심이 아니라 대리인(연구자와 운동가를 포괄하는 advocacy그룹) 위주로 진행되었다는 데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고 보았다. 즉 이들의 갈등은 이념적인 차원의 것이 전혀 아니었다.
문제는 국가에 있었다. 해방 후 태평양 전쟁 피해자들을 ‘앞세운’ 수많은 단체와 모임이 만들어졌고, 그들이 한국 정부를 대신하여 對일본 보상, 배상 운동을 벌였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 일환으로 유족회는 1973년 공식 출범했고, 정대협은 한참 뒤인 1990년 정식 발족한 것이다.
문제는 앞서 말했듯이 글쓴이의 처음 가정과 필드 웍의 결과가 다를 때 글쓴이는 무엇에 대해 써야 하는가이다. 내가 인터뷰한 내용과 사례들이 ‘진짜’ 현실이었지만 그들 간의 갈등이나 운동 ‘내부의 풍경’을 그대로 쓸 수는 없었다. 내가 인터뷰했던 내용은 전부 버려야 했고 글의 주제도 바꿀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인터뷰가 무용했던 것은 아니다. 인터뷰 덕분에 나는 새로운 인식을 가지게 되었고 글의 방향과 주제를 바꿀 수 있었다.
글쓰기는 ‘폭로(暴/露)’도 ‘고발(告發)’도 아니다. 글쓰기는 현실 그대로를 묘사, 보고하는 행위가 아니라 현실과의 협상의 결과로 글쓴이 스스로가 ‘변형되는(warped)’ 과정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는) 있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내가 들은 것을 그대로 쓰고(알리고) 싶다는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글의 내용과 수위는 사회와 독자의 수용력, 판단력, 글쓴이의 윤리에 의해 크게 영향받는다. 따라서 글쓴이에게 필요한 능력은 자료를 문제의식에 맞게 조직하고 해석하는 것은 기본이고, 자신과 자기가 속한 사회에 대한 끝없는 되새김(reflexive)과 탐구이다. (2026. 02, 또문브런치에서 읽기) |
|
|
자기 앞의 종이와 연필: 노년의 자기 배려
김영옥(또 하나의 문화 동인)
1. 여자 어부와 여자 어부의 딸
버지니아 울프는 1931년 ‘여성의 직업’에 관한 강연에서 여성 예술가를 호숫가에 앉아 물 위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명상하는 모습으로 그린다. 잔잔히 흔들리던 상상력이 쏜살같이 심연으로 빠져나갈 때마다 이성은 “멈춰!” 소리 지르고, 상상력은 ‘어떻게 나를 그런 허접한 낚싯대에 묶어두려 할 수 있어?!’ 분노로 씨근거리고, 그러면 이성은 ‘자기야, 너무 멀리 가고 있었어. 남자들이 충격받을 거야. ... 한 50년만 기다려’라고 타이른다.
1988년, 그러니까 울프가 희망을 건 50여 년이 지난 후에, 르 귄은 울프의 이 이야기를 건네받아 릴레이하듯 이어 쓴다. 이 이어쓰기에서 여자 어부는 딸에게 조곤조곤, 그러나 열정을 숨기지 않으면서 조언한다. "작가에게 꼭 있어야 하는 한 가지는 연필과 종이야. 그거면 충분해. 그 연필에 대한 책임은 오직 작가 본인에게만 있고 그 종이에 쓰는 내용도 오직 작가 본인 책임이라는 점만 알면 돼. 다시 말해서 자신이 자유롭다는 것만 알면 돼. 완전한 자유는 아니지 결코 완전한 자유는 아니야. 아주 부분적인 자유겠지. ... 정신의 호수에 낚싯줄을 드리우는 이 짧은 순간만일지도 몰라. 하지만 이 순간만은 책임이 있고, 이 순간만은 자주적이고, 이 순간만은 자유로워."
