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되었어요. 🐎🐎🐎
붉은 말의 해라고 하는데, 지난 번 연하장에는 말그림 대신 '용어'(龍漁)그림을 넣어서 보내 드렸어요. 아룬다티 로이는 911사건과 이라크공습 이후의 책 <9월이여 오라>에서 '작가란 추악한 현실의 목격자이며 늘 아픈 눈을 뜨고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용어'란, 밤낮으로 눈을 뜨고 있는 그 물살이가 어느날인가 용으로 바뀐 것이라고 하니, 이 모든 사건사고는 해탈의 과정인지 여전히 번민의 과정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 시절에도 부시 대통령 등은 '우리는 평화를 사랑하는 나라'라고 했다지요. 오매불망 노벨평화상을 받겠다는 트럼프도 신년 벽두부터 베네수엘라를 향한 제국주의적 행태를 자행하여 모두에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 잘 모르지만, 그러한 제국주의적 자원 수탈의 역사속에서 유사한 고통을 겪었던 이웃나라인 에콰도르나 볼리비아 등이 자연의 권리와 비인간존재의 권리를 헌법에 반영하고 생태적 전환을 꾀하는 것이 제국주의의 침략으로부터 최선의 방어라고 여겼다고 들었던 것 같습니다. (🙏)
움추러들고 얼어붙은 국제사회의 대응을 보면서 2026년은 또 어떻게 전개되려나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영리함'과 '실리'만을 칭찬하며 대통령의 개인기(?)만 화제가 되는 분위기 속에서 우리 사회가 돌보고 지켜가야 할 가치는 어느 방향에 있을까요? 이런 생각들을 홀로 이어가기는 어렵지만, 동인들과의 대화는 늘 도움이 됐었어요. 그래서 더더욱 곧 있을 신년회에서 동인들과의 만남이 기대됩니다. 신년회는 물론, 올해 더욱 자주 뵈어요!
* 이번 또문소식도 읽을 내용이 많습니다. 잠깐 티타임을 가지셔요!
- [초대] 신년회 소식
- [모집] 또문 여성주의 평화정치학 2026: 저자가 직접 읽어주는 <'위안부' 더 많은 논쟁을 할 책임>
- [모집] 또문독서회
- [함께 나눠요]
- 이헌미, <1980, 사북> 항쟁의 기억과 여성의 형상 - 이선향, ‘시민’으로 살아내기: ‘이처럼 사소한 것들’과 ‘멋진 세계’ - 조한혜정, <또문소식 12월>을 읽고-동인지, 이어쓰기의 시작
- [동인동정] 유나, 세나, 록의 제주 어린이캠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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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1일(수요일) 11:00~15:00
정병호, 정진경 선생님께서 대부도 바닷가 언덕 위에 지은 담소재는 두 분이 함께 해온 여러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공동의 장소로 활용될 수 있기 바라며 마련된 곳입니다. 동인지 편집하기 위해 모였던 ‘바람과 물 연구소’ 같은 곳들이 떠오릅니다.
올 해 신년회는 바로 이 담소재에서 지내려고 해요. 또문 외에도 여러 그룹들이 두 분 덕분에 아름다운 풍광 속에서 좋은 뜻과 생산적이고도 다정한 이야기를 나누는 아지트를 갖게 된 것 같습니다. 많이 와주세요.
참가신청하기: https://forms.gle/9cbusJWeoPar6xyt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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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집] 또문 여성주의 평화정치학 2026 저자가 직접 읽어주는 <'위안부' 더 많은 논쟁을 할 책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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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더 많은 논쟁을 할 책임>의 저자강독 시간이 다시 돌아옵니다. 이전 강독을 놓쳐 아쉬움을 토로한 분이 많이 계셨고, 또 올해에는 두 번째 책도 쓰여지고 있어, 지난 여름 더운 열기도 아랑곳하지 않고 진행되었던 집중강좌를 한 해의 시작, 이 겨울에 다시 열게 됐습니다. (아래 순서에 참여해주고 계시면서, 책에 실려 있지 않았던 김한상교수님의 글은 두 번째 책에서 다시 만나시게 될 예정입니다.)
지난 여름에는 5주간에 걸쳐 진행되어서 긴 시간 참여에 부담을 느낀 분들도 있었어서 이번에는 2주간, 매회 두 분의 저자가 연속강좌를 맡아주시는 식으로 진행하고자 합니다. 조금 강도가 높을 수 있겠지만, 짧은 시간인 만큼 좀 더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주변에도 많이 알려주시고, 또 동인들께서도 직접 많이 참석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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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문화 소모임, 또문독서회는 진행중 (회원모집은 언제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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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을 화두로 한 독서회는 올해도 차분히 진행될 예정입니다. 늘 열려 있는 문, 어느날 슬쩍 참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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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나눠요.
