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구 곳곳에는 장혜영 전 의원이 내걸은 현수막이 나부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큼지막하게, 마침표까지 꾹 눌러쓴 것 같은 '전쟁 반대.'가 눈에 띕니다. 파병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아직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정부의 판단이 있기 전에 국민들의 뜻을 분명하게 '마침표 찍어' 말해주는 일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파병찬성이라는 몇 사람의 발언이 오히려 화제가 되는 와중이기에 더더욱. 장혜영 전 의원의 현수막이 홀로 외롭지 않도록, 더 많은 깃발이 함께 펄럭이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물론 아직 끝나지 않은 계엄사태의 처리 때문에 정치소식과 재판소식에 귀기울여야 하는 일 년여의 시간이 좀 괴롭고, 그에 더하여 전쟁과 국익, 외교를 저울질하며 '실용'과 '영리함'을 갖추고 난국을 타개해야 한다는 평론들을 계속 듣다보면 우리 삶의 가치와 정의는 어느 순서에 말할 수 있을까 낙담하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전쟁중인데, 전쟁과 관련해서 한국국민의 주요관심이 '석유값'과 '주식시세'와 '종량제봉투'만 있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전쟁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최근 ChatGPT에서 Claude로 갈아타는 움직임을 만들기도 합니다. 전쟁에 AI가 사용되면서 그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오픈AI와 앤트로픽의 비교되는 대응이 알려졌기 때문인데, 그런 얘기를 들으니 '쿠팡 사태'가 떠올랐습니다. 지난 해 말 대규모 개인정보유출사태를 빚은 쿠팡에 대하여 '탈팡 운동'을 벌였던 시민들이 꽤 있었지만, 불과 4-5개월만에 쿠팡 사용자 수는 개인정보 유출이전 수준으로 다시 회복되었다는 얘기였어요. 꾸준히 생각과 마음을 정하고 태도와 행동을 견지하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새삼 발견하게 되고요.
또문의 월례모임과 소모임들이 그런 것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3월까지는 월례모임을 진행하지 않고요 곧 준비해서 동인들과 다시 만나는 장을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독서회는 여전히 진행중입니다. 아, 오픈채팅방도 여전히 열려 있습니다.
[또문소식]에는 비정기적으로 함께 나눌 글들을 쓰는 필진으로 활동해 주시는 동인들도 있지만,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 최근 소식, 의견, 혹은 오늘의 저처럼 '답답한 마음'을 토로하셔도 좋답니다. [또문소식]에 글을 보내주세요. 가볍고 재밌는 이야기부터 무겁지만 꼭 함께 나누고픈 이야기까지 모두 환영합니다. tomoon.tomoon@gmail.com 으로 메일 주시거나 010-8741-4437 로 문자 주세요.
오늘의 [또문소식]은 아래의 순서로 쓰여졌습니다.
- [모집] 또문독서회, 다은의 이야기
- [함께 나눠요] 두 편의 글 - 권은선, 최수연
- [지금 우리는] 김영일, 메이시
- [동인소식] 지현, 박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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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문화 소모임, 또문독서회는 진행중 (회원모집은 언제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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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에 읽고 있는 책은 이라영의 <쇳돌 - 사라지는 세계, 사라지는 노동, 사라지는 목소리를 채굴하기>입니다.
제목의 ‘쇳돌’은 철광의 우리말이자 저자의 아버지가 양양광업소에서 일하며 함께했던 동지들과의 모임 이름이기도 합니다. 640쪽이나 되는 묵직한 두께의 책이지만, 이 책을 쓰기까지 5년이나 걸렸다는 저자의 말이 실감날 만큼 방대한 자료와 구술, 그리고 기록의 힘을 느낄 수 있는데, 그 무게감에도 불구하고 '술술' 읽히는 탁월한 문장과 이야기들이었답니다. 독서회 회원 한 분은 '질적연구의 표본이 될만하다'고 언급하기도 했고요. 함께 읽고 나누고 싶은 책이라는 말씀을 덧붙여 언제든 독서회 문은 열려있다고 환영한다는 말씀 전합니다!
그리고 '또문독서회'란 어떤 곳인가! 아래 독서회 회원 다은의 이야기를 읽어뵈시면 '그 느낌' 아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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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시끄러운 ‘우리의 방’, 또문독서회
다은(또 하나의 문화 동인, 또문독서회 회원)
가수 이랑의 ‘우리의 방’이라는 노래를 좋아한다. 이 노래는 여성 싱어송라이터 5인 – 신승은, 이랑, 성진영, 이호, 슬릭 – 이 각자의 시공간에 대해 말하는 인터뷰 기반 책 <이야기, 멀고도 가까운>에 수록된 곡으로, 인터뷰를 통해 이랑은 이제까지 거쳐온 집들을 하나씩 회상하며 그 집과 방에 얽힌 이야기와 감정들에 대해 말한다.
어린 시절까지만 해도 집으로 가는 아파트의 모든 현관문이 열려 있어 집으로 향하는 길에 같은 아파트에 사는 분들께 인사를 하며 올라갔던 기억부터 어느 순간부터 모두 닫혀버린 현관문에 관한 이야기. 엄마가 오기 전 세 남매가 함께 TV를 보면서 라면을 끓여 먹던 이야기. 집에서 마주했던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과 엄마의 우울까지.
