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문소식 2026-04🎗️: 기준점을 다시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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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에는 4.3사건을 시작으로 오늘 416, 4.19와 같은 역사적인 '기억의 날'들이 많습니다. 많은 분들이 모르실 수도 있지만 420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은 매해 전국단위의 장애계 시위가 있는 날이기도 합니다. 4월 26일 지구의 날도 빼놓으면 섭섭하겠지요? 좋아하고 존경하는 진은영 시인과 이수지 작가가 협업하여 세월호참사를 기억하는 <오늘은 나의 생일이야>를 출간했다는 소식을 들으며, 여전히 끝나지 않고 있는 계엄 이후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이란전쟁으로 이어지는 혼란 속에서도 누군가는 '기억'을 놓지않고 '(해야) 할 일'을 지속하고 있다는 생각에 안도하게 됩니다. 진은영 시인의 말처럼 '우리가 무엇보다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참혹한 사건이 아니라 아이들이라는 사실'이라는 아주 기본적인 생각에 공감하면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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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두 가지 뉴스를 살펴보고 있었어요. 하나는 이스라엘의 반인권적 행위를 규탄하는 대통령의 SNS글입니다. 선거를 앞두고 외교참사라느니 이러저러한 흉한 반응을 이끌어내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궁지에 몰리는 것 같은 네타냐후를 보면서 분란은 사그라드는 것 같습니다. 또 하나는 대전 오월드에서 탈출한 2세 늑대 '늑구'이야기였습니다. 사살하지 말고 생포하자는, 늑구를 응원하는 목소리에 더 힘이 실리고, 이제는 이미 산속에서 실종(?)상태인 늑구가 산에서 계속 살아갈 방도를 찾아주자는 '리와일딩'(rewilding)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두 뉴스를 보면서 우리 사회가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점이 변화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많이 달라졌냐는 건 확언할 수 없지만, 적어도 이번만큼은 시민 눈높이와 별다르지 않은 대통령의 생각을 들을 수 있었고, 대전 시민의 안전뿐 아니라 늑구에 대한 응원을 함께 말하고 있는데도, 이전처럼 온통 비난과 혐오의 반응만 난무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아서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만을 바랍니다.
오늘 또문소식은 아래 순서로 쓰여졌습니다.
- 또문북토크 (4월 19일)
- 또문독서회 (4-6월)
- 지금 여기에 : 김현미, "빛의 혁명 이후, 우리가 미국에서 배우는 말들"
- 함께 나눠요 : 이지은, "랄 살람 알레이쿰"
정혜진, "‘여성의 명예회복’을 넘어: 신자유주의 색출정치와 ‘여성 프락치’의 문학적 재현 ― 안이희옥, 『안젤라』(2021)에 대한 소고"
- 동인동정 : 김신효정의 공유소식 / 조한혜정의 번개모임 제안(4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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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영, <쇳돌>지난 번외편 <또문소식>에서 알려드렸던 것처럼, 이라영 <쇳돌 - 사라지는 세계, 사라지는 노동, 사라지는 목소리를 채굴하기>를 만납니다. 4월 19일(일요일) 오후 5-7시(현장참가는 8시 종료) 온오프병행하여 진행됩니다. 아직 책을 읽지 못하셨다고 해도, 너무나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진행될 거라고 감히 초대드려 봅니다. 참가신청: https://forms.gle/t7BDUs9ZkuevQndp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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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문화 소모임, 또문독서회는 진행중 (회원모집은 언제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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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8월 <돌봄의 사회학>으로 시작한 또문독서회가 읽기 시작한 새 책은 클라우스 테벨라이트의 <남성판타지>입니다. 1464쪽이나 되는 또 하나의 '벽돌책'입니다. 그래도 한글읽기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우리 인턴 메이시가 영어원서가 있어서 너무 좋다며 활짝 밝은 얼굴을 해주어 참 다행이다 생각하기도 했답니다. 6월 1일까지 천천히 함께 읽어나가려고 해요. 아직도 독서회는 열려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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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랑의 노래 ‘우리의 방’(Woori’s ro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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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에
- 김현미 동인께서 뉴욕 포스트의 최근 기사를 읽어주셨습니다. '빛의 혁명'아래 돋보였던 한국의 2030세대 여성들의 정치적 각성과 다른 분위기에서 퇴행적 선망을 경계하는 글. 여러 생각이 많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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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혁명 이후, 우리가 미국에서 배우는 말들
김현미(또 하나의 문화 동인,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석기 시대로 만들어버리겠다.” “지옥을 보여주겠다.”