1월에 함께 나눌 글은 이헌미선생님, 이선향선생님께서 써주신 글들과 조한선생님께서 지난 또문소식을 읽고 답장을 써주셨어요. 세 편의 글을 차례로 싣습니다. (*지난 1월에 실렸던 '향성을 넘어'는 글쓴이 성함을 '반하라'로 정정합니다. 본명보다는 반하라로 불러달라 하셨어요. 앞으로도 종종 지면으로 뵐 것 같아 알려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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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 사북> 항쟁의 기억과 여성의 형상
이헌미(서울대 국제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
박봉남 감독의 〈1980, 사북〉(2024)은 드물게 균형감과 섬세함을 갖춘 영화다. 탄광과 카지노라는 또렷하게 대비되는 과거와 현재의 이미지가 교차하는 가운데 얽혀 있는 기억들이 카메라 앞에 소환된다. 그 서사의 중심에는 황인욱이 있다. 지역 연구자이자 그 자신 사북항쟁의 피해자 가족인 황인욱은 날카롭게 부딪치는 가해와 피해의 목소리들을 끈기 있게 경청하면서 개인적 원한으로 치환된 과거를 국가폭력의 문제로 제기한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내가 보는 것은 노동자들의 자발적인 정치에 대한 물음이다. 1970년대 박정희 정부는 값싼 노동력으로 수출 경쟁력을 확보하는 군사적 성장주의 속에서 광부를 ‘산업전사’로 호명했다. 1980년대에 석탄 산업이 사양 궤도로 들어서며 광부들의 노동은 더 불안정해졌고, 위험은 일상화되었다. 해마다 쏟아져 나오는 사고와 죽음 속에서 ‘전사’의 몸은 소모되었지만, 그 몸이 정치적 시민으로 인정받을 통로는 끝내 열리지 않았다. 사북의 광부들은 단지 임금을 더 받기 위해 들고 일어난 것이 아니다. 어용노조를 거부하고, 작업장의 규칙을 바꾸고, 자신들의 삶을 결정하는 방식 자체를 다시 쓰려 했다. 요컨대, 살기 위한 투쟁의 인간학이 여기 있다.
그러나 그 정치가 작동하리라는 희망을 주었던 ‘서울의 봄’은 1980년 4월 14일 전두환 계엄사령관이 불법적으로 중앙정보부장을 겸임하고, 실재하지 않는 북한의 남침 위협을 빌미로 5월 17일 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하면서 환상으로 판명된다. 사북항쟁은 1980년 4월 16일에서 4월 24일까지 진행되었고, 5월 6일 정선경찰서에 계엄사 합동수사반이 설치되면서 관련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불법 연행과 고문, 폭행이 시작된다. 노동의 정치가 치안 사건으로 번역되고 폭동으로 명명되는 구조, 시민이 되려는 시도 자체가 불법화되는 구조 속에서, ‘정당한 봉기’는 불가능하다.
여기서부터 내가 가진 의문은 더 깊어진다. 이 영화가 그려내는 노동자의 이미지가 있다. 그런데 그 노동자는 여자의 얼굴을 하고 있지 않다. 왜 사북항쟁에서, 동원탄좌 사북영업소와 지장산 사택의 여성들은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어머니로만 호명되는가. 탄광촌의 여성들이 ‘가족’으로만 존재했을 리 없다. 광부는 갱내 노동을 담당한 남성 일변도로 표상되지만, 석탄에서 잡석·이물질을 골라내는 선탄 공정은 여성 노동자가 주로 맡았다. 또한 탄광은 작업복·장비·세탁·수선·목욕·구내매점 등 여러 시설로 굴러가는데, 이런 공간에서 누가 일했겠는가? 여성들은 탄광 경제의 하부구조적 노동자였고, 주민으로서 항쟁의 조건을 함께 감당했으며, 어떤 여성들은 분명 항쟁의 행위자였다. 그런데 영화가 포착하는 여성의 자리에서 가장 또렷해지는 것은, 여성이 정치적 주체로 등장하는 순간이 아니라 여성이 폭력의 대상으로 호출되는 순간들이다. 지부장 아내에게 가해진 성폭력적 린치, 항쟁에 참여한 부녀회장과 탄광촌 여성들에게 가해진 성고문. 여성은 다시 한번, ‘투쟁의 내부’가 아니라 ‘사건이 남긴 상처’로 배치된다.