집에 얽힌 이야기는 가족을 환기시키고 어린 시절 기억은 여전히 영향력이 있다고 말하며, 이랑은 공간을 통해 지나온 자신의 삶을 반추한다. 어린 시절로부터 도피하고 싶지만 여전히 그 기억들이 자신 안에 잔존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제는 과거를 마주하며 그에 얽힌 이야기와 노래를 만들어내고 싶다는 이랑, 그는 이 노래를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읽고 만들었다.
이야기나 노래 만들기를 좋아했던 어린이에서 음악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영화를 찍는 사람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되짚으며, 새로운 노래나 이야기를 만들 때마다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이 늘 있었지만 그럼에도 계속해 나갈 수 있었던 까닭은 한 명이라도 네 이야기가 좋다고, 계속해도 된다고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어서였다. 때문에 자기만의 방도 좋지만, 곁에 누군가 한 명이라도 있는 게 정말이지 중요하다는 이랑. 노래 ‘우리의 방’에는 이런 그의 바람이 잘 드러난다.
점차 누군가와 같은 책이나 영화를 읽고 보며 이야기할 기회가 줄어들었음을 실감한다. 그런 내게 작년 하반기부터 해오고 있는 또문독서회는 일종의 ‘우리의 방’과 같은 존재다. 물론 이제까지 진행한 모든 책을 다 읽지는 못했지만… 혼자라면 끝까지 읽어내지 못했을 책도 함께라서 끝까지 읽어내고 서로서로 책에 관한 생각과 논의를 나누며 조금씩이라도 읽어나가고 있다.
각자 의견을 말하고, 듣고, 응답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도 생각을 진전시킬 힘을 만들어낸다. 또문독서회는 책과 관련된 생각을 교환하는 장(場)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정기적으로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공동체의 돌봄을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도 소중하다. 책으로 시작된 인연이지만 함께 여성 영화제도 가고, 특강과 포럼을 보고, 송년회도 하면서 지난 25년 하반기를 또문독서회와 함께 알차게 보냈다.
이 시대에 ‘돌봄’이 필수적인 주제인 만큼, 올 2026년도 또문독서회와 함께 돌봄과 관련된 여러 책을 읽고 이야기하며 돌봄에 대해 좀 더 배워나가고 싶다. 이랑이 노래하듯, 또문독서회라는 작은 우리만의 방에서 오래오래 함께 시끄럽게 떠들면서 좀 더 나아갈 수 있는 눈과 마음을 가지게 되기를 소망한다.
“나는 눈앞의 경계선을 넘어서까지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기를 간절히 기도했지 들어는 봤지만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활기로 가득 찬 세상과 도시들을 볼 수 있게 되기를 내가 경험한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경험할 수 있게 되기를 나와 닮은 사람들을 어디선가 만나고 닮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기를”
- 이랑, <우리의 방> 일부
(2026. 03, 또문브런치에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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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랑의 노래 ‘우리의 방’(Woori’s ro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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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나눠요.
- 권은선, 최수연 두 동인의 글을 차례로 싣습니다.
- 최수연 동인이 해설과 감상을 쓰시게 되었던 AI와 관련된 콜로키움의 기록영상은 주최측의 공개에 따라 브런치에 올려두었습니다. 내용이 많아서 여기에는 싣지 않았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브런치에서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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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너: 그녀들의 법정
권은선(또 하나의 문화 동인, 중부대학교 연극영화학전공 교수)
최근 한국 드라마 시리즈의 우세종 가운데 하나는 법정드라마다. 실로 다양한 법정드라마가 연이어 등장한다. 사회가 불안하고 법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고 대중들이 느낄 때, 법정드라마는 회귀한다. 이와 같은 문화적 현상은 계엄재판의 생중계와 뉴스가 우리의 일상이 된 시대, 법조인이 점점 더 중요한 통치권력자이자 셀럽이 된 ‘법조인 인플레이션’ 사회, 법의 해석을 이용하는 법기술과 ‘법꾸라지’가 난무하는 사태의 반영이자 응답일 것이다. 약자의 편이 아닌 권력자의 편에서 작동하면서 정의와 공정을 외면하는 법의 폭력과 무능함, ‘법과 정의의 아포리아’가 자아내는 시민들의 불만, 불안, 무력감에 대한 상상적 해결책, 즉 서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지난 몇 년간 여성들이 피해자나 남성 엘리트 법조인의 법률조직 파트너가 아닌, 법의 대리인이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시리즈들이 연이어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에 눈길이 간다. 대략 <미스 함무라비>를 시작으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굿 파트너>, <지옥에서 온 판사>, <옥씨 부인전>과 같은 시리즈들이 그것이다. 그동안 한국사회를 좌지우지한 남성 거대권력 카르텔에 대한 불신과 환멸의 크기만큼, 그 아버지의 법을 해체하고 정의의 빛을 비추는 주체의 위치에 엘리트 남성이 아닌 여성이 자리하는 것은 어찌보면 시대가 요청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상상 아닌가.