이러한 협박의 언어는 더 이상 광신적 종교지도자의 전유물이 아니다. 선거로 선출된 대통령의 입에서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발화가 되었다. 미국처럼 민주주의 제도가 공고하다고 여겨졌던 사회에서도, 민주주의의 훼손과 퇴행은 놀랄 만큼 빠르게 위로부터 진행되고 있다. 얼마 전 보스턴에서 만난 한 연구자는 트럼프 재임 이후 이란 전쟁에 이르기까지 거의 매주 주말마다 반대 집회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그는 거리에서 “왕은 물러가라”고 외쳤지만, 동시에 쉽게 떨쳐낼 수 없는 패배감을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결국 임기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느꼈다는 것이다. 이 말은 제도 정치에 대한 무력감이 어떻게 개인의 감정으로 내면화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미국 시민들은 전국적으로 치열한 반트럼프 시위를 이어가고 있지만, 의회의 승인 없이 전쟁을 일으킨 대통령에 대해 ‘탄핵’을 공공연히 거론하지는 못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처음부터 응원봉 시위로 평화롭고도 열정적으로 탄핵 국면을 열어갔던 한국의 20–30대 여성들의 정치성은 외국인들에게 놀라움과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그렇다면 왜 미국 사회에서는 전쟁에 대한 감각이 이토록 희미할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걸프전,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 등 수많은 전쟁에 개입해 왔고, 크고 작은 군사적 개입만 보더라도 100회를 훌쩍 넘는다. 그럼에도 많은 시민들은 이를 자신의 일상적 현실로 체감하지 않는다. 전쟁이 언제나 ‘평화’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개입으로 정당화되어 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전쟁의 물리적·정서적 비용이 미국 사회 내부에 축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전쟁은 미국 영토 밖에서 수행되었고, 살상과 파괴, 그리고 막대한 비용은 외부로 전가되었다. 전쟁의 흔적은 타자의 공간에 남고, 미국 사회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거리에서 이를 관리해왔다. 전쟁이 일어나도 미국의 군산복합체는 낡은 무기를 소모하고 새로운 무기를 개발하는 순환을 통해 거대 이윤을 창출해왔다. 전쟁은 파괴이면서 동시에 축적의 조건이 되는 역설적 구조를 이루는 것이다. 미국 사회의 전쟁 불감증은 트럼프 같은 괴물을 탄생시키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최근 접한 한 기사(New York Post: Seoul women: Koreans learn English using Karoline Leavitt’s White House briefing, April 4, 2026)는 또 다른 차원의 씁쓸함을 남긴다. 한국의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백악관 대변인 캐롤라인 레빗의 브리핑 영상이 영어 학습 콘텐츠로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이다. 발음이 명확하고 태도가 자신감 있어 보인다는 이유다. 물론 젊은 여성 정치인의 성공적인 이미지, 혹은 한국 방문 당시 보여준 친근한 제스처가 호감을 불러일으킬 수는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가 반복하는 언어와 정치적 메시지다. 거칠고 공격적이며, 때로는 무지한 권력의 언어를 그대로 재생산하는 발화를 ‘배우고 싶은 영어’로 소비하는 현상은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여성의 목소리를 통해 다시 유통되는 폭력의 언어이자, 우리가 힘겹게 만들어온 정치적 감수성을 되돌리는 퇴행적 선망이기 때문이다. (2026. 04, 또문브런치에서 읽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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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나눠요
- 주로 한국소설을 공부하고 있다고 자기소개를 하시는 이지은 선생님은 또문대학 <'위안부' 더 많은 논쟁을 할 책임>의 강사로도 참여하고 계신 공동저자 중 한 분이세요. 이번엔 아룬다티 로이의 책 <지복의 성자>를 중심으로 이란전쟁과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 또문의 고정희 연구자 정혜진 박사는 올해 초에 논문을 한 편 또 쓰셨는데요, 그 중에서도 주요한 언급은 안이희옥 동인의 책 <안젤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덕분에 갑자기 다시 뒤적이게 되는 책, <안젤라>와 여성의 회복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논문을 수정해서 보내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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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 살람 알레이쿰
이지은(또문대학 강사,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선임연구원)
지난 2월 이란에 대한 이스라엘의 선제타격이 있은 후 미국이 이란의 독재자 알리 하메네이를 제거함으로써 ‘미국/이스라엘-이란’의 전쟁이 본격화되었다. 현재 이란은 중동 지역 미군부대를 폭격하고,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면서 맞서고 있다. 전쟁은 그 자체로 국경을 재편하는 충돌이자, 담론 지형을 재구성하는 사건이다. 전쟁을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는 익숙한 프레임 외에 이번 전쟁에는 이란 여성의 얼굴이 진영을 선전하는 얼굴로 자주 등장했다. 하메네이 사망 직후 쏟아진 숏폼에서 이란 여성들은 한편에서는 이슬람 전통 복장을 한 채 자국의 통치자를 잃은 슬픔에 오열하고 있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자유로운 복장을 하고 그간 히잡 착용을 강제해 왔던 독재자의 죽음에 기뻐하며 춤을 추고 있었다. 이란에서는 히잡 의무 착용에 대한 반대 시위가 계속되고 있었고, 이란 정권은 시위자들을 폭력적으로 진압해 왔다. 2022년엔 히잡의 ‘부적절한’ 착용으로 체포되었다가 경찰의 폭력에 의해 사망한 마흐사 아미니를 추모하며 대규모 반정권 시위가 일어나기도 했다. 젊은 이란 여성들이 기뻐하는 영상은 이러한 맥락 위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란 전쟁의 부당성/정당성을 선전하는 이분법적인 담론구도가 ‘이란 여성의 얼굴’을 빠르게 포획했다는 점이다. 하메네이는 여성 인권을 억압했을 뿐 아니라, 무수한 자국민을 학살한 독재정권의 집권자였다. 심판 받아 마땅한 대상임에는 틀림 없지만, 그것이 이란 민중이 아니라 강력한 군사력을 앞세운 미국-이스라엘 제국에 의해 이루어졌을 때엔 또 다른 문제를 제기한다. 미국-이스라엘이 구축하는 패권적 세계 질서가 ‘정의’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기 때문이다. 이란 여성은 자국의 부정한 권력과 제국의 침략 전쟁 사이에 놓여 있고, 제국의 침략에 항의하는 여성의 얼굴은 독재 정권에 대한 옹호로, 독재자의 사망에 기뻐하는 여성의 얼굴은 미국 패권주의에 대한 옹호로 빠르게 포획되고 있다.