나는 울프와 르 귄이 수행하는 이어쓰기 릴레이에 기꺼이 참여하고 싶다. 폭넓게 이해된 자기 배려의 관점에서 우리 모두 여자 어부로, 혹은 여자 어부의 딸로 ‘종이와 연필을 들고’ 살고 늙어간다고 말하고 싶다. 아니, 그렇게 늙어가자고 제안하고 싶다. 이것은 ‘자기 배려의 기술’을 포함한 미학적 프로젝트다. ‘초고령사회’라는 인구학적 진단이 무엇보다 사회‘비용’ 차원에서 등장하며 거의 노골적으로 연령차별을 부추기는 시점에서, 늙어가는 과정은 그 어느 때보다 ‘자기 배려의 기술’을 요청하기에 더욱 그렇다. 공책을 펴고 연필을 드는 일은 삶의 자락이 길고 얇아지는 노년기에 소소하지만, 중요한 의례가 된다. 그 의례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변화하는 나와 나보다 더 빨리 변화하는 세계 사이의 거리를 가늠하고, 그 틈새에서 나의 말년성을 다시 세우려는 의지의 발현이다.
2. 자기 앞의 생 : 살아내기 위해 종이와 연필을 찾는 사람들
자기 앞의 생은 자기 앞의 종이와 연필로 수렴되는 생이기도 하다. 생의 어떤 국면에서건 자기 앞의 종이와 연필을 놓치지 않았던 여자들을 발견할 때마다 설렌다. 번듯한 노트와 책상, 자기만의 시간을 갖지 못했던 여자들도 재주껏 자기 앞에 종이를 놓곤 했다. 이들은 모두 문학적 명성이 아니라, ‘살아내기 위해 쓰는’ 종이를 찾고 연필을 집어 든 사람들이었다. 밤마다 가계부 작성으로 하루를 마감하면서 한 귀퉁이에 일기를 써왔던 여자. 그렇게 60권의 가계부는 40여 년 넘은 생의 기록으로 남고(주2), 이것을 발견한 손녀는 자기 미래의 비밀을 엿본 듯 가슴이 뛴다. 어둡게만 느껴지던 미래라는 길에 빛을 비추는 글이었다. “할머니의 일기를 다시 보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접속사가 생각났다. 좋은 일이 있든, 나쁜 일이 있든, 어느 곳에 있든지 쓰는 행위를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가는 것이 할머니의 삶에서 정말 중요한 일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는 것은 계속된다. 여기에는 어떤 설명도, 주석도 필요 없다. 지금 자신에게 다가오는 이 순간을 붙잡아 보는 것. 그 필사적인 마음과 절박함이 일상을 다른 차원으로 이끈다.”
그런가 하면 흥이 맞는 이들과 한껏 신나게 일상을 춤추던 곳을 떠나 서울로 이주해 온 후, 달력 뒷면에 시를 쓰며 고립감을 뚫고 자기만의 놀이터를 새로 만들어 나간 여자, 이것을 발견한 손녀는 할머니와 마주 앉아 함께 시 쓰기를 시작한다.
“혼자 품기 아까운 삶의 이야기를 토해내고 싶은 열망”으로 54의 나이에 아예 미디어문예창작과에 입학한 여자도 있다. 《예순 살, 또 깨꽃이 되어》를 쓴 이순자다. 그는 “이 삶의 답답한 경계를 허물 수 없어 오늘도 글을 쓴다. 글은 나의 탈출구다. 나의 슬픔, 나의 한탄, 나의 목마름, 나의 안타까움, 하지 못한 많은 말을 글로 토해내며 글로나마 나를 위로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생계 문제로 그토록 열망하는 글을 쓰지 못한 채 그는 62세부터 65세까지 취업전선에서 냉혹한 노동착취와 부정의를 겪어야 했다. 환갑을 넘은 취업 지망생에게 자격증 장식품일 뿐이라는 것, 지금은 자격증 시대라지만 자격증보다 우선 순위는 나이라는 것이 그 냉혹함의 배경이다. 