이제 막 시리즈가 끝난 <아너:그녀들의 법정>(이하<아너>)를 몇 가지 측면에서 흥미롭게 보았다. 우선 이 시리즈는 L&J라는 성피해자 전문 로펌에서 활동하는 친구이자 동료인 세 명의 여성변호사를 주인공으로 한다. L&J는 피해자의 말을 경청하고(Listen) 그들과 함께한다(Join)는 의지의 표명이다. 최근 등장하는 대부분의 법정드라마가 그러하듯이 이 시리즈 역시 ‘미스터리 추적극’의 장르적 요소를 결합한다. 공범자의 유대 같은 그녀들의 단단한 결속 아래에는 20년 전 발생한 윤라영의 성폭력 피해 사건과 관련한 세 여성의 비밀이 놓여있다. <아너>에서 주인공이 법지식을 통해서 사건을 통쾌하게 해결하는 영웅적인 법조인이 아니라 성폭력 피해자라는 설정은 극적 긴장감을 높이는 동시에 관객과의 동일시를 용이하게 한다. 법정드라마라고는 하나 이 시리즈는 법정 내 법적 논증과정이 가져다주는 논리적 대결과 지적 유희보다는 법정 밖 성폭력을 둘러싼 우리 사회 구조의 어두운 측면과의 투쟁을 극적 즐거움의 요소로 가져온다.
동명의 스웨덴 시리즈를 원작으로 하고 있지만, <아너>는 사건의 전개과정에서 ‘장자연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과거의 ‘서지윤 리스트’와 현재의 성매매 앱 ‘커넥트인’을 주요 극적 요소로 삼아 남성들의 성을 매개로 연결되는 거대한 권력카르텔의 존재를 문제 삼는다. 정치권력, 대형로펌, 재벌, 언론 포식자들의 비밀 네트워크가 성거래를 담보로 한 상호보호막이자 권력 장치로 작동하는 것임을 보여주는데, 이 부분에서 최근 막대한 양의 자료가 공개되면서 다시 조명되고 있는 ‘엡스타인 파일’과 그것이 증거하는 초거대 글로벌 카르텔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주목을 끄는 것은 <아너>에서 설정한 이 카르텔의 새로운 최상위 포식자가 앱 개발자라는 점이다. 20여 년 전 성상납 의혹 속에 자살한 배우 서지윤의 동생인 백태주는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이용하여 법망을 뒤틀고 인간의 취약점을 이용해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하는 동시대적 빌런이다. 디지털 기술이 어떻게 성범죄와 권력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법정드라마의 주요 극적 긴장은 ‘법과 정의의 간극’을 배경으로 펼쳐지기 마련인데, 백태주와 강신재의 대결은 정의의 실현 도구를 둘러싼 싸움이다. 법의 무능 앞에서 덫을 놓아 권력카르텔을 해체하기 위해 법을 단지 수단으로 삼으며 성폭력 피해자를 만들어 내는 것에 개의치 않는 자와 법의 테두리 안에서 피해자 중심주의에 기반한 정의의 구현을 믿는 자의 대립인 것이다.
동시대 여성서사로서 <아너>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지점은 여성들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즉 여성들의 우정이 가족애보다 우선적 가치로 다루어진다는 점이다. 그동안 다른 여타의 드라마 역시 그러하지만, 모든 법정드라마에서 ‘가족’이란 늘 최상위의 ‘정서 포식자’였다. 그러나 그녀들은 친족보다 우정, 연대를 최상위의 가치로 둔다. 서로에 대한 믿음과 애정, 헌신이 마치 모든 관계적 가치들을 앞서는 것처럼 재현된다. 윤라영은 20여 년 만에 어렵게 재회한, 윤라영 자신처럼 성폭력 피해자이지만 백태주의 덫에 걸려 가해자가 된 딸이 법 앞에 서는 것에 기꺼이 동행하며, 강신재는 거대권력 카르텔의 중심축인 거대로펌의 대표인 자신의 어머니를 법의 심판대에 올려놓는다. 그것도 한 방울의 눈물도 없이.