영화는 이 문제를 완전히 외면하지 않는다. 황인욱은 항쟁 지도층에게 지부장 아내에 대한 린치를 인정하고 사과할 것을 요구한다. 그래서 영화 말미에 이원갑 씨가 지부장 아내 김순이 씨에게 사과 편지를 쓰는 장면이 스치듯 지나간다. 그러나 그 편지는 전해지지 않았고, 받아들여지지도 않았다고 한다. 이 대목은 중요하다. 사과가 봉합의 장치가 아니라, 오히려 봉합되지 않음의 증거로 남기 때문이다. 영화를 본 뒤 계속 맴돌았던 장면은, 황인욱이 성고문 증언을 보며 "그 여성 중 누군가는 내 친구의 어머니였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말하는 대목이다. 나는 이 말에서 연대의 심리적 출발점을 이해한다. 그러나 동시에 묻게 된다. 연루와 공감과 연대가 결국 이런 식이어야 할까. 우리는 왜 누군가가 ‘내 친구의 어머니’일 때에야 비로소 그 폭력을 현재형의 현실로 받아들이는가. 왜 여성의 고통은 ‘누구의 가족인가’라는 관계의 언어를 거쳐야 정치적 폭력이 되는가. 사북을 다시 읽는 일은 국가폭력의 진실을 확인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노동자들의 자발적 정치가 어디서 좌절되었는지, 그리고 그 정치가 젠더를 어떻게 통과하지 못했는지를 함께 묻는 일이어야 한다. (2026. 01, 또문브런치에서 읽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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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으로 살아내기: ‘이처럼 사소한 것들’과 ‘멋진 세계’
이선향(강원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2025년의 틀이 남겨놓은 시간이 얼마 남아 있지 않을 무렵, 사회적으로는 물론 개인적으로도 문제는 풀리지 않고 오히려 엉켜만 간다는 압박감이 심해질 때, 두 편의 영화가 생각났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Small Things Like These 2024, 감독 팀 밀란츠), 그리고 ‘멋진 세계’(Under The Open Sky 2022, 감독 니시카와 미와). 두 영화의 제목의 기억은 적어도 내게는 반전으로 남아 있었고, 다시 꺼내보았다. 영화에서 전개되는 내용은 전혀 사소할 수 없는 선택과 멋지다고 할 수 없는 가혹한 세계의 현실이었다. 물론 두 영화는 ‘어둠 속에서 희망의 단서를 품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한 내용을 담고 있음을 굳이 부인할 필요 없다.
내가 두 영화에서 집어낸 주제는 ‘시민’으로 살아내기이다. 대부분의 (주변)사람들이 수용하고, 묵인하고, 또는 인내하는(영화에 나온 표현이지만, 나는 ‘참아내는’이라는 표현을 주로 쓴다) 일상에 맞춰 살아내어야 사회(공동체, 지역사회, 국가 등등)에서 탈락하거나 낙오되거나 제거되지 않는다. 빌 펄롱은 어제까지 참아냈던 일상을 더 이상 반복하지 않고, 도움이 필요한 아이에게 손을 내밀었고, 미카미 마사오는 받아들여 지기 위해서 죽을 힘을 다해 참아내다가 결국 더 이상 버텨내지 못했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 영화보다 2023년 번역 출판된 클레어 키건의 원작을 먼저 읽은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영화가 원작의 그 미세한 섬세함의 동요와 긴장을 다 담지 못했다 말하기도 하고, 그 원작을 읽어내느라 힘겨웠는데 영화로 다시 고통받고 싶지 않다고 하기도 했다. 그러나 원작을 읽지 않은 사람도 98분의 영화를 바탕으로 각자 되새기고 싶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낼 실마리로 영화는 충분하다. ‘멋진 세계’의 소재는 통속적이라 할 만큼 특별하다고 보기 어렵다. 이 영화도 살인 범죄로 13년을 복역하고 출소한 실존 인물을 그려낸 원작이 있다고 한다. 범죄 전과자가 돌아온 현실 세계는 각박하고 차갑고, 영화처럼 그의 적응과 복귀를 응원하고 지원하는 이웃도 분명 존재하지만, 그는 매순간 부딪치는 현실 앞에서 불안하고 무력하다.