아룬다티 로이의 『지복의 성자』는 히즈라 안줌을 중심으로 인도를 둘러싼 갈등, 예컨대, 양성 구조에 의해 배제되는 히즈라의 삶, 힌두-이슬람 종교 갈등, 인도-파키스탄 분쟁, 인도 공산주의자들의 지하 투쟁 등이 총체적으로 다루어진다. 소설의 용적이 넓은 만큼 해석의 갈래는 여러 길로 뻗어 있지만, 여기에서는 소설의 말미에 짧게 등장하는 인도 공산당의 여성 게릴라 레바티에 관해서만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레바티는 하위 계급 카스트 출신으로 어머니가 아버지로부터 끔찍한 학대를 당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다. 대학 입학 후 공산당 지하조직원이 되었고, 정부가 광산을 만들기 위해 숲의 원주민들을 폭력적으로 내쫓기 시작하자 공산당이 조직한 인민해방게릴라군(LPGA)의 일원이 된다. 레바티는 숲의 원주민을 위해 인도 경찰과 싸우고, 대학을 나온 엘리트로서 당의 여러 작전을 수행했다. 그러던 중 레바티는 경찰에 체포되었고, 그들에게 고문과 윤간을 당하게 된다. 그녀는 제대로 된 보호와 돌봄도 받지 못한 채 혼자서 성폭력으로 인해 생긴 아이를 숲에서 낳았고, 그 아이를 죽이려 했으나 차마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레바티는 인도의 온갖 사회운동가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던 잔타르만타르에 아이를 버렸고, 안줌의 동료들이 그 아이를 함께 키우기로 하면서 레바티의 편지가 전해졌다.
레바티가 경찰의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돌아왔을 때, 공산당 게릴라 조직은 그녀에게 어떠한 대책도 마련해 주지 못했다. 그들은 레바티가 “스스로 일어서야 한다”며 새로운 임무를 부여했다. 심지어 뒤늦게 임신 사실을 깨달았을 땐 “LPGA 여성은 아이를 갖는 게 금지되어 있으니 외부로 나가라”(555쪽)라며 레바티를 배제했다. 레바티는 혼자서 아이를 낳은 뒤에야 조직으로 돌아갈 수 있었고, 그때 당은 다시 레바티에게 “어린아이가 있어서 훌륭한 위장이 될 수 있”으니 새로운 임무를 맡으라 했다. 레바티는 당이 나쁜 짓을 많이 했다는 것을 안다. 죽여서는 안 될 사람들을 죽인 것도 안다. “당은 남자와 여자가 평등하다고 말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이해를 못”한다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레바티는 당을 떠날 수 없다고 말한다. 레바티는 잔타르만타르에서 많은 사회운동가들을 보았지만, 자신은 그들처럼 단식투쟁을 하며 살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숲에서는 날마다 경찰이 가난한 사람들을 죽이고 강간하고 불태”우기 때문이다.(556쪽) “외부에서는 당신 같은 사람들이 투쟁하고 쟁점들을” 다루지만, “숲 내부에는 우리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레바티는 남자와 여자가 평등하다는 것을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는 당으로 돌아간다. “내 총으로 살고, 내 총으로 죽기 위해”(557쪽)
레바티가 당으로 돌아간 것은 당의 이념에 전적으로 동의해서가 아니다. 그녀는 현실적인 조건 속에서 부득이 어떠한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레바티의 결단에 동의하지 않을 순 있지만, 그녀의 결단을 전적으로 당을 옹호하는 행위로 단순화할 수는 없다. 결과적으로 그녀가 당으로 돌아가기를 결단했다고 해서 당에 대한 그녀의 비판적 시각이 그 하나의 결과로 모두 소거되지 않는다. 레바티의 삶이 계속되었다면, 그녀는 다른 조건 속에서 다른 결단을 했을 것이다. 다른 조건을 만들어내기 위해 분투했을 것이다. 그녀의 고뇌가 있었기에 레바티가 죽고 나서라도 다음 세대의 여성들은 다른 결단의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성을 역사의 주체가 아니라 특정 정치 진영의 선전 도구로 대상화할 때, 결단 속에 내포된 고민과 분투는 손쉽게 소거되고 현실적 조건 속에서 내린 잠정적인 결단은 영속적인 것으로 박제되어 버린다.