이 부분에서 코스타 가브라스의 <뮤직 박스>와 이창동의 <시>가 떠올랐다. 나치 전범자로 법정에 소환된 아버지를 변호하던 <뮤직박스>의 앤 탈보트는 많은 피해 증언들 속에서도 법해석적 논리싸움을 통해 자신의 친족에 대한 믿음에 부합하는 법판결을 받아내지만, 역사적 사건 현장에서 ‘뮤직박스’라는 판도라상자를 연 이후 딸은 정의를 위해 아버지를 법의 심판대로 다시 올린다. <시>에서 극도의 이중적 딜레마에 빠진 윤미자가 손자를 경찰에 고발함과 동시에 지역문화센터 시 강좌 수강생 중 유일하게 시를 완성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가 피해자의 흔적을 추적하며 무한한 책임감의 윤리의식을 가지고 타자의 얼굴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다소간의 불투명성으로 결말을 맺은 <아너>는 세 여성 인물이 커넥트인을 법 앞에서 세웠지만 그녀들이 추구한 권력카르텔의 청산은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며 후속 시리즈의 귀환을 암시한다. 판결 이후에도 상처는 남아있다. 법의 무능력과 폭력에 맞서는 것은, 법에 대한 총체적 부정과 불신이 아니라 법을 해체해 가면서, 고통 속에서 타자를 향한 무한한 윤리적 책임감인 해체불가능한 정의를 우리 앞의 미래에 여는 것이다. (2026. 03, 또문브런치에서 읽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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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글쓰기, 그리고 여성주의 지식
최수연(또 하나의 문화 동인, 한국학대학원 사회학과 교수)
올해 1월,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양대학 논리적 글쓰기팀이 주최한 온라인 콜로키움 <ChatGPT 뒤에 숨은 학생들, 그 앞에 선 교수들>에 500명이 넘는 대학 교수, 강사, 학생이 참여해 화제가 되었다.(관련기사: 이우연, “대학은 찾고, 학생은 피하고 ‘AI 글 숨바꼭질’… ‘평가 기준 바꾸자’”, 한겨레 신문, 2026. 1. 21) 신청 인원을 모두 수용하지 못하여 유튜브를 통해 중계하는 상황은 생성형 AI가 교육 현장에 일으키는 파장의 크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나 역시 이 콜로키움에 참여하며 내가 겪고 있는 곤경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며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발제자들은 각기 다른 교육 환경과 철학을 바탕으로 AI를 교육 현장에서 어떻게 활용, 혹은 통제할 것인가에 대한 유용한 논점과 정보를 나누어 주었다. 콜로키움을 통해 얻은 바가 많았지만, AI와 글쓰기의 관계, 특히 AI가 여성주의 지식 생산에 갖는 의미에 대한 질문은 콜로키움이 끝난 이후에도 여전히 남아 있다. 이 문제에 대해 내가 느끼는 혼란은 AI의 도구적 유용성을 분명히 경험했음에도, 그것이 어느 순간 인식론적 차원의 문제로 전환될 때 마주한 당혹감의 사이의 간극에서 비롯된다.
내가 처음 비용을 지불하며 AI를 쓰기 시작한 것은 1년 전, 미국의 한 대학교 여성학과에 소속되어 수업을 하고 논문을 쓰던 때였다.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수업을 한 지 5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영어는 ‘나의 말’이 아니라고 느끼는 날들이 많았다. 특히 내 생각들과 감정들을 영어 문장들로 간신히 붙들어 쓴 논문의 초고 위로 편집자의 빨간 줄 수정과 친절한 메모가 빼곡히 달려 있는 것을 볼 때마다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러다 우연히 AI를 통해 영어 문장 교열을 받아보았는데, 그 경험이 너무나 쾌적하게 남아 있다. 마감에 쫓기며 더 일찍 초고를 쓰지 않아도 되는 것은 매우 큰 장점이었고, 더불어 수정된 원고를 받아볼 때 심리적 타격도 크게 줄어들었다. 나의 원고를 읽고 수정하는 과정에 ‘사람’이 아니라 ‘기계’가 있다고 생각하니, 그 교환 과정에서 무거워지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기 때문이다. 영어라는 권력의 언어가 휘두르는 횡포로부터 나를 보호하는데 AI라는 도구는 매우 유용했고, 심지어 이를 위해 치러야 하는 가격도 너무나 저렴하다고 느꼈다. 아. 이것은 신세계구나.
AI에 대한 나의 생각이 복잡해진 것은 내가 작년 9월부터 한국에 돌아와 수업을 하게 되면서부터였다. 나는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여성학을 가르치게 되었고, 그 학생들은 대부분 아시아 국가 출신의 유학생들이었다. 학생들은 한국어능력시험의 일정 수준 이상을 통과해 입학했지만, 한국어가 그들에게 외국어라는 것은 알아채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토론 과정에 참여하는 동시에 생각을 표현할 한국어 단어를 찾느라 발생하는 정적의 순간들, 흥분된 마음의 속도를 한국어 문장이 쫓아가지 못해서 끝없이 이어지는 발언들을 속에서, 나는 학생들에게서 과거의 내 모습을 발견하곤 했다. 어쩌면 그래서 학생들이 AI의 도움을 받아 기말 페이퍼를 제출한다는 사실에 대해 큰 문제의식을 갖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나 학생들의 기말 페이퍼를 읽으며, 그것이 잘못된 판단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나’라는 존재가 지워진 문장들, 높은 수준의 추상적 개념어들, 일반론적 결론이 한국어로 매끄럽게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한 학생은 “AI와 대화하며” 기말 페이퍼를 썼다고 설명했다. 그 ‘대화’는 과연 어떤 식으로 전개되는 걸까? 생각과 생각의 순환적 교환이 이루어지는 과정이었을까, 혹은 요청과 답변이 단방향으로 이어지는 절차였을까. 나는 그 학생에게 물어보지는 못했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며 떠올린 생각은 이것이었다. 아. 이것은 위험한 신세계구나.