빌 펄롱이 가정과 일터를 꾸리면서 성실한 가장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 데는 어린시절의 불행을 보듬어 준 이웃의 보살핌이 중요했다. 그리고 그는 잊지 않고 있었다. 비록 불행의 기억이 문득문득 솟아오르고, 여전히 불면증에 시달리고, 텅빈 마음의 구멍을 안고 살아가면서 말수도 점점 줄어들고, 이웃 아이들의 참담한 형편을 마음 찢어지는 표정으로 바라보면서도 마을의 이웃들이 하듯이 적당히 모른척 하면서 크리스마스에 쓸 비용을 걱정하는 아내의 일상에도 적당히 맞춰주면서 살아내고 있었다. 그렇게 아이들을 대학에 보내고, 노후 준비를 하면서, 크게 걱정할 것 없다는 답을 하는 아내를 텅빈 표정으로 바라 보면서 살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마을을 지배하는(어디나 존재하는) 권력으로 오는 동조와 묵인의 압력(크리스마스 선물로 포장된, 아내에게 꼭 필요한 돈봉투)에도 맞서지 않고 받아들인다. 그렇지만 여기까지가 그의 ‘한계’였다. 결국 그는 손을 내밀어 아이의 손을 잡아주었다. 마을 주민 거의 모두가 가는 길에서 내려왔다. 아내와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결코 사소할 수 없는 선택을 하면서 그는 그 사회에서 앞으로 어떤 존재로 살아가게 될까. 주변에 대해 손내밀기가 결코 사소하거나 쉬운 일이 아님을 우리는 현실에서 매일매일 그야말로 뼈저리게 절감한다. 누구는 ‘용기있는 선택’이라고 표현할 수 있지만, 나는 그 표현을 유보한다. 빌 펄롱에게는 굳이 용기가 아니라 마음의 움직임에 따른 자연스러운 행보였다. 마음먹고 용기를 내자라고 해서 나온 행위가 아니라, 그저 그래야 할 것 같아서 아이의 손을 잡은 것이다. 오랫동안 마음속에 갇혀 굳어져 가던 그 무엇인가를 꺼내는 일이다.
‘멋진 세계’의 미카미 마사오의 어린 시절, 범죄, 그리고 출소 이후의 과정은 이미 많은 문학과 영화 등에서 새삼스러운 소재가 아니다. 그가 그 세계로 돌아가지 않도록 주변 사람들이 그를 감싼다. 그 좋은 이웃들은 그에게 ‘우리를 봐서라도 참으라고, 참아야 하느니라’고 따뜻한(!) 압력을 가한다. 참아야 복귀가 가능하다. 시민으로 들어올 수 있다. 그는 참아본다. 복지시설의 직원들이 장애 직원에게 폭력을 가하고, 폭력의 ‘합리적인’ 이유를 늘어놓을 때도 마음으로는 대걸레를 집어들어 그들을 때려눕혔지만, 참았다. 태풍 속에서 건네받은 코스모스 꽃다발은 그에게 숨쉬기 힘든 고통을 안겼고, 참아내다가 결국 그는 시민이 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에게 하늘은 열려있지 않았고, 탁 트인 하늘에서 살고 싶었지만 그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모든 사람에게 하늘은 같은 크기가 아니다. 태어나 자라면서 활짝 열린 하늘이 눈 앞에 늘 보이는 사람도 있지만, 네모난 창 보다도 작은 하늘만 보고 살아야 하는 경우가 더 많다. 중등학교 시절 늘 들어야 했던 격언, ‘인내는 쓰지만 그 열매는 달다’. 어떤 인내이고, 누구의 인내, 무엇을 위한 인내를 말하는 것인지 토론해보는 수업이기를 바랬지만, 이해가 안되니 그냥 외워야 했다. 이제 학생들에게 토론을 권할 자리에 있지만, 토론하고 싶어하지 않는 표정 앞에서 막막해질 때가 있다. 마지막 장면, 카메라는 열려진 하늘을 비추고 있다. 감독은 미카미가 열린 하늘로 훨훨 날아가기를 바란 것일까.