‘이란 여성의 얼굴’을 한 전쟁 담론을 보면서 레바티의 편지를 떠올린 건 이 때문이다. 미국의 이란 지도부 제거 직후 쏟아진 영상 속에서 이란 여성들은 울거나 웃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역사적 주체로서 그녀들의 모든 표정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또한, 그것이 영속적인 하나의 표정이라고 할 수도 없다. 역사적 주체로서 그녀들은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 매번 숙고할 것이며, 다른 결단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울음 뒤의 해방감 혹은 웃음 뒤의 분노를 상상하기도 전에 그녀들의 얼굴을 재빨리 특정 진영의 선전 도구로 포획하는 담론은 그녀들을 하나의 표상으로 대상화해 버리고, 그녀들을 행동하고 변화하는 역사적 주체로 인식할 수 없게 한다. 그 결과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고, 역사적 주체는 남자의 얼굴을 하게 된다. 오늘날 알고리즘을 타고 지구 반대편에 도달한 이스라엘/미국-이란 전쟁의 얼굴은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편지는 레바티가 죽은 후에 전해진 것이었다. 안줌은 레바티의 평안을 빈다. “랄 살람 알레이쿰” 이는 “‘당신에게 평화가 깃들기를’이라는 의미의 이슬람교식 인사 ‘살람 알레이쿰’에 ‘붉은’ 이라는 뜻의 ‘랄’을 붙인 것”이다. 이슬람식 인사 앞에 붙어 있는 공산당의 상징 ‘랄’은 생경한 느낌을 준다. 아마 이물스러운 접속으로 벌어진 틈에는 모순을 껴안고 지금-여기의 최선으로서 게릴라 투쟁을 지속할 수밖에 없었던 레바티의 고뇌와 분노가 담겨있을 것이다. 안줌의 인사에 대해 서술자는 이러한 해설을 덧붙인다. “편지가 끝나자 안줌이 무심코 보인 본능적인 반응이었다. 그건 하나의 거대한 정치운동의 시작이 될 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그저 감동적인 설교를 들은 후에 덧붙이는 ‘아멘’처럼 내뱉은 말일 뿐이었다.”(557쪽) 그러나 이 말을 뒤집으면, 레바티의 고뇌에 대한 본능적인 반응은 거대한 정치운동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일 테다. 다시 말해, 거대한 정치운동은 레바티의 행위를 사후적으로 단순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결단에 이르기까지의 고뇌를 함께하는 데서 시작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란 여성들의 표정 뒤에 남겨진 고통과 분노에 대한 이해와 상상은 턱없이 부족하다. 그녀들은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 오늘도 숙고와 투쟁의 과정을 겪고 있을 것이다. 당연하게도 그것은 이란 여성들만의 몫이 아니다. 자국의 부정 권력과 제국의 침략 사이에서 오랜 시간을 투쟁해 온 모든 여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매순간 역사적 주체로서 결단하고 있는 이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랄 살람 알레이쿰” (2026. 04, 또문브런치에서 읽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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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명예회복’을 넘어: 신자유주의 색출정치와 ‘여성 프락치’의 문학적 재현 ― 안이희옥, 『안젤라』(2021)에 대한 소고
정혜진(또 하나의 문화 동인,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졸업)
* 이 글은 다음 논문의 일부 내용을 요약하고 수정한 것이다. 정혜진, 「1990년대 이후 ‘여성 프락치’의 문학적 재현과 ‘프락치 만들기’의 역사성」, 『상허학보』76, 상허학회, 2026.
* 안이희옥, 『안젤라』, 열린책들, 2021. 이하 같은 책의 직접인용은 괄호 안에 쪽수를 표기하는 것으로 대신함. * 각주는 단락별 후주로 넣음.
‘여성 프락치’ 위치의 역사화
2022년, 또문에서 안이희옥의 소설 『안젤라』(2021)에 대한 수다회가 열렸다. 나는 그 모임에 참여한 것이 계기가 되어 소설을 읽고 ‘여성 프락치’라는 화두를 만났다. 한국 변혁운동사에서 프락치의 위상과 젠더를 고찰하면서 운동권 여성의 삶에 다가가고 싶어졌다. ‘프락치’는 분파, 파벌을 의미하는 러시아어 ‘фракция’에서 비롯된 용어로, 한국에서는 주로 변혁운동을 와해하기 위해 국가가 첩자로 공작한 이들을 통칭하였다. 2기 진실화해위원회는 권위주의 정권기에 발생한 ‘대학생 강제징집 및 프락치 강요 공작 사건’을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으로서 규정하고 그 진실을 규명하기로 결정해, 2021년 5월부터 2024년 2월까지 조사를 진행하였다. 조사 결과, ‘프락치 강요 공작’은 박정희 정권기부터 지속된 ‘대학생 강제징집’을 토대로 하였으며, 특히 전두환 정권은 강제징집된 사병 또는 민간인에 대하여 녹화공작·선도업무로써 사상전향과 프락치 활동을 강요했고, 선도업무는 노태우 정권뿐 아니라 김영삼 정부(1996)에서도 지속되었음이 밝혀졌다. (각주1) 『안젤라』는 이러한 2기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 국면에서 ‘여성 프락치’의 문제를 재현하며 ‘프락치의 젠더’를 조명한 소설이다.