학생들이 AI를 글쓰기의 도구가 아니라 ‘대화’의 상대로 여긴다는 사실을 마주하며, 나의 고민은 학생들의 기말 페이퍼 채점을 넘어 여성학 수업 자체를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로 확장되었다. 여성주의 지식은 그간 보편적 진리, 객관성을 담보하는 것으로 여겨졌던 기존의 지식 체계와, 그 지식을 생산해 온 제도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발전해 왔다. 여성주의자들은 기존의 서구 과학이 주창해 온 가치중립성의 허구를 지적하며, 구체적인 몸의 경험에서 출발하는 글쓰기와 지식 생산을 주창해 왔다. <또문소식 1월>에서 조한 선생님이 소개한 또문 동인들의 ‘작게 쓰기’ 실험도 이와 맞닿아 있는 듯하다. “나는 이 위치에서 이 몸으로 이만큼만 말한다. 나의 이야기를 듣고 너의 이야기가 이어지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의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으면 좋겠다.” 이 문장의 여운이 유독 길게 남는 것은, 그것이 AI와 글쓰기에 대한 내 우려가 향하는 지점에 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예컨대 AI의 젠더 편향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AI가 산출하는 추상화하고 일반화하는 서사들은 여성주의 인식론이 강조하는 지식의 구체성과 부분성과 필연적으로 충돌하는 것은 아닌가? 요청에 응답하는 AI의 답변들이 글의 초고가 될 때, 글을 (쥐어짜며) 쓰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고통만이 아니라 관점의 변화와 연대의 가능성 자체도 함께 차단되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우려를 바탕으로, 나는 다음 학기 강의계획서에 AI의 선별적 사용 방침을 명시해 두기로 했다. AI 사용은 허용하되, 글의 초고는 본인이 직접 쓰는 것을 원칙으로 제시하였다. 다시 말해, 글쓰기 전 자료를 검색하거나, 혹은 글을 쓴 후 문장을 다듬고 피드백을 받는 방식의 활용은 허용하되, 사용 방식에 대한 짧은 설명을 글과 함께 제출하도록 요구했다. 이러한 방침이 얼마나 효과적일지 다음 학기가 지나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선별적 사용과 전면적 사용의 구분이 실제 글쓰기 과정에서 구분 가능할지, 혹은 구분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그 원칙을 지켜낼 수 있을지, 솔직히 예측하기 어렵다. 글쓰기는 늘 괴롭고, 그와 대조적으로 AI를 사용하는 것은 대체로 편리하다는 조건 자체가 달라지지 않는 한 ‘선별적 사용’이라는 개입이 충분히 효과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이 수업 정책이 우리가 지금 위험한 신세계로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하고,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실험과 실패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게 하는 계기가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믿고 싶다. 이 위험한 신세계 안에서 함께 길을 찾기 위해. (2026. 03, 또문브런치에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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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 설 명절이 지난 2월 말부터 8월 초까지 또 하나의 문화에서 일하게 된 인턴 메이시가 자신을 소개하는 글을 썼습니다. 잠정 중단중이던 또문아카이브가 재개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 지난 신년회에서 함께 떡국을 나누었던 김영일 목사께서 <고정희 시인과 나>를 쓰셨어요. 신입회원처럼 오셨는데 또문 곁에 늘 계셨던 것을 알게 되어 참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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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메이시 권(또 하나의 문화 인턴)
안녕하십니까, 저는 최근 또 하나의 문화에서 아카이브 인턴으로 함께하게 된 메이시 권(Macy Kwon)입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페미니즘 시학에 관심을 가져왔으며, 김혜순과 최승자의 비평과 작품을 읽으며 또 하나의 문화를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젠더 관점을 통해 대안적인 의식과 현실을 상상하고자 했던 또 하나의 문화의 뿌리적 출발에 깊이 매료되었습니다. 실험적인 네크로포에틱스와 젠더 기반 폭력 문제를 둘러싼 공동체적 활동이 교차하는 지점 또한 제가 또 하나의 문화 자료를 디지털화하는 작업에 참여하고, 한국의 페미니즘 담론을 더욱 깊이 읽어보고 싶었던 중요한 이유였습니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교육, 문학, 아카이브, 그리고 사회 전반에서의 성평등에 대해 보다 정교하고 세계적인 이해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최근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비교문학을 전공하고, 미국학과 젠더·섹슈얼리티 연구를 부전공으로 졸업했습니다. 학위 논문에서는 급진적이고 반식민주의적인 시인 최승자와 Simone Yoyotte를 비교하며, 시민 불안과 전쟁과 같은 불안정한 역사적 시기에 어떤 시적 형식이 등장하는지를 탐구했습니다. 저는 특히 아카이브의 침묵, 파편화된 역사, 그리고 식민주의와 군사주의의 유산과 마주할 때 창조적 저항이 아카이브와 문학, 그리고 사회 속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미국 학자 Saidiya Hartman의 「Venus in Two Acts」을 김혜순과 Maryse Condé 같은 작가들의 작품과 함께 읽으며, 역사를 기록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제 생각이 크게 변화했고, 이는 제가 아키비스트이자 글 쓰는 사람의 길을 고민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현재 저는 한국의 주요 페미니즘 텍스트들을 정리한 비평적 참고문헌 목록과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있으며, 그 시작으로 <글 읽기와 삶 읽기>(조한혜정)와 <페미니즘의 도전>(정희진)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또한 또 하나의 문화 행사 사진들을 아카이빙하고, 또 하나의 문화 구성원들과의 인터뷰를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이 역사들이 언어의 경계를 넘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접근 가능해지기를 바라며, 동시에 또 하나의 문화의 현재와 미래에도 의미 있는 자료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또 하나의 문화와 함께 더 많은 이야기와 역사를 읽고 배우며 성장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2026. 03, 또문브런치에서 읽기) --- * 메이시의 글은 영어로 먼저 쓰여졌습니다. 영어버전은 브런치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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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희 시인과 나
김영일(또 하나의 문화 동인, 전주대광교회 목사)
#1. 1991년 6월 9일 일요일
35년 전 이 날, 나는 한신대 신학과에 갓 입학한 대학 신입생으로 1학기 기말고사를 앞두고 있었다. 시험이 끝나면 기숙사에 있는 짐을 꾸려 고향 강진으로 내려가 방학을 보낼 궁리에 빠져 있었다. 시험기간 중 우연히 어느 시인의 부고를 접하게 되었는데, 시간이 더 흐른 뒤에야 알게 되었다. 그 시인이 나의 한신대 선배님이었다는 것을. 옷깃만 스치어도 인연이라는데, 나는 그 옷깃마저도 스칠 기회를 잡지 못한 것이 슬프기도 하고 야속하기도 했다. 23년 차이라는 세월의 간극도 있으려니와 한신대 신학과 동문이라는 것 말고는 딱히 선배님을 생전에 뵈어야 할 필연적인 사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오늘까지 고정희 시인을 한신대 선배님으로 기억하며 인연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것은 선배님의 '시'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음을 고백한다.