원래 일하던 사람도 그만둔다는 나이에 세탁소, 백화점, 신규 입점하는 매장, 어린이집 등에서 일하고 또 요양보호사와 장애인활동지원사로 일하는 등 그가 전하는 ‘실버 취준생 분투기’는 한국에서 육십 넘은 사람이, 특히 몸이 약하고 장애가 있는 여자가 일해서 자기 생계를 지탱하는 게 얼마나 불가능한지 생생하게 증언하다. 그 모든 고군분투를 뚫고 그가 도달한 곳이 ‘기초생활수급자’라는 사회적 지위였다. “이제 쓰기만 하면 된다. 사방 벽 길이가 다른 원룸에서 다리 밑판 위에 노트북을 펼쳐놓고 글을 쓴다. 하나 둘 작품을 완성하는 기쁨은 나를 설레게 한다. 이제 시작이다. 정진하리라, 죽는 날까지. 이른 결심을 축하받고 싶다.”고 그는 기쁨에 겨워하며 말한다. 심장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지 않았으면 그는 어떤 글을 남겼을까. 죽는 날까지 여자 어부(의 딸)로 그가 썼을 글들을 상상하노라면 나는 억울한 느낌이 든다. 그만큼 그가 남긴 글들이 투명하고 솔직하며, 진심 어린 타인 돌봄과 사회-세상 돌봄으로 충만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나를 사로잡은 여자 어부가 있다. 《아흔일곱 번의 봄여름가을겨울》으로 만났던 이옥남이다. 이옥남의 이 일기 모음집은 긴 생애를 ‘정리’하려는 글이 아니다. 오히려 오늘 하루를 살아낸 자신을 주의 깊게 살피며 건네는 작고 단단한 인정이다. 30년이 넘도록 꼬박꼬박 기록해 온 그의 일기는 이중의 의미에서 자기 배려다. 일기라는 자기성찰의 글쓰기를 통해 자기를 지키고 형성해 나갈 뿐 아니라, 자신이 매일 해내는 밭일과 마을 공동체 일을 깨알같이 기록함으로써 밭과 작물과 자연의 생명과 사물을 돌본다. 그 모든 존재에 삶의 무게를 되돌려준다. “오늘도 살아 있다”고 쓸 때, 그는 생존을 보고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도 삶을 배우고 있으며, 자신을 빚고 있음을, 자신이 선택한 삶을 향한 윤리적 걸음을 멈추지 않고 있음을 자신과 사람들에게 전하는 거다. 그의 일기에는 그가 진심으로 걱정하고 챙기는 여러 작고 어린 짐승들과 작물들이 수시로 등장한다. 단 한 번도 윤리나 도덕을 언급하지 않음에도 독자인 나는 그의 따스하고 둥그런 윤리의 감각 세계로 들어선다. 그가 선사하는 범속한 고양(高陽/高揚)의 감각이 얼마나 소중한지!
3. 노년기 : 영화 <시>로 밝혀보는 삶의 미학적 조형과 윤리적 지평
푸코는 후기 저작들에서 자기 배려를 ‘삶을 하나의 형식으로 빚어내는 일’이라 했다. ‘내가 누구인지 아는 일’은 삶을 빚어내는 바로 이 일을 잘하기 위해 요청되는 것이다. 삶은 돌보아야 할 어떤 것, 관리하고 조형해야 할 어떤 것이라는 그의 말은 노년의 자기만의 방에서 더 미세하게 진동한다. 푸코의 자기 배려와 자기 형성은 전 생애단계를 두고 수행하는 일이지만 특히 인생의 말년에 중요해진다. 예를 들어 메리 파이퍼는 『나는 내 나이가 참 좋다』에서 노년을 ‘미학적 통합의 시기’로 명명한다. 살아온 조각들을 하나의 이미지로 묶어내는 시기, 과거의 사건들이 드디어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시기인 거다. “내 몸이 늙어가는 동안 / 나는 더 멀고 깊은 곳으로 가고 있었다.” 2011년 읽은 김혜순의 이 문장은 15년이 지난 지금 다정하게 내 일상을 동행한다. 푸코가 말한 자기 배려의 기술이란 결국 나를 ‘더 멀고 깊은 곳’에서 다시 만나는 기술인지도 모르겠다.