실제로 2기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에서 ‘여성 프락치’에 대한 내용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조사와 관련하여 최근 발표된 연구는 ‘프락치 강요 공작’이 징병제를 활용한 국가폭력으로서, 학원계·종교계·노동계를 대상으로 광범위하게 이루어졌으며 군의 차출과 활용에 제한되지 않고 정부의 여러 기관이 협력한 국가사업이었음을 논했다. (각주2) 여성이 대상이 된 일례도 조명했지만(각주3), 프락치 공작의 젠더 폭력적 성격은 간과되었다. 그러나 1989년에는 안기부가 여대생들을 대상으로 성고문 협박을 하며 프락치 공작을 했다는 폭로가 연세대, 이화여대 여대생들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이에 ‘여대생 프락치 공작’에 대한 기사가 다수 보도된 바 있다. 1989년 9월 26일자 『한겨레신문』 기사는 안기부가 “특히 여학생들을 집중적으로 연행해 군복을 입힌 뒤 2~4일 동안 공포 분위기 속에서 강압조사를 벌이고, 풀어준 뒤에도 공공연히 미행하며 협박해온 것”(각주4)을 보도하였다. 이때 여학생에 대한 안기부의 공작에 ‘군복’과 ‘성고문’이 활용된 것은 프락치 공작이 병역 제도를 넘어 ‘군사주의적 남성성의 상징체계’로서 작동한 젠더 폭력이기도 했음을 보여준다.
이는 제도적 차원 외에도 문화적·담론적 층위까지 포함하는 폭넓은 현상으로서의 ‘프락치 만들기’에 주목해야 함을 말해준다. 또한 ‘프락치 만들기’가 국가의 공작뿐 아니라 운동사회의 의심·단속·낙인과 아울러 수행되었다는 점이 조명될 필요가 있다. 엄청난 수의 프락치와 그 담론이 양산된 시대에 프락치에 대한 방어는 운동의 사활이 걸린 문제로 간주됐고, 프락치 운운은 운동사회 내부에서 반대 진영을 공격하는 전략으로도 활용되었다. 운동사회 내 성폭력을 고발하는 행위가 “프락치의 음해”(각주5)로 간주되기도 했다. 이는 ‘프락치’라는 범주가 운동사회를 규율하고 운동의 위기를 극복하며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문화적·담론적으로 재생산된 ‘위협’으로 기능하기도 했음을 말해준다. 이 같은 ‘프락치 만들기’의 젠더 구조를 고찰하는 과정에서, 나는 1990년대 이후 한국문학에서 ‘여성 프락치’에 대한 재현이 반복적으로 등장했으며 그것이 신자유주의 통치성을 내면화하거나 비판하는 방법이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러한 맥락에서 『안젤라』는 운동사회에서 여성 프락치의 위치를 역사화하고, 그로써 신자유주의 색출정치를 비판하며 운동권 여성의 명예회복 과제의 현재성을 드러냈다.
각주 1.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대학생 민주화운동 사건」, 『진실화해위원회 종합보고서 2020~2025 3권 인권침해 사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2025, 144~171쪽.
2. 강제징집 녹화·선도공작 진상규명위원회, 『진실·기억·책임: 강제징집과 프락치 강요 공작을 말하다』, 강제징집·프락치 강요 공작 진실규명 촉구를 위한 국회심포지엄 자료집, 2025.11.19.; 민병래, ‘강녹진’ 공동기획, 『파괴된 청춘: 강제징집과 프락치 강요 공작이 남긴 상처』, 원더박스, 2025, 207쪽. 3. 민병래, 위의 책, 228쪽.
4. 「안기부, 여대생에 프락치 강요」, 『한겨레신문』, 1989.09.26. 5. 전희경, 『오빠는 필요 없다—진보의 가부장제에 도전한 여자들 이야기』, 이매진, 2008, 167쪽.
운동권 여성의 행동양식과 명예회복의 과제
『안젤라』는 유신시대 학생운동에 참여했던 비혼 노년 여성이자 페미니스트인 ‘안젤라’의 삶을 통해, 운동권 여성에 대한 ‘프락치 의혹’의 현재성을 보여준다. 안젤라는 과거 학생운동의 경험으로 인해 평생 질병에 시달리면서도 운동을 지속한다. 변혁운동은 그에게 질병과 소송으로 계속되어, 그로 하여금 끊임없이 거리의 시위에 나서게 한다. 안젤라는 1970~1980년대 학생운동, 노동운동, 여성운동에 참여했으며, 긴급조치 위반으로 구금된 후 50년간 고문 후유증으로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 특히 1991년 강경대 열사 장례식에 찾아온 형사들로 인해 정신질환이 재발해 감시·미행·도청에 대한 불안과 피해의식에 시달리고 있다. 그는 긴급조치 9호 피해자 손해배상 청구 소송, 유신 헌법 위헌 소송, 통합진보당 해산 관련 명예훼손 소송에 참여 중이고, 한미 FTA 반대 농성,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운동, 촛불 항쟁 등 퇴직 후에도 수많은 집회들을 다니며 10여 년을 거리에서 보내면서 과거를 회상한다. 안젤라는 자신이 “평생 시국 일에 말려들고 다니”(18)는 이유를 유신시대의 기억과 관련짓는다. 자신을 병들게 만든 국가폭력과 싸우는 그에게 ‘장자연 사건’은 정인숙과 연결되고, IMF와 쌍용자동차 투쟁, 시간강사 서정민 박사의 사망 등은 1970~1990년대 운동권의 고문 후유증 및 운동 이후의 열악한 삶과 연결된다. 그녀의 과거는 학생운동 시절부터 함께해온 동료들과의 관계를 통해서도 지속되는데, 이때 중요한 것이 여성들의 ‘명예회복’의 과제이다. 이는 단지 운동권의 상징자본에 대한 요구가 아니라, 운동의 과정에서부터 운동 이후, 죽음의 순간까지 그녀들을 괴롭히는 ‘프락치 의혹’을 벗는 일을 의미한다.