#2. 광주 YWCA와 조아라 장로
수유리의 한신대 신대원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두고 1999년 2월, 결혼과 동시에 첫 목회현장인 화순읍교회 전도사로 내려갔다. 약 2년 후인 2000년 12월에는 광주한빛교회로 옮겨 2002년 봄에 목사안수를 받았다. 연초에 심방 때마다 소태동 <영신원>에 방문하면 그렇게도 정겹고 뜨겁게 심방대원을 맞아주시고 기뻐하시던 조아라 장로님의 소녀 같은 미소와 표정은 잊을 수 없다. 연로하셔서 거동이 불편하시던 때라 외부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얼마나 보고 싶고 그리워하셨는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푸짐한 먹거리를 간식으로 내놓으시며 남기지 말고 다 먹고 가라시던 당부의 말씀은 나의 할머니요 어머니가 의당 부어주시던 사랑의 발로였던 것이다.
목사임직 후 2003년 5월에 첫 담임목회지인 해남 계곡면에 소재한 <사정교회>에 부임하였다. 33살에 시작한 담임목회지에서 11년 5개월을 살면서 나의 목회와 삶에 고맙고 소중한 인연들을 많이 만났다. 잠시 잊고 있었던 고정희 선배님과의 만남이 다시 이루어진 것이다. 해마다 6월이면 <고정희 기념사업회>에서 주관하는 추모행사가 열리는데, 나 또한 행사에 동참하면서 시인의 삶과 시에 대해 시나브로 알아가게 되었다. 그런데 시인의 연보를 살피던 중 시인이 광주 YWCA에서 조아라 장로님과 함께 일을 했던 사실이 눈에 확 들어왔다. 그래서였을까. 시인은 후일에 "내 시와 사유의 세계를 형성한 것은 수유리의 한신대와 광주 YWCA와 또 하나의 문화였다."고 회고했다. 끊길 뻔했던 시인과의 인연은 광주한빛교회에서의 조아라 장로님을 통해 그리고 땅끝 해남에 내려와 시인의 추모행사를 통해 극적으로 이어진 것이다. 조아라 장로님은 내가 해남에 부임한 후인 2003년 7월 8일에(91세)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셨다.
#3. 고정희 기념사업회와의 만남
해남에서의 첫 목회는 고정희 시인과 고정희 기념사업회와의 만남이 있어 풍성하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채워질 수 있었다. 목회 일정에 시간을 내어 송정리에 있는 시인의 생가에 들러 시인이 읽었을 책들이 꽂혀 있는 서가를 망연히 응시하거나 방에 앉아 무심히 책들의 제목을 일별 하곤 했다. 당시 시인의 고모님이 고즈넉한 집(생가)을 홀로 지키고 계셨는데, 시인의 서재와 방을 방문객들에게 자유로이 개방했다. 시인의 사진들과 육필원고들 그리고 삶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스며 있는 생가를 수시로 방문해 시인의 삶의 모토였던 <고행ㆍ청빈ㆍ묵상> 글귀를 경전 읽듯 바라보며 가슴에 새기곤 했다.
해마다 시인 추모행사가 열리면 생가와 묘소 일원에 추모객들이 많이 모이곤 했는데, 어느 해였던가. 당시 기념사업회 이명숙 회장님의 제안으로 해남 읍내 YMCA 강당에서 "고정희 시 강좌"를 열었는데, 내가 강사로 서게 되었다. 시인도 문학평론가도 아닌 내가 감히 고정희 시인의 시를 강의하는 자리에 서게 된 연유는 이렇다.