영화 <시>에서 지역문화센터의 ‘시 창작 프로그램’ 강사는 두 가지를 강조한다. 누구나 내면에 시를 품고 있으니, 그것이 흘러나오게만 하면 된다. 그리고 내면의 시가 흘러나오게 하려면 ‘보기’를 제대로 해야 한다! 그렇다면 시 쓰기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그것도 꽤 단순한 일 아닌가? 그러나 많은 사람에게 시 쓰기는 매우 낯설고 어려운 일이다. 늘 사물에 둘러싸여 살지만, 사물을 ‘보는’ 게 아닌 거다.
모든 사물은 자기만의 특이성을 뿜어내고 있다. 벤야민은 이것을 사물의 존재성이라고 불렀고, 들뢰즈는 사물의 기호라고 불렀다. 뭐라고 부르든 이 독특함은 민감성을 가진 사람만 감지할 수 있는 비밀이다. 이집트 상형 문자를 해독하는 고고학자처럼 사물이 뿜어내는 이 비밀에 민감해질 때, 우리는 사물의 아름다움을 배우고 예술가가 된다. 이러한 민감성을 키우는 게 미적 교육이다. 영화 <시>에서 주인공 양미자는 자기 안의 시를 만나기 위해 사과나 꽃을 보(려고 애쓰)고, 새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러다 땅에 떨어져 짓이겨지는 살구를 보고 비로소 살구라는 사물의 비밀에 접속된다. 이것은 어느 날 우연히 찾아온 행운이 아니다. 낙과(落果)의 의미를 생명 순환의 흐름 속에서 ‘볼 수 있게 되기’까지 그동안 미자는 많은 걸 배웠다. 그리고, 이 배움의 과정은 한 여중생이 겪은 성폭력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라는 태도의 배움과 얽혀있다.
<시>는 미적 교육의 과정이 사회적 정의와 부정의를 판별하는 도덕 교육의 과정이기도 하다는 것을 긴 여정으로 보여준다. 습관적 활동의 중지와 창의적 활동의 촉진이라는 관점에서 미적인 것(aesthetic)과 마취 상태(anesthetic)를 대립 쌍으로 보았던 존 듀이의 설명까지 참조해 양미자의 시인 되기를 살펴보자. 손자의 입에 먹을 게 들어가는 걸 볼 때 가장 행복했던, 그래서 손자를 곁에 두고 계속 먹이려고 자신의 돌봄 대상자와 성적 거래까지 감행해 합의금을 마련했던 ‘할머니’ 양미자는 이 습관/마취 상태에 중지를 선언하고, 성폭행 가해자인 십 대 청소년-손자를 법의 손에 넘기는 도덕적 ‘시민-시인’의 태도를 선택한다. 살구의 비밀을 ‘알아차리게’ 되자, 선악을 구별하는 인식도 가능해진 거다. 살구가 땅에 떨어져 짓이겨짐으로써 생태적 전환을 이뤄내듯이, 이제 손자도 사회의 도덕적 생태계를 위한 전환을 이뤄내야 한다. 미자가 내면에 품고 있던 시상(詩想)은 이렇게 현실이 된다.
미자가 경도인지장애 진단을 받은 초로의 여성임을 떠올릴 때, 이것은 미자 자신의 생태적·미적·도덕적 전환이기도 하다. 여기서 나는 ‘시 쓰기’ 더 나아가 ‘글쓰기’가 나이 듦의 한 형식임을 확인한다. 이 형식에 민감해지는 것이야말로 노년기에 누릴 수 있는 향유 중 으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시만 품고 사는 게 아니라, 죽음을 품고 살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이런저런 질환이나 불편함, 통증이 우리를 삶의 무른 곳들로 안내할수록 우리가 품고 있는 시/글과 죽음은 서로를 알아보고 협업하는 힘을 키운다. 죽음이 온유한 미소를 띠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 때 사물의 비밀을 알아차리는 민감함은 증폭된다. 우리는 사실 늙은 사람에게, 늙어가는 우리 자신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게 많다. 나이의 의미를 편협하게 고정하는 규범에 묶여 살다 보니 기대하는 힘을, 창의적 상상력을 잃어버렸거나 잊어버렸을 뿐이다.
이 글을 이제 메리 올리버의 시구로 마무리하자.
“Instructions for living a life: Pay attention. Be astonished. Tell about it.”