안젤라는 대학 후배 ‘연화’가 암 투병 중이라는 연락을 받은 후, 그가 “프락치 같아서”(72) 병문안에 가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다른 후배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여기서 ‘프락치 같다’는 현재 시제는 프락치 의혹이 단지 과거의 일이 아님을 말해준다. 연화가 프락치로 의심되는 이유는 그녀가 졸업 후에 어용 연구소에서 근무했으며, 그의 아버지 또한 용역 일을 했기 때문이다. 이에 안젤라는 연화가 결혼 후 단칸 월세방에서 신혼 살림을 시작해 맞벌이로 바빴으며 당시는 여학생들이 취직하기 매우 어려운 때였기에 “어디든 뚫고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72)을 거라 말한다. 그리고 연화가 어용 연구소에서 노동 쟁의를 일으켰다가 해직됐다는 사실을 전하며, 이것이 바로 프락치가 아니었다는 증거라면서 그녀를 옹호한다. 안젤라는 노동 쟁의 당시 연화의 모습을 “프락치일지도 모른다는 오해와 비방, 억눌림과 모함에서 일시에 해방되어 기쁜 표정”(86)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연화가 프락치 혐의를 벗더라도 프락치에 대한 질문은 계속된다. 후배는 안젤라에게 다음과 같이 묻는다. “그러면 도대체 프락치가 누구였던 거야? 이제는 세월이 흘렀으니까 까놓고 물을게. 언니였어?”(73) 여성들의 과거는 현재의 삶으로 증명되며, 이는 프락치 식별의 사후성, 프락치 의혹의 현재성을 말해준다.
안젤라는 대학을 졸업한 지 40년이 흐른 후에도 20대의 증오와 오해, 불신이 맺혀 있음을 통탄하며, 색출정치가 지속되는 이유를 5·16 군사 쿠데타 이후의 ‘감시사회’가 ‘불신사회’를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공안·검열정치, 군부출신 대거 등용, 유신정권 인물 재등용, 계엄령 개정안 발의, 통진당 해산 등 유신시대가 재현되고 세월호 참사 이후 색출의 치안이 폭주하게 된 상황을 환기한다. 이에 안젤라는 1970~1980년대에 ‘여성 프락치’가 만들어지게 된 맥락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한마디로 우리 중에 프락치는 없었어. 다만 군대식으로 훈련받지 않은 여학생들이라 보안의식이 약하고 조심성이 없어서 정보를 무심코 흘리고 다니는 통에 데모도 제대로 못 하고 사전에 검거됐던 거지.(73)
인용한 대목에서 안젤라는 1970~1980년대의 군사주의적 보안의식 바깥에 위치하는 여학생들이 프락치 의혹에 쉽게 노출되었다고 말한다. 군사주의적 국가폭력인 프락치 강요 공작을 방어하는 운동권 문화 또한 군사화되어, 비군사적 행동양식을 보이는 운동권 여성들이 프락치 의혹을 받게 된 것이 운동사회 내 ‘프락치 만들기’의 가부장적 군사주의의 한 맥락인 것이다. 『안젤라』는 이러한 ‘여성 프락치’라는 ‘경계적 위치’를 명예회복이 필요한 자리로 해석한다. 여성들에게 덧씌워진 프락치 혐의는 운동 이후 죽음의 순간까지 따라붙는 낙인이 된다. 연화는 죽기 직전 안젤라에게 전화해 말을 잇지 못한 채 통곡하고, 안젤라는 연화가 무슨 말을 하지 못하고 통곡만 남기고 갔는가 자문한다. 그리고 아내의 유고를 정리해 행장(行狀)을 쓰려는 연화의 남편에게, 어용 연구소에서 노동 쟁의하던 시절을 부각하여 생애사를 쓸 것을 제안한다. 그렇게 안젤라는 연화의 발화되지 못한 유언을 프락치 의혹에 대한 명예회복의 과업으로 독해한다. 그러한 여성의 명예회복은 운동을 자원화·영웅화하는 기획이 아닌, ‘과잉된 자의식’으로 경직된 일상을 회복하는 문제와 관련된다.