고정희 시의 주제가 되는 <기독교ㆍ민중ㆍ여성> 가운데, 성서와 기독교적인 시어나 개념들에 관한 것들을 모아 목회자로서 시 읽기를 안내하는 길라잡이 역할을 해주십사는 회장님의 제안에 화답한 것이었다. 비기독교인 일반 독자들이 기독교적 세계관을 담아낸 낯설거나 난해한 제목이나 시어들의 의미와 문맥을 쉽게 설명, 안내함으로써 누구나 고정희 시인의 시를 부담 없이 접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획한 강좌였다. 당시 강좌에 참여한 분들과의 화기애애한 소통 덕분에 시인의 시들을 '더 친밀하게 읽고 깊이 묵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피드백이 있어서 보람 있는 강의로 기억된다. 지금도 그때 강의를 위해 준비했던 강의록은 남아 있어서 설교 준비나 강의 때마다 유익한 자료가 되곤 한다 (주제: 고정희 시에 나타난 히브리 사상과 예수 정신).
#4. 한신이 낳은 시인들과 고정희
2015년의 일이니까 벌써 10년이 넘은 세월이다. 한신대 신학대원장 연규홍 교수님의 제안으로 한신대가 낳은 시인들의 작품을 모아 시선집을 발간하게 되었다. 한신대 개교 75주년을 맞아 선배(시인)들의 문학적 감성과 역사의식을 후배 목회자들과 교회가 공유하자는 취지였다. 이를 위해 ‘한신 시문학회’가 주관하여 7명의 시인을 선정했다. 시선집에 게재할 시인은 한신대 설립자인 송창근, 김재준을 비롯 김정준, 문익환, 김경수, 임인수, 고정희 등이었다. 나는 고정희 시인을 소개하고 시들을 선정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를 위해 당시 목포에 거주하고 계시던 시인의 오빠되시는 분께 전화로 연락을 드려 시선집 발간 취지를 설명하고 흔쾌히 시 게재를 허락받았다. 발간된 시집을 자택으로 보내드렸다. 제목은 <땅에 쓴 글씨>였다. 참고로 시선집에 게재한 시를 소개한다. <상한 영혼을 위하여> <고백>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편지> <어머니, 나의 어머니> <사십 대>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 <이 시대의 아벨> <야훼님 전 상서>| <누가 홀로 술틀을 밟고 있는가?> <수유리의 바람> <성금요일> <부활 그 이후> <기(旗)> <폭풍 전야> <서울 사랑> <히브리전서> <하관> <신 없이 사는 시대의 일곱 가지 복>.
#5. 목사후보생들과 시인의 만남
해남에서 목회하던 시절, 해마다 가을이면 수유리 신학대학원생들은 전국 각지의 교회에 현장목회실습을 떠난다. 나도 4-5명의 목후생들을 초대하여 4박 5일 동안 교회에서 숙식하며 목회실습을 진행했다. 땅끝 해남까지 실습을 와주는 후배들이 고마웠다. 빠지지 않는 프로그램 에는 해남이 낳은 고정희, 김남주 시인의 생가를 방문, 소개하는 것이다. 한국의 현대사를 온 몸으로 살아내며 시로 남긴 선배의 생가와 시의 세계를 함께 경험하는 일은 뿌듯하고 기쁜 일이었다. 해남지역에 왔던 많은 목사후보생들이 지금도 고정희 시인을 기억하며 그의 시를 읽으며 목회하고 있을 모습을 상상하면 즐겁다.
#6. 고정희 시인의 시를 읽는 한국교회를 염원하며
작년(2025년)에 내가 속한 기장(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에서 매월 발행하는 회보에 고정희 시인의 삶과 시를 소개하는 연재를 실었다. 총 7회에 걸쳐 주옥같은 시들을 소개하는 기쁨을 누렸다. 연재를 하게 된 계기는 단순하고도 소박했다. 목회하면서 만나는 선후배 목회자들과 대화를 하는 가운데, “혹시 고정희 시인 알아요?” “모른다구요?” “오호통재라!” “이름은 들어봤다구요?” “그분이 바로 한신대 신학과 선배님이에요!” 이런 분위기의 소통을 하곤 한다. 우리 교단이 배출한 대선배님과 시를 모르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최소한 한국교회가 아니 기장 교단에 속한 목회자와 교인들이라도 고정희 시인의 시를 읽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절박하고 절실한 마음에 총회 담당자에게 ‘고정희 시인의 시를 소개할 수 있는 지면을 허락해 주십사’ 요청하여 연재를 하게 되었는데, 전국 각지의 동료 목회자들이 전화나 메시지를 통해 격려해 주시고 감사의 인사를 전해주셨다. 목사로서, 후배로서 아니 사람으로서 고정희 시인의 시가 한국인들과 더불어 전 세계인들이 읽을 날을 꿈꾸어 본다.
#7. 또문과의 만남을 기뻐하며 인사드립니다.
