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문소식 2024. 6.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 |
|
|
아직 6월 전이지만, 오늘의 북토크에 대한 리마인더 겸, 다음 주말이면 진행된 고정희 추모주간에 대한 소식을 전하려고 약간 일찍 또문소식을 보냅니다. 위 사진(촬영 김현미)은 지난 11일의 조은선생님 댁으로의 봄나들이의 한 장면인데요, 비가 많이 왔고, 많은 분들이 참석하지 못했지만, '우중산책'과 함께 또문 40주년 기념에 대한 아이디어 회의를 매우 진지하게 나눌 수 있었답니다. 40주년 프로젝트와 관련된 제안들은 정리하여 곧 다시 공유하도록 할게요. 🐝 5월 26일, 오늘 오후 5-7시 정은정 선생님의 책 <밥은 먹고다니냐는 말>, 북토크가 진행됩니다. 온오프병행으로 진행되니, 편한 방법으로 참석해주세요. 미처 신청하지 못하셨더라도 문득 방문하셔도 좋겠고요, 줌으로 참여하시기를 원하는 분께서는 https://forms.gle/983LCLG6Dnt1nm9v8 에 신청기록을 남겨주세요. 오후 4시에 마지막으로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
|
|
2024년 고정희 문화제
올해도 역시 해남의 고정희기념사업회에서는 고정희 시인의 기일에 맞춰 고정희 문화제를 개최합니다. 청소년과 함께 하는 프로그램은 이미 5월 22일부터 시작하였고, 시화전과 북토크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문화제의 마지막은 7월 3일이 되어야 끝나는 대장정의 프로젝트입니다.
추모제는 6월 8일 토요일 오전 10시에 고정희시인의 묘소에서 진행된다고 하니, 참고해주세요. |
|
|
고정희와 트랜스내셔널 노래운동
올해 고정희 문화제에는 공식적인 참여를 하지 않게 되어서 아쉬운 중에, 정혜진 동인이 최근에 쓴 논문을 공유해주셔서 브런치에 올려두었습니다. 원본논문파일뿐 아니라, 또문동인들을 위해 논문을 요약하여 다시 써주셨어요.
아카이브 작업중에 마침 어린이캠프에서 제작했던 낡은 카세트 테이프를 찾았던 참이었는데, 좋은 해석과 설명을 남겨주신 정혜진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초국적 노래운동'으로 연결되는 흥미로운 내용입니다.
덧) 아카이브 작업중에는 여성문학에 대해 치열하고도 유쾌한 토론을 했던 86년의 월례논단도 전자파일로 만들었는데, 40년전의 고정희, 박완서, 김혜순 등등 생생한 목소리들이 반가웠습니다. 정혜진선생님도 상상만 하던 고정희 시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 좋다고 하셨는데, 여러분도 궁금하시다면 또문으로 연락주세요.😉 아카이브 작업에 시간 허락하시는 만큼 참여해주신다면 더욱 기쁘겠습니다. ➡️ 브런치에서 읽기 |
|
|
작년 이맘때 청운동 공동주택에서 수다회를 진행했던 일 기억하시나요? 그때 발제자이자, 공동주택의 거주자들이 꼽은 벤치마킹 사례 중에는 '오늘공동체'가 있었지요. 도봉산 안자락에 집을 짓고 그야말로 '한 집에 20여가구, 51명의 부족이 함께 사는 이야기였습니다. 특히, '함께 벌고 함께 쓰면서' 새로운 경험과 실험의 생활을 해내고 있는 중입니다. ( 공동체로 살면서 돈 욕심이 커져가요: 협동조합주택 오늘공동체 이야기) |
|
|
청운동 공동주택의 발표도, 오늘공동체의 기사도 조한선생님께서 추천해주신 내용들입니다. 마침 조한선생님의 '절친' 우에노 치즈코 선생님이 중심이 된 방송( EBS다큐프라임 '내 마지막 집은 어디인가' 2부, 집에서 죽겠습니다')이 있어서 더욱, '마지막 집'에 대한 생각이 나셨나 봅니다. 우에노선생님은 '고독사'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에 대하여, '집에서 혼자 죽는 것이 행복'이라는 의견을 말씀하고 계시네요. 안토니아처럼 '가족과 둘러쌓여'만이 아니라, '혼자'라는 것 또한 이 이야기의 핵심포인트! 지난 11월 도쿄에서 열렸던 심포지엄에서 우에노선생님과 나란히 앉아계신 조한선생님 모습도 한 컷 등장하고요. 우리 사회에서도 최근 헌재에서 '조력사망'에 대해서 다루기 시작했고, '공영장례'에 대한 논의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게 됐습니다. 네덜란드 총리 부부가 지난 2월 동반 존엄사를 선택했다던가 하는 소식도 있었고, 영화 <소풍>이나, <플랜75>도 화제였지만, 나이듬, 늙음과 죽음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들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다큐프라임의 2부 집에서 죽겠습니다의 요약영상 '내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대하여'는 아래 미리보기 영상을 붙여둡니다. |
|
|
이번 주에는 신경림 시인의 별세소식도 많이 회자된 소식 중 하나였습니다. 기사와 시 들을 읽다가, 문득 그 시절의 '가난'의 위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지금의 우리 사회에는 '가난'이 자리할 위치조차 없어져버렸다는 생각. 일전에 고병권선생님의 글에서 '가난'이란 말은 '간난'(艱難)에서 온 말이고, '진흙탕에 빠진 새'를 의미한다고 하는 것을 읽었는데, 이제 '가난'은 그저 돈이 없는 '빈곤'일 뿐이고 점점 더 비참할 뿐이며 나아가서는 혐오의 대상이 되어버렸지 않은가 씁쓸한 기분이 들었고요. 그래서인지, '마지막 집', '마지막 순간'에 대한 생각이 꽤 위안이 되었습니다.
<증발하고 싶은 여자들> 북토크에 많은 신청 바랍니다. 오늘은 '밥은 먹고다니냐는 말'을 되뇌어 보고요... 😅 오늘 또문소식은 신경림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마칩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가난한 사랑노래
신경림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을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