왜 옥수수가 그 집들로 잘못 배달됐던 걸까? 교묘한 음모를 꾸미는 배후가 있는 것은 아닐까? 유신 말기에 끌려갔던 것처럼 커다란 시국 사건이나 간첩 사건을 조작해서 저항 운동을 무화시키고 여론을 호도하려는 정보기관의 기획 수사가 진행 중인 것은 아닐까? 왜 율리아나가 나를 경찰에 고발했을까? 포상금을 노린 동네 사람들과 짜고 모함을 하는 것은 아닐까? 막연히 일상이 무섭고 의심스러웠다.
1979년 4월 안젤라는 지난 6개월 동안이나 미행당했다는 것을 구금된 후에야 알게 되었다. 평범한 일상 뒤에서 무서운 음모를 꾸미고 있는 기관원들의 날카로운 시선과 돈에 매수된 이들의 거짓 증언에 얼마나 놀랐던지…….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고 연행됐던 기억은 끊임없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일으켰다. 몸이 아플 때, 때마침 일상에서 불미스러운 헛소문이 돌 때, 이웃이나 지인들로부터 엉뚱한 모함을 당할 때, 시국 사건으로 신경이 날카로울 때 이런 증상에 시달리곤 했다. (중략) 따라서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해야 했고, 꼬투리 잡힐 일을 만들지 말아야 했다. 잡혀갔다 나온 이후 안젤라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엄청나게 모범적으로 살아왔다. 생활 전반에서 결벽증이라 할 정도로 조금의 거짓말도 못 했다.(160~161)
안젤라는 스스로 영웅심이 없다고 이야기하면서도, 역경을 헤치며 살아온 극기의 삶, 양심, 정의감, 유능함, 인간미 등에 대한 자긍심을 반복적·직설적으로 발화한다. 그녀는 자신이 자의식·자기애가 강하고 자기 의로움이 충만하다는 것을 아는 동시에, 인용한 글에서처럼 잘못 배달된 옥수수 한 자루에도 극도의 불안에 시달린다. 1970~1980년대 운동권 여성들의 명예회복의 과제와 자기 정당성의 끊임없는 증명에의 필요는 국가와 운동사회의 ‘프락치 만들기’가 형성한 결벽의 습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안젤라가 제안한 연화에 대한 애도인 ‘여성 생애사’는 ‘행장’, ‘운동사’, ‘전기’의 일관적·규범적 서사로부터 미끄러지는 여성서사이다. 그것이 여성의 자기증명을 완수하는 게 아니라 자기증명 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만들어낼 수 있으려면, 연화의 노동 쟁의가 프락치 의혹의 해명이 아닌 여성의 운동가 자의식의 ‘복잡한 기쁨’과 ‘과잉된 해방감’을 드러내는 글쓰기로 재현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안젤라는 연화의 가족이 아니기에, 행장 쓰기는 남편의 몫이 되었고, 남편에게 맡겨진 글쓰기는 안젤라와 여성들의 일상을 회복하는 행위가 되기 어려워 보인다. 죽음 직전까지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질병과 눈물로써만 표현되었던 프락치 만들기의 사회적 고통은 가족을 넘어 국가와 운동사회 단위에서 다뤄야 할 성질이기 때문이다. 『안젤라』는 가족이 그러한 사회적 대응을 제한하는 범주로 기능하고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여성문학의 기억과 색출정치, 그리고 인종화된 몸
‘프락치 만들기’의 색출정치는 오늘날까지 운동사회 안팎에서 지속되어온 사회적 문제이기도 하다. 학생운동이 약화된 후 대학에서 ‘비권’을 내세운 학생자치 그룹들은 ‘순수한 학생’에 반대되는 ‘불순분자’인 운동권과 정치세력을 색출하여 퇴출시키는 전략을 취해왔고, 이는 등록금을 납부하는 학생들의 ‘알권리’라는 소비자 논리로 정당화되었다. 이러한 대학 내 색출 논리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와 민간인 사찰 등의 색출정치와 신자유주의적 소비자주의가 결합한 결과다. 한편, 일부 여성 시위에서 나타난 외부인, 운동권, 노조원, 생물학적 남성에 대한 색출은 여성의 안전을 위한 전술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는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사회의 안전 시스템 부재를 경험한 여성들이 사회를 개별적으로 통제 가능한 폐쇄적이고 협소한 단위로 상정하면서 만들어낸 자구책이기도 하다. 여성들은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과 반복되는 여성살해, 교제폭력, 교제살인, 디지털 성폭력을 재난참사로 대면하고, 스텔라 데이지호 참사, 코로나 팬데믹, 이태원 참사, 오송 참사, 아리셀 참사, 제주항공 참사, 기후재난과 전쟁에 연루되는 가운데, 신자유주의 페미니즘을 비판하며 ‘안전’을 새롭게 감각·사유하고 있다. 또한 페미니스트 색출, 군대와 팬데믹 시기의 성소수자와 중국인에 대한 색출은 색출정치가 가부장적·이성애 중심주의적·인종주의적 통치 전략임을 드러낸다.