삶에 관한 간단한 지침: 잘 보고, 잘 놀라고, 그것을 누군가에게 말하라.”
(2026. 02, 또문브런치에서 읽기) 이 글은 채널예스 [나이듦을 읽다]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채널예스와 김영옥 동인의 수락하에 채널예스는 물론 또문 브런치에도 함께 업로드되고 있습니다. 편한 쪽에서 전문읽기를 해주세요. |
|
|
지금 여기에
- 크리스챤아카데미의 반세기를 돌아보는 <이 얼마나 멋진 배움이었나: 크리스챤아카데미와 한국여성인간화운동의 아름다운 동행> 발간에 즈음하여 출간기념행사에 다녀온 김은실 동인의 북토크 서평을 싣습니다.
- 6-70년대에 시작된 여성주의 흐름을 마주하는 것이 반가우면서도, 60갑자가 한 바퀴 도는 동안에도 대학의 여성주의 현실이 여전히 응원과 연대를 필요로 한다는 것에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총여학생회 폐지를 둘러싸고, 대학의 독립언론사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4일 전 업로드된 다큐멘터리를 소개합니다.
|
|
|
<이 얼마나 멋진 배움이었나: 크리스챤아카데미와 한국여성인간화운동의 아름다운 동행>을 읽고
- 이 책의 저자 이정자선생님은 1942년생, 한국일보 기자를 거쳐 크리스챤아카데미 책임간사, 여성사회연구회 회장을 지냈으며, 현재는 헌법개정여성연대 고문으로 계십니다. 그리고 관련하여 최근 여성신문에 특별기고 두 편을 게재한 바 있습니다.
- 이정자, 여성신문 오피니언 특별기고
① 이 얼마나 멋진 배움이었나 - 여성 인간화 운동 (2026. 2. 04) ② 인간화 운동의 중심은 ‘중간집단’이다 (2026. 2. 06)
김은실(또 하나의 문화 동인)
이정자 선생님의 책 <이 얼마나 멋진 배움이었나>, 제목이 좋습니다. ‘멋짐’ 배움에 대한 이정자 선생님의 자랑스러움이 빛나는 제목입니다.
“10부 인터뷰–강원용과의 만남 그리고 여성운동” 챕터 앞까지 이정자 선생님은 1970-1979년 과거의 자료에 기반해 크리스챤아카데미 여성인간화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상세한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9부까지 읽으면서 아카데미 중간집단 여성사회교육 프로그램 그리고 주부아카데미에 참여했던 교육생들은 정성스럽게 조직되고 준비된 정말 멋진 배움의 프로그램을 경험했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교육은 인생의 전환을 가져왔을 것이고, 또 거기서 평생 같이 갈 친구와 동지를 만났을 것이고, 또 아카데미에서 배운 방식대로 세계를 변화시키는 프로그램을 조직하고 구성하는 운동가들이 되었던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바로 한국에서 1980년대 다양한 분야에서 여성운동을 조직하고 시작했던 사람들이구나라고 생각했고, 크리스챤 아카데미에서 만들어진 이들의 연대와 관계성이 한국의 여성운동을 영향력있게 만들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이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10부에서 12명의 인터뷰 내용을 읽어 보니, 그들은 자신들이 아카데미 교육프로그램의 멋진 배움의 경험자들이었고, 수혜자들이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마음을 움직이고, 의식을 변화시키는 교육방식을 경험한 것, 평생 같이 일을 하는 동지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과 연대하며 일을 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 세상을 바꾸는 여성운동가가 되는 것, 그리고 세계에 대해, 인간 여성에 대해 배움을 준 스승을 만나는 것 등 대단한 배움의 역사가 있었다는 개인적 기억들을 언급하고 있었습니다. 12명의 교육생들의 이야기는 아카데미 프로그램의 의미와 영향력을 증거하고 있었습니다. 여성들에게 세계와 역사를 변화시키는 행위자, 주체가 되어야한다는 것을 교육하고 격려하고 지원하는 인프라가 부족한 1970년대의 한국 사회에서 많은 재정적 인적 자원을 동원해서 조직한 세심한 교육 프로그램, 도덕적 지원들, 새로운 세계관과 지식을 강의하는 새로운 선생님들과의 만남 등 대단한 자원을 크리스챤 아카데미는 제공했습니다. 변화되어야 하는 “사회와 불화하는 개인”을 만드는 것, 이 말이 쓰여진 것, 발화된 것이 저에게는 너무 재밌고 또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이 말을 좋아했을 혹은 놀랬을 젊은 여성들을 상상하며 ‘와우!’ 했습니다.