<정치와 문화>라는 수업을 하면서 민주주의가, 정치가 제도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가, 어떤 마음(또는 관점)들인가를 생각해보자고 한다. 민주주의 사회의 구성원을 ‘시민’이라고 부른다면, 누가 시민인가, 어떤 시민인가, 시민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등을 학생들과 수년째 토론하고 있다. 수업 자료 중 하나가 파커 J. 파머의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왜 민주주의에서 마음이 중요한가』이다. 원제목은 Healing the Heart of Democracy이다. 마음이라는 개념으로 민주주의를 논의해보려는 시도는 정치학자들 사이에서 주목받기 어렵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사회구성원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체제이자 가치이다. 사람, ‘시민’이 문제이고, 핵심이다. 책의 2장(저절로 시민이 된 사람의 고백)에서 저자는 시민의 조건(정치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환경 등)을 갖추고 태어나 저절로 시민이 되어있는 스스로를 성찰한다. 시민이 되기 위한 시험도, 위험에도 노출된 적이 없었다. 시민이 되는 길의 험난한 경로를 생각해보지 못했다고 반성하는 흔하지 않은 책이다. 민주주의는 선거, 정당, 의회 그리고 사법부가 있다고 당연히 작동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구성원, 즉 시민이 민주주의의 토대가 되어야 한다. 시민이 되기 위한 정치적, 사회적, 법적 조건부터 만들어가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사람들에게 시민이 되는 길은 자동으로 열려있는 것이 아니다. 시민으로서의 덕목 -그것을 공중도덕이라 부르든, 시민윤리라고 부르든- 역시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다. 시민은 일상의 경험과 환경을 통해 사회가 같이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그 과정은 바람직한 결과에 닿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기 힘들다는 것을 지금까지의 인류의 역사가 보여주고 있다.
주변에서 일상화되어 있는 온갖 유형의 폭력에 대응한 빌 펄롱의 손 내밀기는 하나의 돌파구로서 절절한 울림으로 남는다. 시민으로 살아남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참아냈지만 단 열매는 구경도 못해보는 많은 다른 미카오 마사미에게도 언젠가는 멋진 세계가 활짝 열리는 날이 올까. 시민으로 살아남기... 시민의 범주는 너무 혼탁하고 복잡해졌고, 모두에게 ‘살아남기’만 남은 이 시절. 두 영화의 반향에 새삼 마음이 기운다. (2026. 01, 또문브런치에서 읽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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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문소식 12월>을 읽고-동인지, 이어쓰기의 시작
조한혜정(또 하나의 문화 동인)
월간 <또문 소식> 12월호가 왔다. 흥미로운 에세이도 여럿 딸려 왔다. 읽으면서 내 마음에 들어온 단어들을 꿰며 오랜만에 또문 식 수다를 좀 떨어보려 한다.
어쩔 수가 없나?
1983년 동안 모임 창립 때부터 함께한 반하라(박혜란)가 프랑스에서 보내온 글을 보하니 왠지 올해는 또문에 반가운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는 ‘운동권’이 되지 않으면 맹비난을 받던 대학 분위기를 아랑곳하지 않고 씩씩하게 또문 활동에 참여했던 학부생 막내 동인이었다. 동인지 창간호에 <애정의 조건>에 대한 영화평을 썼던 것 같은데 이번엔 앤더슨(PTA) 감독의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을 보고 영화에 드러난 주류 백인 남성의 흑인 여성을 대해온 ‘향성’에 대한 이야기를 가져왔다. 나 역시 임신한 여주인공을 관능 덩어리로 그려낸 장면에서 기가 막혔다. 정말 어쩔 수가 없구나. 반하라는 영화의 실제 모델인 블랙팬서 당수 일레인 브라운은 당을 떠나 독자 조직을 만들었고 여든한 살이 되는 지금도 흑인 여성들과 청소년들을 위한 주거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올해는 이런 이야기가 들어있는 그녀의 독특하고 해박한 영화평을 자주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데이비드 린치의 <블루 벨벳>(1986)을 보고 심한 악몽에 시달렸었다. 네오 누아르 영화는 이제 끊으려 했는데 하도 난리들을 쳐서 박찬욱의 <어쩔 수가 없다>를 보고 말았다. 현실을 너무나 잘 보여주었다거나 폭력 미학의 거장이라거나 미장센에 대한 찬사가 쏟아지고 있는데, 나는 로마제국의 거대한 콜로세움에서 벌어지던 검투사의 난투극을 보고 온 듯했다. 이번 소식지에 실린 김영옥의 ‘말년성 개념을 지극히 범속하게 만들기“라는 글에는 ‘위대한 남성 단독자 주체’라는 말이 나오는데 누아르 계 영화감독들이야말로 ‘위대한 남성 단독자 주체’의 극치 아닐까? 언제까지 이 폭력적 파괴 서사를 박수치며 봐야 하는 걸까?