이 글은 이처럼 현재적 쟁점인 색출정치가 ‘프락치 만들기’라는 오랜 문제와 어떻게 연계되는지 고찰하고자 했다. 『안젤라』는 운동권 여성 프락치의 ‘위치’를 기억하며 여성의 명예회복 과제의 현재성과 실현의 곤경을 드러내고 여성서사의 조건을 재고하게 했다. 회복되지 않는 일상의 고통, 신자유주의적 자기증명의 문법, 국가의 보상 시스템 그 어느 것에도 온전히 적응하거나 부합하지 못해서 기억하고 글을 쓰는 여성의 몸. 그 몸들이 오늘날의 인종화된 몸들과 만나는 방식에 대해 더 고민해 보고 싶다. 더 많은 여성의 기억, 여성서사를 기다려 본다. (2026. 04, 또문브런치에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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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효정 동인께서 참여하고 계신 교육과정을 공유드립니다. 대이란전쟁을 겪으며 회자되는 중인 '재생가능에너지로의 전환'에 대한 이야기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예의주시중입니다만, 늘 기본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많은 분들의 노력은 여전히 진행중입니다. 관심 있는 분들께서는 많이 참여해주세요.
<도시형 햇빛소득마을 시민학교 1기 모집>
중동의 전운과 불안정한 국제 정세 속에서, 에너지 자급은 이제 생존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거대 전력망과 외부 수입, 원전과 석탄화력 발전에 의존해 에너지를 대량 소비해온 도시는 이제 스스로 생산하는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멀리 농촌의 땅을 빌리고 희생을 강요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우리가 발 딛고 선 마을의 옥상과 외벽에서 에너지를 직접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국가나 거대 자본이 결정하던 에너지의 흐름을, 우리 마을 공동체의 손으로 되찾는 ‘에너지 민주주의’를 실천할 때입니다.
단순히 전기를 생산하는 기술 교육을 넘어, 위기의 시대에도 흔들리지 않는 ‘자립하는 마을’을 설계하고 기후 정의를 함께 실현할 시민 전문가가 되는 여정에 초대합니다.
<교육 안내>
• 모집: 4월 23일(목)까지 (30명 선발)
• 일정: 5/7 ~ 6/25 (매주 목요일 19:00, 온·오프라인 병행)
• 혜택: 교육비 무료
• 신청: https://apply.do/solaracade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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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개모임] 4월 17일 오후 2시 <박완서 아카이브 조성 기념전 《참으로 놀랍고 아름다운 일》 함께 갑시다!
- 장소: 중앙도서관 본관 4층 서울대학교 헤리티지 라이브러리 박완서 아카이브 및 아카이브/전시 공간
- 시간: 4월 17일 금요일 오후 2시
오랜만에 서울나들이를 하시는 조한혜정 동인께서 4월 17일 오후 2시에 박완서 아카이브에 함께 가자는 제안을 해주셨습니다. 평일 오후지만, '번개모임'의 묘미로 뜻밖의 여러분들께서 함께 해주시면 어떨까요? 참고로 조한선생님과 김은실선생님, 조은선생님은 이미 손을 들어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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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416 세월호 참사의 날, 4시 16분 1분간의 묵념이 진행된다고 해요. 저는 그때 권정생 선생님의 시 <애국자가 없는 세상>을 읽어볼까 합니다.
이 세상 그 어느 나라에도 애국 애족자가 없다면 세상은 평화로울 것이다 / 젊은이들은 나라를 위해 동족을 위해 총을 메고 전쟁터로 가지 않을 테고 대포도 안 만들 테고 탱크도 안 만들 테고 핵무기도 안 만들 테고 / 국방의 의무란 것도 군대훈련소 같은 데도 없을 테고 그래서 어머니들은 자식을 전쟁으로 잃지 않아도 될 테고 / 젊은이들은 꽃을 사랑하고 연인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무지개를 사랑하고 / 이 세상 모든 젊은이들이 결코 애국자가 안 되면 더 많은 것을 아끼고 사랑하며 살 것이고 / 세상은 아름답고 따사로워질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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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문화와 함께 하시는 분들
후원회원(가나다순): 곽영선, 권김현영, 김경희, 김미현, 김보화, 김상애, 김성례, 김소영, 김신현경, 김영경, 김영옥, 김영일, 김유익, 김은실, 김정명신, 김정은, 김정희원, 김주희, 김찬호, 김태형, 김현미, 김혜련, 김효정, 김희옥, 남정호, 두애린, 문수복, 문정주, 박나미, 박은, 박진숙, 박총, 배채은, 백경흔, 변재란, 소영, 손은정, 신유리, 안혜경, 안희경, 안희옥, 양선미, 양현아, 여은영, 연주희, 우은희, 유승희, 이경자, 이선향, 이소희, 이수정, 이숙경, 이은아, 이은주, 이정주, 이지예, 이진아, 이헌미, 이현주, 이혜령, 장필화, 전유나, 정진경, 정혜란, 정혜진, 정희진, 조민아, 조옥라, 조은, 조형, 조한혜정, 지현, 진영옥, 채혜원, 최소연, 최수연, 최은숙, 최은주, 최한솔, 한혜정, 허순희, 현유라, 황은진(83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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