저자 이정자 선생님의 크리스챤아카데미 여성인간화교육에 관한 자세한 자료 정리에 감사드립니다. 누군가가 기록을 정리해주지 않으면 70년대 젊은 여성들이 사회개혁으로서의 여성운동의 중간 매개자로 교육되었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파편적으로 크리스챤아카데미에서 교육받았던 개인들을 생각하면서 자신의 틀 속에서 자기가 이해한 그들을 전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1970년, 1980년대 페미니스트 운동가들에 대해 잘 모르는 젊은 세대들이 1970년대에 여성운동가가 되겠다고 마음 먹었던 젊은 여성들이 누구였고, 또 나중에 어떤 일을 했는지를 알면 한국 페미니즘 역사를 이해하는데 더 넓은 시야를 갖게 되고, 또 흥미로운 것들을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정자 선생님 책은 1970년대 사회개혁으로서의 여성운동을 위한 준비를 크리스챤 아카데미는 어떻게 하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정자 선생님은 페미니스트에 의한 기존의 6개의 연구물을 인용하면서, 1980년대 초 새로운 진보적 여성운동의 출현은 크리스챤아카데미의 여성인간화 교육과 거기서 배출된 교육생들로부터 기인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주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했고, 제가 이 책을 읽기 이전에 교육생들에 대해 넓게, 총제적이고 맥락적으로 생각하지 못했고, 또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정자 선생님 책을 읽으면서 특히 제가 알고 있는 여성 선배들의 이름을 보면서 1980년대 여성운동과 크리스챤 아카데미의 관계를 여성사회 중간집단 교육에서 배출된 교육생 그리고 대화 운동에 참여했던 여성 지식인들의 관계와 활동을 통해 조사, 연구하면 흥미로울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정자 선생님은 책의 미주에서 여성사회 중간집단교육에 참여했고, 또 새로운 여성운동 조직을 시작하고 참여했던 여성들의 이름을 많이 밝히고 있습니다. 이 이름들을 읽는 것이 저는 참 좋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제가 알고 있는 분들의 이름을 보는 것이 읽는 재미를 주기도 했습니다. 1980년대 한국여성의 전화, 여성평우회, 이화 여성학, 또하나의 문화, 한국여성단체연합, 여성문화예술기획, 한국여성노동자회, 여성신문 등 진보 여성운동의 저변을 확산시키는 새로운 조직이나 인프라 등에 아카데미 여성사회연구회 회원들이 어떻게 참여했는가를 살펴보면 당시 한국여성운동의 지형에 크리스챤 아카데미 교육의 영향이 어떻게 연루되었는지에 대한 또 다른 방식이 드러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이정자선생님이 제시하는 1974-1979. 3월 까지 중간집단육성 여성사회교육 프로그램과 참가자들의 자료, 그리고 1979년 이후 새로운 중간집단 교육 대상이던 사회주부를 육성하기 위한 주부교육 등의 자료가 매우 의미있고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자료들을 보면서 당시 여성인간화 교육 프로그램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이 ‘여성 인간화’ 틀 혹은 개념 그리고 ‘중간 매개 집단’이란 위치성에 대한 것인데, 이 개념들을 둘러싼 당시의 토론이나 논쟁 혹은 이 개념들을 구축한 과정이나 맥락 등이 매우 궁금했습니다. 이정자 선생님께 드리는 질문이라기보다, 이 부분에 대한 기록 또한 누가 써주었으면 좋겠습니다. 70년대 흥미로운 아이디어이고, 이후 여성의 인간화는 이화여대 등에서 계속 사용되었던 개념이어서, 70년대 토론이나 사상적 맥락 등을 알고 싶습니다.