또문 44년
<또 하나의 문화>는 군부독재의 탄압이 거세지던 시대, 바로 그 ‘위대한 남성 단독자’ 주체들의 싸움이 절정을 향해 가고 있을 때 태어났다. 동인들은, 특히 고정희 시인은 밤새 시를 쓰고 낮에는 ‘가투’에 나갔고 나는 교수 성명서를 작성하고 잡혀간 학생들의 선처를 부탁하러 검사를 만나러 다녔다. 자신을 회색 인간이라고 부르면서 자살한 학생이 생겨났고 성폭력 사건은 묵인 방조 되던 시대였다. “그날이 오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되리라는 종말론적 정동, ‘무기력한 대화주의’라며 소통의 힘을 부정하는 힘의 논리, 거대한 구원 서사가 압도하던 때였다. 또 하나의 문화는 그 세계에서 한발 비켜나서 ‘폭력 이후’의 세상에 관한 이야기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또문 동인들은 ’탈주자‘들이었다.
동인들은 조용히, 별일 아닌 듯 다른 이야기를 퍼트리기 시작했다. 대표도, 구원자도 될 의사가 없는 동인들은 각자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의 일을 하고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 골몰했다. 동인들은 ‘보편’과 ‘객관’을 위장한 거대서사를 멀리하고 ‘작게 쓰기’를 시도했다. 보편적 지식이 아니라 상황적 지식, 총체적 진실이 아니라 부분적 진실을 찾아 나섰다. “나는 이 위치에서 이 몸으로 이만큼만 말한다. 나의 이야기를 듣고 너의 이야기가 이어지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의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서로에게 말을 걸며 ’자율 공생‘의 서사를 써 내려갔다. 동인들의 수다는 편집회의를 거친 동인지로 출간되었다. 동인지는 독서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고 또문은 흑자를 내는 출판사도 갖게 되었다. 일본과 서구 페미니스트들의 부러움을 샀던 기억이 있다.
2000년 전후에 본격적인 신자유주의화가 진행되면서 돌풍이 불어닥치면서 모두가 뿔뿔이 흩어졌다. 동인지 마지막 호인 17호가 나간 것은 2003년, 또문 소모임도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았다. “부자 되세요” “성공하세요”라는 말을 대놓고 하는 시대가 왔고 여성들은 사회로 나가 돈을 벌고 사회적 성취를 이루고 꿈꾸던 결혼 생활을 완성하고 ‘자아실현’을 하느라 바빠졌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이 시대를 잘 그려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났고 이제 그들은 조금 놀라고 많이 지쳐서 ’집‘으로 돌아오고 있다. 그녀들은 이제 더 이상 남자 세상을 기웃거리지 않는다. 가수 화사가 화사하게 ‘굿 굿바이’를 불렀듯 슬기롭게 이별을 고하는 법을 익히며 그 판을 떠나가고 있다.
‘페미니즘’이라는 기표가 ‘얼음땡’ 놀이의 ‘얼음!’이 되어버렸다는 정희진의 <여성주의의 쓸모> 칼럼을 읽으며, 또 높은 수준의 시민의식을 자랑하는 스웨덴의 주요 정당 당 대표 하트 여사가 혐오와 위협으로 더 이상 민주주의가 작동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판단에 취임 5개월 만에 사임했다는 소식을 접하며 적대와 혐오의 시대를 전환하려면 특별한 상상력과 마술적 운동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동네 비건 책방 주인 문문
우리 동네 비건 책방 주인 문문은 이른바 4B(4非) 세대로 ‘결혼’, ‘연애’, ‘성’, ‘출산’에는 관심이 없다. (*문문은 ‘4비’는 한국 여성 운동에 관심을 가진 해외 언론이나 학계에서나 사용하지, 한국에서는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도 구태여 그렇게 정의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개념으로서 이 단어는 상당히 많은 것을 말해준다.) 여자들과의 연애도 가능하고 비인간 존재들과의 친밀한 돌봄이면 족하다. 파국 이후의 시간을 살아가는 우울감으로 자주 허우적대는 나를 보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은 고양이도 안 키우고 덕질도 안 하잖아요? 어떡해요!” 그와 그의 친구들은 고양이를 키우는 느슨한 가족이며 덕질을 하면서 유쾌한 시간을 보낸다.