작년 5월에 목회하던 교회(인천)를 사임하고 급하게 천안에 집을 얻어 내려오게 되었다. 27년 동안 경주마처럼 달려온 목회 여정에 잠시 쉼과 재충전의 시간을 갖고자 안식년을 맞아 쉬게 된 것이다. 생전 처음 살아보는 충청도 천안에 이사 온 날이 마침 고정희 시인의 기일인 ‘6월 9일’이었다. 이삿짐을 부려놓고 책을 정리하다가 고정희 시인 1주기에 발간한 추모집 <너의 침묵에 메마른 나의 입술>이 눈에 띄었다. 해남에서 목회할 때 손님이 방문하면 시인의 생가에 가서 이 책을 소개하고 한 권씩 사주곤 하면서 읽었던 책이다. 그런데 이사한 날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다. 꼼꼼히 그리고 찬찬히... 시인의 급작스러운 죽음과 장례식 그리고 1주기 추모공연 등 시인을 추모하는 분들의 현장감 넘치면서 생생하게 살아 있는 글들이 가슴 뭉클하게 다가왔다. 추모글을 써주신 분들께 이 지면을 통해 진심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그 추모집이 아니었으면 시인의 마지막 모습을 모른 채 살아갔을 삶을 생각하니 아찔한 것이다.
추모집을 읽고나서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내가 한신대 입학해서 1학기가 끝나기도 전에 43살의 나이에 유명을 달리하셨기에 생전에 선배님을 뵌 적이 없다. 너무 안타깝고 아쉬운 대목이지만 ‘시인의 육성은 어떤지...’ 목소리라도 듣고 싶은 마음이 올라온 것이다. 우선 해남의 고정희 기념사업회를 통해 조한혜정 교수님의 전화번호를 의뢰했다. 교수님께 문자로 인사와 용건을 말씀드리니 <또하나의문화>에 문의하도록 안내해 주셨다. 또문의 김희옥 선생님을 통해 음성 파일로 시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목소리로 만날 수 있음에 참으로 감사했다. 도움을 주신 해남의 고정희 기념사업회와 제주의 조한혜정 교수님 그리고 또문의 김희옥 선생님께 거듭 감사드린다. 덕분에 지난 가을 10월 말에 제주 여행 중 조한혜정 교수님이 거주하시는 <선흘리 예술마을>에 방문하여 할머님 작가분들의 그림들을 감상하는 호사를 누리기도 했다. 환대해주시고 자세한 그림 소개까지 해주신 교수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앞으로 고정희 시를 매개로 또문이 펼쳐나갈 선한 역사를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인사를 드린다. 또문 회원 여러분, 정말 반갑습니다. (2026. 03, 또문브런치에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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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의 글에는 사진들이 여러 장 들어 있습니다. 여기에는 다 넣지 못했는데 브런치에서 귀한사진들 확인하실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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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회] 성평등정책 국회토론회
지현 동인이 참여하는 K-MEN 주최로 ‘전환의 남성성’을 화두로 한 정책 제안 토론회가 열립니다. 소년과 청년 남성이 성평등 교육의 수동적 대상이 아닌 구조적 참여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정책의 언어로 질문을 던지는 자리라고 해요. 지현 동인은 "성평등 교육현장에서의 새로운 남성성 확산 전략"을 제목으로 발제합니다.
이번 토론회에서 제안하는 세 가지 방향은, 성평등 교육 정책에 남성 청소년·청년의 참여를 구조적으로 포함할 것, 정부 차원의 에퀴문도 영국 조사 번역 및 한국형 조사 연구를 추진할 것, 그리고 새로운 남성성 교육을 위한 콘텐츠·매뉴얼·보수교육 체계를 구축할 것이라고 하네요. 유튜브로도 보실 수 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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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 <제국의 성 관리 역사와 일본군'위안부' 문제> 지속되는 폭력, 연결된 목소리들
일시: 2026년 3월 27일(금) 14:00~18:00
장소: 온라인(ZOOM)
주최: 동북아역사재단
박정애선생님이 편저자로 참여한 신간, <제국의 성 관리 역사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북토크가 열립니다. 또문대학의 교재로 함께 읽었던 <'위안부', 더 많은 논쟁을 할 책임>의 저자로서 또문대학에 작년과 올 해 모두 강의를 진행해주셨기도 합니다. 새 책에서는 "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시공간적으로 줌아웃하여 전체 역사 속에서 조감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면서, "제국의 성 관리 역사 속에서 각기 다른 얼굴의 민낯을 드러내고, 제국의 이익을 위해 여성을 희생시켰던 그 본질을 드러내는 일은 보편적 여성 인권 문제를 정면으로 대면하는 일"임을 알리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을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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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문화와 함께 하시는 분들
후원회원(가나다순): 곽영선, 권김현영, 김경희, 김명신, 김미현, 김보화, 김소영, 김신현경, 김영경, 김영옥, 김영일, 김유익, 김은실, 김정은, 김정희원, 김주희, 김찬호, 김태형, 김현미, 김혜련, 김효정, 김희옥, 남정호, 두애린, 문수복, 문정주, 박나미, 박은, 박진숙, 박총, 배채은, 백경흔, 변재란, 소영, 손은정, 신유리, 안혜경, 안희경, 안희옥, 양선미, 양현아, 여은영, 연주희, 우은희, 유승희, 이경자, 이선향, 이소희, 이수정, 이숙경, 이은아, 이은주, 이정주, 이지예, 이진아, 이헌미, 이현주, 장필화, 전유나, 정진경, 정혜란, 정혜진, 정희진, 조민아, 조옥라, 조은, 조형, 조한혜정, 지현, 채혜원, 최소연, 최수연, 최은숙, 최은주, 최한솔, 한혜정, 허순희, 현유라, 황은진(79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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