제가 또 흥미롭게 봤던 것은 크리스챤아카데미 교육 방법론이 많은 교육생들에 의해 재생산 되거나, 중요한 준거점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10부에서 이혜경은 (273)은 후에 “나도 여러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거의 아카데미 교육방식의 포맷을 따랐고, 아카데미 교육방식은 지금도 사회교육의 기초가 되었다고 생각한다”고 쓰고 있습니다. 사실 이 부분은 장필화선생님과 아시아 여성들을 교육하는 프로그램 등에서 비슷하게 발견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것들도 논의가 되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또 크리스챤아카데미 젊은 여성 중간집단에 대해서는 한국에서의 여성사회 형성이라는 차원에서 연구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1973-1978년 남성과 달리 동지나 동료관계를 맺기 어려운 젊은 여성들에게 같은 정도의 역사의식과 세계의식을 갖는 공동체를 갖는 것, 동료나 동지에 대한 필요와 기꺼이 동료·동지가 되어 주는 관계를 맺는 것이 어떤 것이고, 이 관계의 사회적 정치적 수행성은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이계경(247)은 숭고한 광기로 창조적 소수가 되라는 강원용 원장의 메시지가 우리 모두를 여성운동의 전사자로 만들어주고 있었다고 했는데, 당시 이 숭고한 광기는 젊은 여성 집단 내에에서 어떻게 수용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이정자 선생님께 자료정리에 감사를 표합니다. 만들어진 자료를 읽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만, 그것을 찾아 배치하고 정리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과거의 자료들을 찾아서 엮고, 맥락에 맞게 배치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지난한 작업에 대해 치하하고, 축하 드립니다. 그리고 그 작업의 결과로 1970년대 사회변화의 주체로 여성을 조직했던 그 역사의 구체성의 한 측면을 알 수 있게 해줘서 감사드립니다. 저만 해도 자료에 등장하는 이름들 중 아는 이름들이 좀 있기 때문에, 그 이름들을 통해 그들이 여성운동에서의 움직임을 좀 읽을 수 있지만, 사실 젊은 페미니스트들에게 교육생 이름들은 아마 다 모르는 이름이거나, 어떤 활동을 했는지 모르는 영역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교육생 이름만으로 지형의 이동이나 사람들의 관계성을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더 늦기 전에 이정자 선생님이 자료를 정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26. 02, 또문브런치에서 읽기) |
|
|
독립 대학언론 대학알리에서 만든 다큐멘터리 <고장 난 공론장: 잃어버린 총여학생회를 찾아서>를 소개합니다. 1990년대 말까지 대학 내 여성운동의 중추이자 여성주의의 공론장이었던 총여학생회는 2010년대에 들어서며 대부분 장기간 공석인 상태이거나 폐지되었는데, 총여학생회뿐 아니라, 대학사회의 학생 자치가 쇠퇴했고, 많은 여성주의 조직이 해체됐으며, 여전히 혐오와 차별이 만연한 공간이 되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여학생회가 사라진 캠퍼스 한편에는, 그 틈을 비집고 목소리를 내고 있는 페미니스트들이 있고, 대학에는 여전히, 변함없이 페미니즘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고 합니다. 김신현경, 권김현영 두 동인의 인터뷰도 들어있어요. (→ 후원 페이지 남겨둘게요.) |
|
|
[전시] 김용님 展,
<현빈玄牝: 한국신화 한국여신들> 2026. 2. 20(금)-2026. 2. 25(수)
혜화아트센터(대학로)
강화도에서 여신, 모성, 마고를 주제로 오랫동안 작업중이신, 또문 동인 김용님 화백께서 전시회를 엽니다.