틈나면 다큐 제작도 하는 재주꾼 문문은 수시로 책방 북토크를 진행하면서 사람들을 두루두루 연결하고 동네 인문학 수준을 높여주는 반장 역할도 한다. 계엄령 사태 때 문문과 친구들은 여의도로 달려갔지만 그렇다고 국가에 대한 기대는 없다. 여성들에게 출산하라고 윽박지르고 교재 살인자도 제대로 처벌하지 않는 국가를 누가 믿냐고 반문한다. 이들은 폭력에 맞서기보다 조용히 그 회로에서 이탈 중이다. 브라이도티가 말한 “거리두기 distancing 말려들지 않기 disengaging 독 빼기 ditoxing”를 실천 중이다.
이번 소식지에 김은실은 <은중과 상연> 드라마는 결국 여성들 간의 관계를 다룬 이야기이며 여자가 여자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이야기라고 말한다. “남자를 의식하지 않고 말하기” “여자로 말하기 몸으로 글쓰기”는 그간 또문이 가장 신나게 해왔던 활동이다. 제2의 여성해방의 물결은 ‘성차가 없다’라고 선언하면서 시작했지만, 사회생물학적 성차는 있고 그 외 많은 차이가 있다. 여기서 나는 인류가 지구상에서 존속한다면 그것은 바로 폭력적 세상으로부터 거리두기의 정치를 시작한 4B 세대 덕분일 것이라고 미리 말하고 싶다.
집으로
4B 운동은 연애 거부가 아니라 폭력적 친밀성의 거부이며 집단적 거리두기의 정치라 생각한다. 이 운동은 폭력적 지배구조로부터의 이탈을 이야기한다. ‘하지 않음의 정치‘ ‘비재생산적 연대’는 ‘일정한 분리주의’와 ‘사회적 모성’을 이야기해 온 또문과 닮아 있다. 차이가 있다면 또문은 1980년대 여자들이 가정을 벗어나 대대적으로, 사회로 진출할 시점에 낙관적 미래를 그리며 지식인 중심으로 시작했다면 4B 세대 운동은 남성 중심 사회에 직접 뛰어든 여자들이 남성적 폭력의 구조를 경험하고 돌아가는 운동이다.
어디로 돌아가나? “집으로 돌아간다.” 해러웨이의 표현을 빌리면 그 ‘집’은 남성적인 기원(origin)이 아니라 여성적 얽힘의 장소이다. 그 집은 인간·비인간·기술·동물·기계·미생물이 얽혀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도망칠 수 없고 도망쳐서도 안 되는 관계망이다. “집으로 돌아간다”라는 말은 이 얽힘에서 벗어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그 얽힘의 끊어버린 가부장제에 ‘말려들지 않을 것을 천명하는 행동이다. 이 ‘집’은 폭력의 흔적이 남아 있고 착취와 불균형이 구조화되어 있으며 인간의 행위로 훼손된 장소일 가능성이 높지만 우리는 그 세계를 버리지 않고, 그 안에서 다른 종들과 함께 다시 살아갈 방법을 찾아간다.
조만간 나는 문문과 동네 책방에서 곧 또문 동인지를 읽고 이어쓰기를 하는 모임을 해볼 것이다. 전국 곳곳 책방에서 또문 읽기를 시작하는 꿈을 꾼다. 전국 지부를 내자고 했을 때 “또문은 지부 같은 것은 안 차린다, 세 명만 모이면 자신들의 또 하나의 문화를 만드시라”라고 답을 드리곤 했다. 그런데 이제는 전국에 있는 책방을 지부로 삼아 동인지 읽기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는 페미니스트 영화의 고전인 마르린 고리스의 <안토니아스 라인> 영화를 볼 것이고 폭력 속에서도 얽혀 살아가는 삶을 섬세하게 그려준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 <우리 집> 그리고 <세계의 주인>도 볼 것이다. 윤가은 감독이 동료 영화감독들과 함께 한 GV를 우연히 봤는데 (윤가은, 김초희, 윤단비, 이옥섭, 임선애 감독) | 관객과의 대화 | 20251026) 그 감독들은 어려운 팬데믹의 시간을 함께하면서 서로를 구했던 관계인 것 같았다. 그들이 나눈 우정과 환대의 시간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또문 생각이 났다. 돌려가며 원고를 읽던 즐거운 편집회의, 언제나 내 글을 읽고 조언을 주고 수정·보완해 주던 선배와 친구들이 그리워서 울었다. 우리의 오래된 동인 정진경과 작년에 우리 곁을 떠난 정병호가 밤을 지새워도 좋은 편집회의 장소 <담소재>를 마련해 두었다니 조만간 노구를 이끌고 육지 나들이도 해볼까 한다, 혹시라도 전국 책방에서 보내온 글들로 또 하나의 문화 18호가 나올지 누가 아나? (2026. 01, 또문브런치에서 읽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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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동정 : 유나, 세나, 록의 제주 어린이캠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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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만에 제주에서 재회한 또또와 노마 세 분이 일을 벌였다고 소식을 전해왔어요. 세 분이 어쩌다 이런 기획을 했는지, 세 분에게 또문 어린이캠프는 어떤 것이었는지 자세히 알고 싶으시면 시작부터 준비과정까지 자세히 기록된 글을 읽어주세요. 정말 자세히 쓰여 있기 때문에 전문은 브런치에서 남겨두었습니다. 정말 반갑고 즐거우실 거예요. (또문브런치에서 전문읽기)아래에는 어린이캠프 소개글과 후원계좌만 남겨두었어요. 파일럿 프로젝트로 진행하는 것이어서 참가인원은 다 찼다고 해요. 이번에 해보고 '육지'의 어린이들도 제주로 초대할 수 있고, 또 장애/비장애 통합 어린이캠프로의 운영도 예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후원도 해주시고, 캠프 기간에 어린이들 옆으로 살짝 응원방문 해보셔도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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콤,마 Com,Ma 어린이 캠프
신나는 어린이들의 생활기술 예술놀이 언플러그드 캠프
콤,마 Com,Ma는 어린이들이 생활 속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며, 사람과 자연이 함께 공존하는 방식을 고민하는 친환경·언플러그드 어린이 캠프입니다. 어린이들의 하루는 누군가 대신 결정해 주는 일정으로 가득합니다. 콤마캠프는 그 하루 속에 어린이 스스로 선택하고 만들어 가는 시간을 마련합니다.
콤마는 자기표현 활동으로 어린이들을 만나 온 지역의 문화활동가들이 어린이들의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놀이, 학습, 표현, 공존의 문화를 만들고자 양육자들과 함께 기획하고 진행하는 캠프입니다.
콤마는 화면보다 몸으로, 정답보다 대화로 하루를 채워가며 자율적인 일상의 연습장이 되려 합니다. 디지털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요리, 목공, 미술 등 다양한 감각을 사용한 활동들을 통해 자신만의 생활기술과 아이디어를 실현해 봅니다. 자연의 재료를 수집하거나 버려진 물건들을 업사이클링하며 환경과 소비에 대한 사회적 감수성을 키우고, 모두의 다양성을 포용하는 놀이문화를 함께 실험합니다.
어린이, 양육자, 강사, 스태프 등 캠프 구성원들이 서로를 존중하는 수평적 관계 속에서 피어나는 공동체 정서와, 누군가의 일방적 돌봄이나 훈육이 아닌 모두의 협력과 교류 활동을 통한 상호 존중의 ‘관계 맺기’를 경험해 봅니다.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생활의 주체로 참여하며, 타인과 환경에 대한 책임 있는 관계 맺기를 경험합니다.
후원 안내 또문어린이캠프의 문화와 추억을 계승한 콤,마 Com,Ma 캠프는 어린이들이 일상 속에서 자율성과 감수성을 키울 수 있도록 많은 손길과 연대로 만들어집니다. 후원계좌: 301-0363-5873-71(농협 키위새유니온)
인스타그램: Comma.Commuar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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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가기
꽤 긴 내용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챗GPT라는게 만들어졌다고 소식 보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일상환경의 변화가 급격합니다. 작년에는 SKY대학 모두에서 AI를 이용한 컨닝이 발생하여 많은 사람들을 당황하게 했는데, 읽고 쓰고 나누는 일들에도 AI의존도가 크게 높아졌습니다. 이제 두 사람의 대화에 AI가 끼어드는 일도 생길까요?
오랜만에 재작년에 만들어졌던 '수제' 애니메이션이 연말 피드에 뜨길래 공유해봅니다. 디즈니 출신인 이 감독은 이 애니메이션을 위해서 11,000장의 그림을 사용했다고 해요.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답니다. "약 18년 전에 암으로 아내를 잃었습니다. 우리는 20년 동안 함께했고, 저는 매우 힘든 시기를 겪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제가 경험했던 외로움과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감정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 단편 소설의 아이디어는 어느 날 아침 샤워를 하다가 떠올랐습니다. 제 모든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샤워에서 나오거든요! 그래서 다음 날 닉(제작자)에게 제안했고, 그는 좋아했습니다. 거의 9년 전의 일입니다!" 11분 러닝타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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