이번 전시회를 위해서는 스물 다섯 이상의 여신들을 그리셨다고 해요. 삼승할망, 경주 할매부처, 지리산 성모천왕, 개양할미, 유화 소서노, 청정각시, 영등할망, 선문대할망, 정견모주, 허황옥, 당금애기, 감은장애기, 세오녀, 새여신, 곰여신, 원천강신화의 오늘이, 자청비, 바리, 홍산의 웅녀, 마니산의 웅녀, 성주풀이, 칠성풀이... 이렇게 많은 여신들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전시회 가셔서 여신들을 만나고 영접해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부대행사]
- 2월 20일(금) 오후 5시 현경의 빛명상
- 2월 21일(토) 오후 5시 김신명숙의 토크, 서양의 여신문명, 신라의 여신문화
|
|
|
1, 2월 사이 트럼프정부의 야만적 이민단속, AI 에이전트들의 SNS(몰트북) 활동, 엡스틴 파일 공개, 이란협상 등으로 유럽과 미국사회가 휘청이고 있습니다. 새해 벽두부터 정말 혼란도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한국사회가 이런 소식들에 큰 관심은 없어 보이지만, 몰트북 입장자격이 있는 AI에이전트(AI비서)는 갖고 싶고, 이를 위해서는 24시간 켜두어야 하는 개인컴퓨터가 필요하기에, 가장 효율성이 좋다는 애플미니북의 판매량이 늘고 있다는 얘기 정도만 들립니다.
엡스틴 파일에 등장하는 세계적인 갑부나 왕실 사람들, 정치가 들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보이지 않지만, 그 리스트에 마빈 민스키와 놈 촘스키가 들어있었다는 소식이 들리면서 외견상 알 수 없었던 이 유명인들끼리의 '엘리시움' 세계에 실망과 분노를 표하는 사람들도 생기는 것 같습니다.
|
|
|
며칠 전 열렸던 그래미 시상식은 케데헌, 로제 등 한류의 성취를 자랑한 '국뽕' 축제로 기대하는 분위기가 컸지만, 주요 언급은 'ICE OUT'이라고 해야할 것 같습니다. 시상식장을 정치적 선동의 장으로 만들지 말라는 악플세례도 어마어마하다고 하는데, 아무튼 꿋꿋하게 이민단속국(ICE)와 트럼프를 비판하면서 총격사망사건을 추모하는 음악가들이 많았다고 하지요. 그 중에서도 2001년생, 벌써 세 번째 그래미상 수상자인 싱어 송 라이터 빌리 아일리시의 수상연설 중 "No one is illegal in stolen island"이 가장 많이 인용됐습니다. 그리고 그 연설은 이렇게 마무리 됩니다. "We need to keep fighting and speakingand protesting. our voices matter and people matter."(우리는 계속 싸우고 말하고 시위해야 합니다. 우리의 목소리는 중요하고 사람들은 소중합니다.)
개인적인 팬심으로만 메모해두는 것은 아니고요, 대학알리와 같은 분들에게도, 또 여전히 목소리도, 사람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응원하며 오늘의 '또문소식'을 마칩니다. 설 명절에도 건강하고 평안하시기를 빌어요. 떡국 드시러 오세요! |
|
|
또 하나의 문화와 함께 하시는 분들
후원회원(가나다순): 곽영선, 권김현영, 김경희, 김명신, 김미현, 김보화, 김소영, 김신현경, 김영경, 김영옥, 김유익, 김은실, 김정은, 김정희원, 김주희, 김찬호, 김태형, 김현미, 김혜련, 김효정, 김희옥, 남정호, 두애린, 문수복, 문정주, 박나미, 박은, 박진숙, 박총, 배채은, 백경흔, 변재란, 소영, 손은정, 신유리, 안혜경, 안희경, 안희옥, 양선미, 양현아, 여은영, 연주희, 우은희, 유승희, 이경자, 이선향, 이소희, 이수정, 이숙경, 이은아, 이은주, 이정주, 이지예, 이진아, 이헌미, 이현주, 장필화, 전유나, 정진경, 정혜란, 정혜진, 정희진, 조민아, 조옥라, 조은, 조형, 조한혜정, 지현, 채혜원, 최소연, 최수연, 최은숙, 최한솔, 한혜정, 허순희, 현유라, 황은진(77명)
일시후원(가나다순): 권은선, 김신현경, 김은실, 김주희, 정희진 (각 20만원)
|
|
|
또 하나의 문화tomoon.tomoon@gmail.com서울시 마포구 와우산로 174-5 대재빌라 302 (전화 02-322-7946)수신거부 Unsubscribe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